최용현(수필가)
서부영화는 ‘황야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로 시작해서 ‘용서받지 못한 자’(1992년)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전자는 무명배우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이고, 후자는 이미 서부영화의 아이콘이 된 그가 주연과 감독을 맡아 만든 작품이다.
‘황야의 무법자’(1964년)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걸작 ‘요짐보’(1961년)를 서부극으로 각색하여 만든 최초의 마카로니웨스턴이다. 다음해 속편 ‘석양의 건맨’(1965년)이, 그 다음해 무법자 3부작의 완결편인 석양의 무법자’가 만들어졌다.
‘석양의 무법자’(1966년)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에 개성이 강한 세 사람의 총잡이가 이합집산(離合集散)하면서 숨겨진 돈뭉치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첫 장면에서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마지막 장면까지 3시간이나 되는 긴 러닝 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망토를 걸치고 시가를 입에 문 현상금 사냥꾼 블론디(선한 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扮)는 온갖 악행으로 현상수배를 받고 있는 멕시코 출신의 총잡이 투코(추한 자, 엘리 월러치 扮)와 동업을 하고 있다. 블론디가 투코를 잡아 넘기면서 현상금을 받아내고, 투코가 교수형을 당하려는 순간 투코의 목을 매고 있는 줄을 쏴서 그를 구해 달아나는 것이다.
블론디는 받은 현상금을 혼자 차지하고, 현상금이 오르지 않는 투코에게 동업을 끝내자면서 그를 뜨거운 사막에 방치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투코는 블론디를 역습하여 뙤약볕이 작열하는 사막에 오랫동안 끌고 다니면서 거의 초죽음 상태로 만든다.
한편, ‘천사의 눈(angel eye)’이란 이름과는 딴판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인과 폭력을 일삼는, 뱀눈에 매부리코의 냉혹한 악당 엔젤아이(악한 자, 리 반 클리프 扮)는 20만 달러의 돈뭉치를 빼돌린 빌 카슨이란 자를 추적하고 있다.
이때 블론디와 투코는 중상(重傷)으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빌 카슨을 사막 한가운데에서 만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투코는 20만 달러가 묻혀있는 공동묘지의 이름만을, 블론디는 묘비명만을 듣게 된다. 둘이 힘을 합쳐야 돈뭉치를 찾을 수 있게 된 블론디와 투코는 다시 합심하여 함께 공동묘지로 향한다.
가는 도중에 두 사람은 북군의 포로가 되는데, 포로수용소의 선임하사인 엔젤아이는 죽은 빌 카슨의 옷을 입은 투코를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고문하여 공동묘지의 이름을 알아낸다. 그러나 묘비명을 알고 있는 블론디는 자존심이 강해서 쉽게 불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돈을 찾으면 반씩 나누기로 타협한다. 투코에겐 수갑을 채워 거한(巨漢)에게 감시를 맡긴다.
블론디가 떠나자, 투코는 가까스로 거한을 물리치고 수갑을 제거한 후 공동묘지로 향한다. 거의 동시에 공동묘지에 도착한 블론디와 투코는 마침내 묘비명을 확인하고 숨겨놓은 20만 달러를 찾아내는데, 그때 엔젤아이가 도착한다. 세 사람은 돈뭉치를 앞에 두고 최후의 승자를 가려내기 위한 삼각 대결을 벌인다.
존 포드 감독과 존 웨인으로 대표되는 고전 정통서부극은 미국 서부를 개척해 나가는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으나, 마카로니 웨스턴 혹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리는 서부극은 미국의 한물간 배우들이 유럽의 영화감독들과 함께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가서 대충 만든 싸구려 영화라는 인식이 강했다.
실제로 당시 이탈리아 영화계는 할리우드에 비해 아주 열악하여 스턴트의 개념조차 없을 정도였다. 이 영화에서 기차선로 옆에 바짝 엎드려서 달리는 기차를 이용하여 수갑 줄을 끊는 장면은 투코 역을 맡은 엘리 월러치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연기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카로니웨스턴이라고 해서 모두 대충 만든 것은 아니다. ‘석양의 무법자’에서의 카메라 움직임을 보자. 주로 파노라마 영상을 사용하면서도 원거리의 롱 샷도 자주 등장하고, 막판 대결장면은 롱 테이크로 잡았다. 또 공동묘지에서 투코가 뛰어가면서 돈뭉치가 묻힌 묘비를 찾는 장면은 클로즈업을 사용하여 긴장감을 최고조로 이끌어내고 있다.
세 주인공은 선과 악, 추(醜)로 지어진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탐욕스럽다. 세 사람간의 도덕적인 차이는 거의 없지만, 악을 담당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영화적인 정의(正義)이다보니 이 영화도 권선징악으로 귀결을 짓는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주제음악은 ‘서부영화’의 아이콘이 되었을 정도로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서부극의 전성기 이후에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년)나 ‘시네마 천국’(1988년)에서 보여준 그의 음악은 바야흐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경이롭다.
약간 냉소적인 표정의 캐릭터를 창출해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고, 악당전문 배우로 유명세를 얻은 리 반 클리프는 여러 서부극에서 활약하다가 64세(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코믹하면서도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 엘리 월러치는 99세를 눈앞에 두고 2014년에 타계했다. 또, 무법자 3부작을 통하여 마카로니웨스턴이라는 장르를 선보인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마지막으로 10편의 영화를 남기고 60세(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레오네 감독의 서부극에 대한 열정은 그의 제자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예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명품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를 연출하여 고(故)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에게 헌정하겠다고 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바로 그의 수제자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