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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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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

 

최용현(수필가)

 

   영화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1966년도 칸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외국영화상을 받은 작품이다. ‘금지된 장난’(1952), ‘퐁네프의 연인들’(1991)과 함께 다섯 손가락 안에 꼽고 싶은 프랑스 영화다.

   약관 29세의 클로드 를로쉬는 어느 날 아침 도빌 해변에서 어린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는 30대 여인을 보았는데, 그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영상이 있었다. 배우자와 사별한, 아이가 하나씩 딸린 30대의 남녀 돌싱(?)들이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 그는 곧바로 4만 달러를 빌려서 카메라 한 대를 대여하여 작업에 들어갔고, 3주일 만에 영화를 만들었다.

   제작, 각본, 촬영, 편집, 감독까지 그가 혼자 맡았다. 돈이 모자라서 야외 분은 컬러로 촬영하고 실내 분은 흑백으로 촬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엉뚱하고 절묘한 편집 덕분에 이마저도 최고의 기교라는 찬사를 받았다.

   ‘!!!!!(ba da ba da da)’로 시작하는, 프랑시스 레이가 만든 주제곡은 그 독특한 멜로디만으로도 할리우드 영화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프랑스 영화의 품격을 드러낸다. 그는 미국에서 당시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러브 스토리’(1970)에도 참여하여 아카데미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가 이끌던 프랑시스 레이 악단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으로 유명한 폴 모리 악단과 쌍벽을 이루며 명성을 날렸다.

   파리에 살고 있는 30대 중반의 카레이서 장(장 루이 트랭티냥 )은 주말마다 차를 몰고 아들이 있는 도빌의 학교 기숙사를 방문한다. 역시 30대인 영화 스크립터 안느(아누크 에메 )도 주말마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딸이 있는 도빌의 학교 기숙사에 간다. 어느 날 기차를 놓친 안느는 장의 차를 타고 파리로 오는데, 둘은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장이 안느의 남편에 대해서 묻는다. 영화배우이면서 스턴트맨, 가수였던 남편은 삼바음악에 조예가 깊은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영화 촬영 중 폭발사고로 죽었단다. 현재 차안의 모습은 흑백 영상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은 컬러 영상으로 나온다. 안느의 집에 도착할 무렵, 꽤 가까워진 두 사람은 다음 주말에 도빌에 갈 때도 함께 장의 차를 타고 가기로 약속한다.

   다음 주말, 장과 안느는 도빌에서 아이들까지 넷이서 함께 식사도 하고 배도 타고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차 속에서 장은 안느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이번엔 안느가 장의 아내에 대해서 묻는다. 자동차 경주에 출전한 장은 사고로 중상을 입어 큰 수술을 받고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그의 아내는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단다.

   다음 주, 장은 유명한 몬테카를로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한다. 안느는 자신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기 시작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음미하면서 자동차 경주를 다룬 잡지도 사서 읽어보고, 혼자 공원을 걷기도 한다. 집에서 자동차 경주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안느는 장에게 축전을 보내는데, 문구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사랑해요. 안느라고 써 보낸다.

   몬테카를로 행사장의 파티에서 안느가 보낸 전보를 받은 장은 기쁨에 겨워 경주차를 밤새 몰고 파리로, 그녀의 집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녀가 아이를 만나러 간 것을 알고는 다시 도빌로 향한다.

   도빌의 해변에서 안느가 두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 장은 차의 헤드라이트를 번쩍거린다. 안느와 아이들이 달려오자 장은 아들이 아닌(!) 안느를 번쩍 안아들고 휘휘 돈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아이들을 기숙사로 돌려보내고 도빌의 한 호텔에 들어간다.

   방에서 사랑을 나누려는 두 사람. 그러나 안느는 죽은 남편과의 뜨거웠던 사랑이 떠올라 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 그래요?’ 하고 장이 묻자, 안느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 때문에라고 대답한다. 장이 다시 그는 죽었잖아요.’라고 하자, 안느는 저한테는 아직 아니에요.’ 하고 대답한다. 안느는 혼자 기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이대로 끝낼 것인지 다시 그녀를 찾아갈 것인지 고민하던 장은 지름길로 안느가 도착할 역으로 향한다. 안느는 기차 안에서 아까 장과 함께 식사를 하고 호텔 방으로 올라가던 때를 되새겨본다. 역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던 장이 플랫폼에서 안느를 다시 만나 진하게 포옹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큰 돈 들이지 않고 이만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프랑스 영화에는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는 듯하다. 컬러와 흑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영상미와 두 주인공의 절제된 대사 속에 녹아있는 섬세한 심리 묘사, 로맨틱하면서도 서정적인 주제곡의 독특한 멜로디도 그렇고.

   도빌 해변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검은 개의 경쾌한 몸놀림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설레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나, 배에서 아이를 안고 있던 장의 손이 안느의 손을 잡으려다 멈추는 동작에 머무는 카메라, 이런 디테일에 강한 면도 한 이유가 되리라. 또 앞 유리 와이퍼가 세차게 빗줄기를 쓸어내리는 차 안에서 장이 살며시 손을 잡았을 때 안느의 얼굴에 나타난 미세한 떨림까지도 잡아내는 롱 테이크도.

   큰 키에 세련된 단발머리, 이지적이면서도 우수를 담은 커다란 눈이 매력인 프랑스 미인 안느를 만나는 설렘 때문에 이 영화를 본다고 해도 거짓말은 아니리라. 안느의 눈부신 미모를 빼놓고는 이 영화를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느 역을 맡은 아누크 에메는 이 영화가 끝난 후에 그녀의 남편 역을 맡았던 피에르 바루와 결혼을 했다.

   그다지 특출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표정 연기가 돋보였던 장은 세가지색 레드’(1994)에서 은퇴한 늙은 판사로 나오는 것을 봤는데, 온통 희어진 머리칼과 얼굴 가득한 잔주름에서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1986년에 속편인 남과 여 20년 후가 나왔다. 클로드 를로쉬가 다시 감독을 맡았고, 남녀 주인공 장과 안느의 캐스팅도 그대로란다. 이번 주말에는 이들의 20년 후 얘기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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