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일산아카데미

손바닥소설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3. 07:24

본문


일산아카데미

 

최용현(수필가)

 

   “한 구좌 3,900만원을 투자하면 다음 달부터 매월 65만원씩 입금해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아서 중앙일보를 넘겨보다가 눈이 꽂힌 한 전면광고의 헤드라인이다. 그 광고 가운데에는 유명 탤런트 박O형 씨의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아래에 국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교육기관인 일산아카데미의 주인이 되십시오.’라는 문구도 있었다.

   목돈을 투자해놓고 매월 일정금액을 받는 이런 노후생활을 얼마나 꿈꾸어왔던가. 나는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에서 보는 신문도 확인해보았다. 거기에도 똑같은 전면광고가 실려 있었다. 경기도 일산에 엔터테인먼트 전문교육기관인 일산아카데미를 설립 운영하여 그 수익금을 매월 투자자에게 지급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견 탤런트 박O형 씨를 일산아카데미 학원의 원장으로 초빙하여 서울의 서부 지역과 경기도 고양, 김포 지역에 사는 중고등학생들 중에서 요즘 최고 인기직업인 연예인을 지망하거나 방송관련 업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대거 유치하여 전문분야별로 교육시키는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점심시간에 다른 신문들도 확인해보니 매일경제신문과 한국경제신문에도 그 광고가 똑같이 실려 있었다. 그 다음 날에도 집에서 보는 중앙일보와 사무실에서 보는 신문에는 똑같은 내용의 전면광고가 실려 있었다. 일산아카데미에서 아주 화끈하게 추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900만원 투자에 월 수익이 65만원이라면 얼핏 계산해도 연 수익률이 20%가 넘는다. 돈만 있으면 당장 투자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는 수익률이 상식선을 넘는다며 뭔가 좀 찜찜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탤런트 박O형 씨의 사진이 온 신문에 도배를 하다시피 했는데,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 얼굴이 뭐가 되겠는가. 아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리라.

   두 구좌만 투자해도 노후준비는 전혀 걱정이 없을 것 같았는데, 불행하게도 한 구좌 투자할 돈도 없었다. 그동안 먹고 사느라, 딸 둘을 대학공부 시키느라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큰애가 대학을 졸업한 3년 전부터 약간 숨통이 틔었지만, 작년 봄에 16년간 타던 차를 새 차로 바꾸느라 그 동안 모은 돈을 다 쓰지 않았던가.

   이제 나이가 50대 중반이다 보니 정년퇴직 이후에 대한 걱정을 자주 하게 된다. 국민연금을 계속 납부하고 있지만 앞으로 받게 될 연금은 노후생활비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이 각종 조사 자료에 잘 드러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부족한 노후생활비는 무엇으로 충당할 것인가?

   어떻게 해서든 한 구좌라도 들고 싶었다. 두 가지 해법이 있었다. 첫 번째, 아파트를 담보로 융자를 받는 해법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저당 잡혀야 하는데 그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또 한 가지, 퇴직금을 중간 정산하여 미리 받는 해법은 어차피 내가 받을 퇴직금을 미리 받는 거니까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우리 학회의 회장님께 거짓 보고를 드렸다. 살던 아파트를 팔고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 위해 목돈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내 퇴직금을 중간 정산하고 싶다고. 그렇게 해서 허락을 받아 퇴직금을 정산해보니 약 6천만 원 정도 되었다.

   토요일 오전, 일산아카데미 분양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더니 오후 5시까지 근무를 한다고 한다. 나는 몇 가지 확인도 해볼 겸 아내와 함께 일산아카데미로 찾아갔다. 토요일인데도 사무실이 꽤 분주해보였다. 나처럼 투자 때문에 분양사무실을 찾아온 사람도 있었고, 일산아카데미학원에 대해 알아보러온 학생도 있었다.

   나는 가지고 온 수표로 3,900만원을 내고 영수증과 분양계약서를 받았다. 매월 수익금을 송금 받을 계좌번호를 등록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 건물 2층과 3층의 학원 자리를 둘러보니 학원의 외부공사는 거의 다 되었고, 내부시설 마무리공사를 하고 있었다. 건물 밖에서 보니 학원 건물이 대로변의 사거리 코너에 위치하고 있어서 입지조건이 상당히 좋아보였다.

   한 달이 지나자, 통장에 65만원이 들어왔다. 나는 퇴근하자마자 아내에게 얘기를 하고 그것 봐, 내가 걱정할 것 없다고 했잖아!’ 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계산을 해보았다. 앞으로 내가 받을 예상 국민연금 85만원에 65만원을 더하면 150만원이 된다. 200만원은 넘어야 되는데.

   다음 달에도 정해진 날짜에 65만원이 입금되었다. 나는 한 구좌만 더 가입하면 월수입이 215만원이 되어 더 이상 노후준비에 신경을 안 써도 될 것 같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퇴직금 중간정산하면서 남은 돈 2천만 원에다, 부족한 돈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 한 구좌만 더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빚내서 투자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이번에는 아내가 기를 쓰며 반대를 했다. 나는 두 달째 돈이 잘 들어오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며 내일 출근하면 은행에 가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그날 밤, 아내와 언성을 높이면서 심하게 다투고 등을 돌리고 잠을 잤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 거실에 있는 TV를 켜놓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빨리 나와 봐!’ 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후다닥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일산아카데미 송O진 대표가 투자자에게서 받은 돈을 다시 투자자에게 수익금으로 지급하는 유사수신행위를 하다가 어젯밤에 구속되었다. 피해자는 퇴직금을 전액투자한 사람을 비롯하여 가정주부 등 241명이었고, 피해금액은 총 157억 원에 달했다. 한편 일산아카데미 원장을 맡은 탤런트 박O형 씨는 자신도 피해자라며 원장 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거봐요! 내가 뭐라 그랬어요? 하지 말자고 했잖아요! 처음에 넣었던 돈도 떼인 것 같아요. 아마 이제 돈이 안 들어올 걸요.”

   아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무엇인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아내 말이 맞았구나! 한 구좌 더 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출근 준비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손바닥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뱅뱅사거리 육교 옆에서  (0) 2018.12.23
최 씨 vs 강 씨  (0) 2018.12.23
웅계(雄鷄)  (0) 2018.12.23
기타를 든 남자  (0) 2018.12.23
상품권이 뭐기에  (0) 2018.12.23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