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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이 뭐기에

손바닥소설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3.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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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이 뭐기에

 

최용현(수필가)

 

   오후 3시쯤 잠깐 들르시겠다는 회장님의 전화를 받자, 왜 오시나 싶어 몹시 궁금했다. 며칠 전에 오셨을 때 주요사항을 모두 보고했기 때문에 특별히 오실 일이 없었다. 설날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으니 그것 때문은 아닐 것 같은데.

   내가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들은 다른 직원들도 궁금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직원이래야 사무국장인 나와 여직원 두 명이다. 미스 문은 정규직원이지만, 윤미는 야간대학을 다니는 아르바이트생이다.

   그 동안 보아온 회장님은 빈틈없고 깐깐한 분이시다. 전기공학계의 저명한 대학교수이면서 국내 굴지의 전기업체에 고문을 맡고 있다. 주로 대학 연구실에 상주하시고, 이곳 학회 사무국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오신다. 25개월 전에 내가 이곳에 사무국장으로 오면서부터 이곳 일은 완전히 내게 맡기셨지 않았는가.

   3시가 조금 넘자 회장님이 오셨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오는 길에 잠깐 들르셨단다. 회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나를 부르셨다. 내가 간단히 업무보고를 하자, ‘설에 고향에 내려가세요?’ 하시면서 호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주셨다. 상품권 봉투였다. 내가 감사합니.’ 하고 인사를 하고 나오자, 바로 여직원을 불렀다.

   여직원 둘이 함께 회장실로 들어간 사이, 내 자리에서 봉투를 열어보았다. 10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여직원들도 상품권 봉투를 하나씩 들고 나왔다. 곧이어 회장님이 나오시더니 설 잘 보내세요.’ 하시고는 바로 사무실을 나가셨다.

   자리에 돌아와 봉투를 여는 미스 문의 눈이 갑자기 왕방울 만해졌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국장님은 얼마예요?’ 하고 물었다.

   “, 10만원.”

   그 때 옆자리에서 윤미가 봉투를 여는 것을 지켜보던 미스 문의 눈이 또다시 휘둥그레졌다. 윤미도 깜짝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뭔가 좀 이상하다싶어 얼만데?’ 하고 물어보았다.

   ‘50만 원짜리예요, 윤미도 똑같아요.’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받은 것을 내 눈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같은 백화점 상품권이었고, 분명 50만 원짜리였다. 여직원들 것은 내 것과 봉투 모양이 좀 달랐다. 내 것과 여직원들 것을 구별해서 준비해 오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갑자기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한 동안 시간이 흐르고 윤미가 잠시 자리를 뜨자 미스 문이 말했다.

   “국장님, 바뀐 것이 아닐까요? 윤미 것을 달라고 해서 국장님 것과 바꿔드릴까요?”

   “아냐, 놔둬. 회장님이 직접 주신 건데.”

   그렇게 말은 했지만, 김이 팍 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60만원 받는 임시직에게는 50만 원짜리를 주면서, 사무책임자인 내게는 10만 원짜리를 주다니 말이 되는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그 생각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여직원들은 월급이 적다고 특별히 배려를 해주신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일하는 게 맘에 들지 않아서 일부러 엿 먹으라고 그랬던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25개월 전, 나는 대학교재 전문 출판사의 편집부 차장으로 있었다. 어느 날, 대한전기학회에 재직할 때 알던 지금의 회장님과 친한 최 교수가 학회를 하나 만들었으니 와서 사무국장을 맡아 주었으면 한다.’며 회사로 전화를 해왔다. 그래서 이곳으로 오게 됐고, 직원들도 사무국장이 쓸 사람이니까 직접 뽑으라고 해서 2년 전에 미스 문을 채용했고, 윤미는 불과 한 달 전에 채용하여, 지난주에 회장님이 오셨을 때 인사를 시켜드리지 않았는가.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다음날도 여전히 심란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회장님의 의도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 학회에 사무국장으로 와달라고 내게 전화를 했던, 회장님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최 교수에게 상의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님이 다녀가신지 이틀째 되는 날, 나는 최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퇴근할 때 학교로 찾아가겠다고 말씀드렸다. 학교 근처의 한 음식점으로 오라고 하셨다. 그곳에 도착하니 최 교수가 벌써 와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며 자초지종을 모두 털어놓았다.

   “미스 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임시직에게까지 50만 원짜리를 주면서 저한테는 10만 원짜리라니요. 이게 말이 됩니까?”

   내가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최 교수가 갑자기 내 말을 잘랐다.

   “그 양반은 내가 잘 아는데 직원들에게 50만원씩 줄 사람이 아니에요. 아마도 5만 원짜리로 착각해서 준 걸 거예요. 그 양반하고 룸살롱에서 몇 번 술을 마셔봤는데 팁도 3만 원 이상은 안 주는 사람이에요.”

   내가 다시 반문했다.

   “그래도 그렇지요. 어떻게 50만원을 5만원으로 착각할 수가 있어요? 50만 원짜리 두 장을 사려면 100만원이 드는데.”

   “그건 아닐 거예요. 명절이 되면 거래처나 제자들이 찾아와서 상품권을 주고 가기도 하거든요. 아마 그걸로 줬을 거예요. ‘5’자만 보고 동그라미는 세어보지도 않고 5만원이라 생각했을 거고. 그러나저러나 여직원들이 땡 잡았군요. , 임시직원한테는 상품권이 바뀌었다 그러고 국장님 것과 바꾸지 그러셨어요?”

   최 교수가 딱하다는 듯 말했다.

   “회장님이 직접 주신 건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겠어요? 저는 회장님이 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셔서 그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아니에요, 전번에 만났을 때도 사무국장님 일 잘한다고 칭찬을 하던데요. 정 그렇다면 직접 확인을 해보는 수밖에.”

   최 교수가 핸드폰을 꺼내들고 회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이런 저런 몇 마디를 나누시더니 대뜸 물었다.

   “, 내일 모레가 설인데 학회 직원들한테는 뭐 좀 없어요? ? 벌써 주셨다고요? 어떻게 줬는데요? ? , , ?”

   ‘, , ,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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