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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때 생긴 일

손바닥소설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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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때 생긴 일

 

최용현(수필가)

 

   내가 요즘 들어 가장 고심하고 있는 것은 사무국 직원들의 인화문제다. 직원들이래야 위로는 사무국장 한 사람이 있고, 과장인 나를 포함하여 남자직원 셋과 여자직원 둘, 그리고 여자 아르바이트생 하나가 전부인데, 문제는 고참 여직원 조문희 씨와 남직원 백진호 씨 사이가 아주 심각한 불화상태라는 점이다.

   경리를 맡고 있는 조문희 씨는 여상(女商)을 졸업한 후 바로 우리 학회에 입사하여 만 8년 동안 근무해온 베테랑 여직원이다. 업무처리 솜씨가 뛰어난 데다, 아무도 스물일곱 살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앳되어 보이는 인상 탓에, 임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사무국의 마스코트 같은 아가씨이다.

   군대 갔다 와서 회사에 들어온 백진호 씨는 올해 스물아홉 살로 입사 4년차인데, 한 달에 한 번 개최하는 이사회와 각종 학술행사를 준비하고, 학회지 편집 등을 담당하는 사무국의 주무(主務)이다. 약간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성실하고 업무에도 아주 치밀하고 꼼꼼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총각이다.

   전에는 두 사람 사이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퇴근 후에 둘이 만나 데이트하는 장면이 우리 학회 직원이나 옆 사무실 직원의 눈에 띄어,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소문이 건물 내에 돌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두 사람 사이가 냉랭해지는가싶더니 서로 말도 않고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지내기 시작했다.

   하필 서로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으니 그게 보통 고역이겠는가. 급기야 미스 조는 출근하자마자 캐쉬 박스(cash box)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어놓은 채 근무하기 시작했다. 백진호 씨를 보지 않으려고 앞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두 고참 직원이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직원들끼리도 두 패로 갈라지고 말았다. 여직원은 아르바이트까지 미스 조 편이 되었고, 남자직원은 백진호 씨 편이 되어 서로 아옹다옹 다투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사무국에는 하루 종일 찬바람이 쌩쌩 돌았다.

   나는 두 사람을 화해시켜 보려고 개별접촉을 시작했다. 우선 백진호 씨와 점심을 같이 하며 얘기를 나눠보았다. 그는 미스 조가 왜 자신에게 쌀쌀맞게 대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자기는 미스 조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했다.

   혹시 백진호 씨가 군대갔다오느라고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먼저 들어온 미스 조보다 급여가 적은데, 그것 때문에 미스 조에게 불평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 적이 없다며, ‘그건 규정대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 아니냐?’고 했다.

   다음날은 미스 조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요즘 백진호 씨와 왜 그렇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아무 할 얘기가 없다며 그냥 모르는 체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저녁 때 둘이 화해하는 자리를 마련해 보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며 한사코 싫단다. 설사 그런 자리를 마련한다 해도 자기는 나가지 않겠다는 거였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서 매일 그러고 있는 꼴을 볼 수는 없고, 그렇다고 두 사람을 혼낸다고 사이가 더 좋아질 리도 만무하고, , 둘을 떼어놓자니 직원이 몇 명 되지도 사무국에서 다른 곳에 보낼 데도 없다. 정말 난감했다.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이사회 때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나는 이사회에 배석하러 옆방 회의실에 들어갔고, 사무실에는 그 두 고참직원만 남게 되었다. 이사회가 한창 진행 중에, 사무실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여자의 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미스 조가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고, 그 옆에는 백진호 씨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씩씩거리고 서있었다. 두 사람이 다투다가 급기야 백진호 씨가 미스 조의 뺨을 때린 것이었다. 드디어 냉전이 열전으로 변한 모양이었다.

   두 사람만 남은 것이 화근이었다. 백진호 씨가 미스 조에게 다가가 화해를 하자고 했는데, 미스 조가 대답을 않은 채 가까이 오지 마라. 꼴도 보기 싫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홧김에 뺨을 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쯤 되면 화해를 할 것이지, 굳이 화해를 안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일은 즉각 그 이사회에 보고되었고, 사무실에서 여직원을 폭행한 백진호 씨는 진상조사를 한 뒤에 적절한 징계를 내리되, 회장과 총무이사에게 그 일을 위임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날 백진호 씨가 자진해서 사표를 냈으므로 결국 의원면직(依願免職)으로 처리가 되었다.

   그 소문은 순식간에 건물 내에 퍼졌고 며칠 뒤 미스 조도 사표를 내고 말았다. 표면상의 이유는 결혼 준비였지만 누가 봐도 그 일 때문이었다. 미스 조가 사표를 내자, 백진호 씨의 경우와는 달리 임원들을 비롯해서 다른 직원들이 모두 만류했다. 그러나 아무도 미스 조의 결심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결국 이 일은 당사자 두 사람이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뒤에 다른 여직원을 통해서 알아보니, 전에 백진호 씨가 옆 사무실 여직원과 함께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사실이 미스 조의 귀에 들어가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순전히 미스 조의 질투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얘긴데.

   그 일이 있은 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미스 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주 토요일에 결혼을 한다며, 학회 쪽에는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을 테니 나더러 와서 축하를 해달라는 거였다. 나는 꼭 가마.’ 하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미스 조가 말한 대로 혼자 가느냐 아니면 우리 직원들과 옆 사무실에도 알려서 다 함께 가느냐를 두고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우리 학회 직원들에게만 알리고 직원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결혼식 날, 직원들과 함께 예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주례사를 하고 있었다. 곧 이어 신랑신부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순서가 되었다. 신랑신부가 돌아섰다. 순간,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무국 직원들은 모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신부가 된 미스 조 옆에서 미소를 머금고 서있는 신랑은 다름 아닌 백진호 씨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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