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과장님, 전화 받으세요. 부산이라는데요.”
저물어가는 1990년이 아쉬워 희끗희끗 날리는 창밖의 눈을 바라보며 잠시 하오의 상념에 빠져있던 나는 미스 윤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앉아 책상 위의 수화기를 들었다.
“오빠. 저, 지연이예요.”
지연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문이 막혔다. 지연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서울 잠실 동생 집에 와있어요. 오늘 저녁에 만났으면 해요.”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으로 와. 8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옆에 ‘부메랑’이라는 레스토랑이 있을 거야. 6시까지 그리로 와.”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인 1979년 12월, 전에 사귀던 지연이 선을 봤다며 결혼문제로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10년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길로 가기로 했다. 1980년 1월말에 내가 먼저 결혼해서 서울로 왔고, 2월초에 지연이 결혼해서 부산으로 갔다. 몇 년 후에는 내 여동생과 친구인 지연의 여동생이 결혼해서 서울로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 지금의 아내와 선을 보고 결혼하기로 했을 때, 나는 아내가 될 사람에게 사귀는 여자가 있었고 최근에 헤어졌다면서 그 여자가 곧 결혼을 할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에 있을 때 주고받은 편지들을 태워서 정리하겠다고 했더니, 자기 때문이라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내는 유순하고 순종적이어서 결혼 후에도 좀 별난(?) 나를 잘 뒷바라지해주었다.
나는 4학년 2학기 때 공채시험을 통해 OO생명에 들어갔고, 월계동 연립주택에 살면서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출퇴근했다. 그때도 지연의 그림자는 그리움과 증오심이 뒤섞인 채 끈질기게 나를 쫓아다녔다. 성북역 종점에서 지하철을 타면 노약자석 옆 창문가에 기대서서 창문에 입김을 불어 손가락으로 ‘지연’이라고 썼다가 지우기를 얼마나 했던가.
3년 5개월 만에 대리로 승진하자, 회사에서는 영남 쪽에 인적자원이 부족하다며 내가 고등학교를 나온 부산으로 발령을 내겠다고 했고, 나는 서울로 보내주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고 맞섰다. 부산에 가면 지연을 찾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경기도 안양으로 발령이 났지만, 한 달 만에 사직을 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로 있을 때 아내는 아무런 불평 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생계를 책임져 주었다. 4년 후, 나는 다시 공채시험을 통해 지금 다니는 대한전기학회에 중간 간부로 들어왔다. 얼마 전부터는 처음 뽑은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강남 사무실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다.
지금은 개봉동의 저층아파트 5층에 살고 있는데, 이곳은 차들을 모두 아파트 앞마당에 주차해놓고 있다. 아침에 출근할 때, 항상 아내가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5분 먼저 내려가 차를 닦았다. 그 모습을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던 남편들은 자신의 부인들에게 ‘저것 좀 봐라.’고 했고, 부인들은 나중에 떼로 몰려와 아내에게 항의하기도 했지만 세차를 멈추지는 않았다.
10년이 흘러 1990년이 되었다. 나는 여동생에게 지연의 전화번호를 알아봐 달라고 몇 번 부탁을 했는데, 아내를 배려한 여동생이 한사코 알려주지 않는 바람에 거의 포기를 한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 지연에게서 전화가 왔고, 퇴근길에 ‘부메랑’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11년 만에 다시 만나는군. 언제 서울에 왔어?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어제 왔어요. 오늘 동생 집에서 오빠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떼를 쓰다시피 해서 전화번호 알아냈어요. 오빠 만나려고 올라왔어요.”
지연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첫애를 낳고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들으면 오빠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남편은 부산에서 신발업체에 다니고 있단다. 남편은 자기를 좋아하는데 자기는 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큰아이가 아들이고 내 큰딸과 생년생월이 같았고, 작은 딸은 내 작은 딸과 생년생월이 같았다.
앞으로, 전화 통화도 하고 보고 싶을 때는 보면서 살기로 했다. 그때부터 지연은 우리 사무실로 가끔 전화를 했고, 나도 지연의 집으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지연이 서울에 오면 만났고, 내가 회사일로 부산에 갈 때도 만났다. 어떤 때는 서울과 부산에서 거의 동시에 열차를 타고 출발해서 중간지점인 김천역에서 만나기도 했다.
여름휴가 때 고향에 간다고 했더니 부산에 한번 오라고 했다. 내가 ‘아내는?’ 하고 물었더니 함께 오란다. 차를 몰고 아내와 함께 부산 광안리로 갔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셋이서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그 자리가 생각만큼 그렇게 어색하지만은 않았다. 지연은 아내의 고교 2년 후배이기도 했다.
밤늦게 일어서려는데, 지연이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남편은 출장가고 없단다. 대연동 주택가였고 꽤 넓은 집 마당에는 잔디가 곱게 자라고 있었다. 애들은 자는지 조용했다. 소파에 앉아서 수박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그 옆에 남편 사진이 있었다. 165cm도 안 되어보였다. 지연은 170cm가 넘는데…. ‘키가 너무 작지요?’ 하면서 지연이 멋쩍게 웃었다.
새벽 2시쯤에 그 집을 나와 고향 형님 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처가에서 며칠 쉬다가 휴가 마지막 날인 일요일 오후에 애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월요일 아침, 일주일 만에 출근해서 좀 멍한 상태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지연이었다. 만난 지 사나흘 밖에 안 되었고, 보통 오후에 전화를 하는데,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했다. ‘응, 웬일이야?’ 했더니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오빠, 나는 이혼 할 수 있는데, 오빠도 이혼할 수 있어요?”
목소리가 좀 격앙되어 있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내가 대답을 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확실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내 아내는 나만 쳐다보고 살아왔어. 난 그 사람 못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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