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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서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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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서

 

최용현(수필가)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강화도로 가는 길에는 차들이 넘쳐났다. 검단 사거리를 지나 통진 삼거리에 이르자 체증과 지체는 더욱 심해졌다. 9월의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고, 차 속의 에어컨이 짜증을 덜어주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11월부터 시작되는 사냥시즌을 앞두고 오늘 오전에 부천에서 사냥개들의 실력을 겨루는 사냥개 한마당행사가 열렸다. 국내 유일의 사냥잡지 편집책임자로 있는 나로서는 가보지 않을 수 없는 자리였다.

   처음엔 손 기자를 보내려고 했었다. 그러나 며칠 전 애견(愛犬) 잡지사에 근무하는 지수로부터 행사장에 오실 거죠?’ 하는 전화를 받고는 마음이 바뀌었다. 옆에서 통화하는 것을 들은 손 기자가 눈치를 챘는지 편집장님, 안지수 기자 만나려면 직접 가셔야죠?’ 하면서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지수와는 지난봄에 알게 되어 주말마다 서울 근교에 함께 놀러 다니곤 했었다. 야무지고 활달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지난 일요일에는 함께 대부도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첫 키스를 나누었다. 마침 오늘 행사가 토요일이라 끝나는 대로 함께 강화도에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지수만 좋다고 하면 다음 달쯤에 시골 부모님께 데려가서 인사를 시킬 작정이다.

   몇 년 전에 친구들과 강화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가 밀려서 혼났던 기억이 났다. 그때 한창 차선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으니 지금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그 동안 차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을. 강화도 남쪽으로 진입하는 초지대교 건설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내년에 개통한다던데 그때 올 걸 그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드디어 강화대교에 들어섰다. 강화읍을 지나 남쪽 전등사로 향하는 길로 방향을 잡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차가 순조롭게 술술 잘 가고 있는데 지수가 저기 OO저수지라고 쓰인 쪽으로 가 봐요. 거기서 좀 쉬었다 가죠.’ 하고 말했다.

   나는 핸들을 꺾었다. 포도밭 옆으로 나있는 길을 쭉 따라가니 저수지가 나타났다. 입구 공터에는 차들이 대여섯 대 주차해 있었고 물가에는 낚시꾼들이 삼삼오오 낚시를 하고 있었다. 저수지 옆으로 올라가는 찻길이 있어서 따라가 보았다. 저수지로 물이 들어오는 골짜기 입구에 숲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곳에 조그만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주차시키고 시원한 골짜기를 따라 좀 올라가보기로 했다. 옆에 나무그늘 아래 검정색 그랜저 한 대가 주차해있었다. 앞부분은 나무넝쿨에 바짝 붙어있어서 번호판이 잘 보이지 않았고, 뒤 번호판은 잎이 무성한 나무넝쿨을 꺾어 가려놓은 것 같았다. 넝쿨의 잎이 약간 시들어있었다. 잡지사 기자답게 지수의 직업의식이 발동했다.

   “이 차 좀 수상해요. 번호판을 가려놓은 것을 보니.”

   지수가 차에서 카메라를 꺼내왔다. 차 번호판을 찍으려는 것을 내가 말렸다. 우리는 골짜기 옆으로 조그맣게 나있는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골짜기에는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지만 수량은 많지 않았다. 숲이 우거져서 그런지 생각보다 시원했다.

   200m쯤 올라갔을까. 뒤돌아보니 나무숲 사이로 저수지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때 갑자기 앞서 가던 지수가 내 팔을 쿡 찌르며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골짜기 맞은편에 돗자리를 깔고 두 사람이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셔츠를 입은 채 아랫도리를 벗은 상태로 옆으로 누워있었고, 여자는 완전히 알몸인 채로 하늘을 향해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여자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 남자의 손 아래로 여자의 시커먼 치부가 보였다.

   우리는 그 자리에 살며시 주저앉았다. 숨죽이고 지켜보자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도 가빠졌다. 지수의 얼굴도 어느새 발그스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지수의 어깨에 걸려있는 카메라를 꺼내들고 조심스럽게 망원렌즈의 초점을 맞췄다. 남자는 40대 중반쯤 되어 보였고, 여자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얼굴과 피부색으로 보아 2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언뜻 여자의 시커먼 치부에 손이 가는가 싶더니 남자가 여자의 몸 위로 올라갔다. 두 사람의 얼굴이 한꺼번에 옆모습으로 보였다.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소리 나지 않게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지수는 그러지 말라는 듯 고개를 옆으로 흔들며, 눈짓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우리는 발소리를 죽이며 올라오던 길을 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 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참 내려오니 공터가 나왔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건 100% 불륜이야. 요즘 젊은 여자들 큰일이야, 아무데서나 옷을 벗는단 말이야.”

   지수도 지지 않았다.

   “남자가 더 나쁘죠. 나이든 남자가 젊은 여자를 꼬드겨 가지고 이런 데 와서.”

   주차해둔 곳까지 내려왔다. 그랜저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 사람들이 타고 온 차가 분명했다.

   “저 짓 하려고 여기 왔구먼. 떳떳하지 못한 사이니까 번호판을 가리고.”

   나는 번호판을 가린 나무넝쿨을 발로 차버렸다. 44×8이라는 번호가 또렷이 보였다. 그날 우리는 전등사를 둘러보고 오다가 저녁식사를 하고 밤늦게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10월말쯤에 시골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자고 했다. 지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나눈 두 번째 키스는 지수가 더 적극적이었다.

   내가 사무실에서 지수의 전화를 받은 것은 수요일 아침 막 출근했을 때였다. 오늘 아침 신문에 강화도 OO저수지 위 계곡에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벌거벗은 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났는데 시신의 상태로 봐서 숨진 지 3, 4일 정도 지난 것 같단다. 지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그때 본 그 여자가 아닌가 싶어요. 범인은 그 남자이고.”

   나는 그때 찍은 사진을 뽑았는지 물었다.

   “, 뽑았어요. 두 사람 다 얼굴이 옆모습으로 나왔어요. 차번호도 알잖아요. 44×8. 검정색 그랜저.”

   “틀림없어! 이따 퇴근 때 만나서 같이 경찰서에 가자고. 그런 놈은 꼭 잡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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