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남자는 괴로워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20:56

본문

 

남자는 괴로워

 

최용현(수필가)

 

   “태환아,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봐. 아빠가 사줄 테니까.”

   사우나를 나서면서 내가 묻자, 오늘 웬 일이냐는 듯 태환이가 나를 한 번 힐끗 올려다보고는 바로 대답했다.

   “피자요, 아니면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랑 콜라 사먹는 것도 좋고.”

   “알았어, 롯데리아엔 다음에 가고 오늘은 피자 사줄게. 그 대신 피자 먹고 나서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가야 돼.”

   “병원엔 왜요?”

   “, 주사 한 대 맞으면 돼.”

   “……….”

   나는 태환이랑 함께 한 피자집으로 들어갔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텅 비어있었다. 사우나에 갈 때마다 태환이에게 빨리 포경수술을 시켜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대여섯 살밖에 안 된 애들이 포경수술 한 것을 사우나에서 더러 보아왔기 때문이다. 일찍 시켜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잡지에서도 여러 번 보았었다.

   태환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 벌써 2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 겨울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면 이제 곧 3학년이 된다. 어제 아내가 우리 동네에 있는 비뇨기과의원에 전화를 하여 오늘 오전 11시에 수술받기로 예약을 했었다.

   피자가 나왔다. 나는 여섯 등분 중 두 조각만 먹고 나머지는 모두 태환이에게 주었다. 태환이가 맛있게 피자를 먹는 것을 보며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 제대를 앞둔 고참들이 밤에 의무실에서 포경수술을 받고는 통증 때문에 내무반에서 끙끙 앓는 것을 보곤 했었다. 나도 포경수술을 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부대 의무실에서 하는 것은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나는 휴가 때 민간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첫 휴가 때 부산 충무로에 있는 한 비뇨기과에 찾아갔다.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벗은 바지 쪽에는 커튼을 쳐주었다. 커튼 너머에서 계속 사그락 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마취주사 때문인지 아픈 감각은 전혀 없었다. 20분쯤 지났을까.

   ‘미스 임, 수술이 잘 됐는지 시험 한 번 해볼래?’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도의가 간호사에게 농담으로 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기억나는 것을 보면 의식은 또렷했던 것 같다.

   수술이 끝나자, 간호사가 수술부위를 흰 붕대로 칭칭 감아주었다. 무슨 영화에서 본 미라 같아서 피식~ 실소가 나왔다. 마취가 풀리면 통증이 오니까 빨리 집으로 가란다. 시간에 맞춰서 약을 먹되 술은 절대로 마시지 말라고 했고, 일주일 뒤에 실을 뽑으러 오라고 했다. 그땐 휴가 기간이 25일이나 되었으니 별 문제는 없었다.

   나는 펭귄 마냥 뒤뚱거리면서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아니나 다를까 마취가 풀리니 격심한 통증이 왔다. 소변이 마려울 땐 통증이 더욱 심했다. 그 부분이 벌겋게 부어올라 엄청나게 팽창되어 있었다. 늘 텐트(?)를 치고 있어서 서있기도 앉아있기도 불편했다.

   며칠 동안 꼼짝 않고 누워 있다가 7일째 되는 날 그 병원에 갔다. 미스 임이 조심스럽게 실을 뽑아주었다. 그놈(?)이 좀 가만히 있어주면 좋으련만 또 텐트를 치는 바람에 핀셋이 그 부분을 건드릴 때마다 따끔하면서도 짜릿한 통증이 왔다. 이윽고 다 됐어요.’ 하면서 미스 임이 도구를 챙겨서 나갔다. 후련했다.

   집에 오는 길에, 모처럼 해방된 기분에 친구들과 탁구장에 갔다. 탁구를 치다가 그 부분이 탁구대 모서리에 부딪치고 말았다. 나는 탁구장 바닥에 드러누워서 그 부분을 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탁구장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죄다 몰려왔다.

   “아빠, 다 먹었어.”

   태환이의 목소리가 나를 추억에서 깨어나게 했다. 피자 접시는 물론 콜라까지 깨끗이 비어있었다. 이렇게 잘 먹는 것을 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나 싶었다. 가끔씩 애들에게 피자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어서면서 말했다.

   “, 이제 병원에 가야지. 태환이 주사 맞아도 안 울 거지? 전에 예방주사 맞았을 때도 안 울었다지.”

   “……….”

   병원까지는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였다. 걸어가기로 했다. 나중에 올 때는 택시를 타기로 하고. 병원에 도착하자 곧바로 수술이 시작되었다. 태환이가 울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간호사가 잘 구슬린 탓인지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데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술 다 끝났으니 들어가 보세요. 가실 때 약 타가지고 가시고요.”

   태환이는 그냥 멍하니 누워있었다.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그 부분은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었다.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보기가 좀 애처로웠지만 조심조심 바지를 추어올려서 데리고나왔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아내가 이불을 깔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 일곱 살인 태희에게는 오빠가 수술을 받아서 아프니 절대로 오빠 곁에 가지마라고 엄명을 내려놓았다.

   요 위에 뉘었다.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헐렁한 잠옷으로 갈아 입혔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프다고 야단이다. 그 부분을 건드릴까봐 이불을 덮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는 것이 문제였다. 소변보는 것이 고통스럽단다. 아내가 화장실까지 따라다녔다. 밤엔 잠도 못 자고 끙끙 앓았다. 그때마다 아내도 일어나 함께 앓았다.

   하룻밤 자고 나니 좀 나아진 듯 했다. 밥은 아내가 떠먹여 주었다. 태환이가 볼만한 비디오를 빌려와서 줄줄이 보여주었다. 비디오를 다 보고 나면 게임기를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게임을 할 때만은 신통하게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은 아내가 모조리 사주었다. 양념통닭, 신포만두, 피자,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태환이가 왕자처럼 행세하는 동안 태희는 완전히 찬밥 신세였다. ‘나도 수술 할래. 맛있는 거 사줘.’ 하고 칭얼대는 태희를 보고 아내가 닭다리 하나를 쥐어주며 문밖으로 쫓아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환이가 누운 채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태희는 좋겠다. 그런 수술 안 해도 되고. , 남자는 괴로워.”*

 

'에세이 및 콩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일락꽃 향기  (0) 2018.12.22
천국과 지옥 사이  (0) 2018.12.22
낮 꿈  (0) 2018.12.22
어떤 종친회  (0) 2018.12.22
2년만의 외출  (0) 2018.12.2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