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현(수필가)
‘하늘과 땅(Heaven and Earth, 1993년)’은 베트남 전쟁 중에 여러 가지 고난과 우여곡절을 겪다가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민 간 실존 여성 풍티 리리의 자서전인 두 회고록을 각색하여 올리버 스톤 감독이 만든 드라마 전쟁영화이다.
이 영화는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이 연출한 베트남 전쟁 3부작 중에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두 영화 ‘플래툰’(1986년)과 ‘7월 4일생’(1989년)을 이은 마지막 작품으로, 골든 글로브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미국인의 시선이 아닌 베트남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베트남 전쟁이라는 점에서 베트남 전쟁을 다룬 무수한 기존영화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미국의 관점으로 만든 앞선 두 영화는 각각 1억 3,800만 달러와 1억 6,1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려 대박을 터뜨렸으나, 베트남 민중의 관점으로 만든 ‘하늘과 땅’은 제작비 3,300만 달러를 투입하여 59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려 흥행에 참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4년에 개봉하여 서울 관객 5만 8,000여 명에 그쳤다.
베트남의 농촌 마을 킬라에서 대대로 벼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고지식한 아버지(행 S. 응고르 扮)와 순박한 어머니(조안 첸 扮)의 여섯 번째 아이로 태어나 이제 18살이 된 리리(히엡 티 레 扮)는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이다.
1963년, 한가롭던 베트남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리리의 오빠 보우와 가장 사랑하는 남동생 사우가 베트콩 혁명 전선에 끌려가자, 뒤이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이 들어와 리리에게 베트콩의 염탐꾼이라는 누명을 씌워 끌고 가서 심한 구타와 전기고문을 하는데, 어머니가 지참금으로 모아둔 돈을 뇌물로 주면서 풀려난다.
리리가 무사히 풀려나오자, 이번에는 베트콩 측으로부터 정부군의 밀고자로 의심을 받아 끌려가서 또 심문당한다. 이때 리리를 남몰래 흠모하던 킬라 마을 출신 베트콩 청년이 그녀를 강간하고 풀어준다. 리리는 이제 정부군과 베트콩 양쪽에 첩자라는 누명이 씌워져 이곳에서 살 수가 없다.
어머니와 함께 사이공으로 간 리리는 한 부잣집의 가정부로 일하게 되는데, 친절하게 대해주는 집주인 안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첫사랑이다. 리리는 집주인의 아이를 배게 되고, 그의 부인에게 들켜서 그 집에서 쫓겨난다. 이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란다.
다낭의 술집에 있는 언니에게로 간 리리는 만삭의 몸으로 길에서 미군에게 술과 담배를 판다. 아빠가 찾아오자, 리리는 숨어버린다. 이후 아들을 낳고 미혼모가 된 리리는 다시 미군 부대 앞에서 날품팔이한다. 그러다가 곧 귀국하는 미군 병사로부터 1년 생활비에 해당하는 큰돈을 받고 몸을 주기도 한다. 그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
리리에게도 행복한 시간이 찾아온다. 미군 하사관 스티브(토미 리 존스 扮)가 리리에게 사랑을 고백하자, 처음에는 이별의 상처가 두려워 거절했지만, 사생아인 아들의 존재를 알고도 변함없는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리리는 스티브와 결혼하여 그의 아들을 낳는다. 스티브의 복무기간이 끝나자, 그를 따라 미국으로 간다.
리리는 풍요로운 미국 땅에서 다시 아들을 낳는다. 그런데 남편은 이혼한 전 아내와의 양육비 갈등과 베트남 전쟁에서의 무수한 살상(殺傷)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정불화가 계속되고 남편의 증세가 점점 심해져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고민하던 리리는 유명한 스님을 찾아간다. 그는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전생의 업보를 치른다면서, 가정에 아버지가 없는 것은 집에 지붕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비와 용서가 해결책이라고 일깨워 준다. 다시 마음을 다잡은 리리가 스티브와 화해하려고 하는데, 스티브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고 만다.
다시 혼자가 된 리리는 식당과 임대주택 사업으로 성공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13년이 지나 마흔 살이 된 리리가 세 아들과 함께 베트남을 방문한다.
사이공에서 찾아간 큰아들의 아버지이자, 첫사랑인 집주인 안은 이제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고향 킬라에는 여전히 가난하게 살아가는 어머니와 언니들, 보우 오빠가 있었다. 전쟁에서 미군과 싸운 보우 오빠는 미국에서 살다 온 리리를 탐탁지 않아 하지만, 어머니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딸이라며 리리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녀는 세 아들과 함께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베트남의 여러 의료시설 설립을 지원했다.’라는 끝 자막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난다.
‘하늘과 땅’은 베트남 전쟁에 끈질긴 집념을 보였던 올리브 스톤 감독이 베트남 민중의 관점에서 만든 영화로,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남은 한 베트남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그대로 영화에 담아냈다. 농촌 출신의 동양인이라면 누구나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21살 때 베트남 전쟁에 자원입대하여 전투부대에서 복무하다가 두 번이나 부상(負傷)했다고 한다.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평생 그를 괴롭혀 온 마약 중독도 그때 얻게 되었다. 그의 영화는 특유의 사회비판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뜨거운 지지파와 안티파가 동시에 존재한다.
1946년생인 올리버 스톤 감독은 우리나라에 여러 번 왔었고, 한국 영화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올리브 스톤 부부를 직접 만나본 윤여정 배우에 의하면 1996년부터 부부관계를 유지해 온 그의 세 번째 부인은 전남 신안 하의도 출신의 정선정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 ‘하늘과 땅이 계속 뒤바뀌는 삶을 살았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굴곡진 삶을 은유한 말이다. 리리는 다시 찾은 고향에서 전생의 업보를 풀 깨달음의 소리를 듣는다. 어디에서 살든, 어떻게 살든, 그곳이 같은 하늘과 땅 사이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