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현(수필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 1989년)’는 ‘미저리’(1990년)와 ‘어 퓨 굿 맨’(1992년) 등을 연출한 롭 라이너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2000년 미국영화연구소(AFI) 선정 100대 코미디 영화에서 23위에 올랐다.
제작비 1,600만 달러를 투입하여 북미에서 9천만 달러, 해외에서 1억 달러, 총 1억 9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려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관객 35만 명을 기록하여 1989년 영화흥행 순위에서 10위 안에 드는 호성적을 거두었다. 2016년 재개봉 때는 관객 2만 명을 기록했다.
이 영화의 OST는 뉴욕 감성과 로맨틱한 분위기를 간직한 재즈 명반으로, 빌보드 재즈 상위권을 기록하며 2백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영화에서는 원래의 아티스트들이 부른 원곡이 나오지만, 앨범에 수록된 것은 모두 해리 코닉 주니어가 불러 그를 스타반열에 올려놓은 어레인지 곡들이다.
1977년, 시카고대학교를 졸업한 해리(빌리 크리스탈 扮)와 샐리(멕 라이언 扮)는 학교에서 함께 승용차를 타고 뉴욕으로 가는데, 가는 18시간 동안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느냐?’라는 주제로 설전을 벌인다. 해리가 ‘남녀 사이의 우정은 불가능하다.’ 하고 주장하자, 샐리는 ‘그러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겠네요,’ 하고 말한다. 두 사람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히 악수만 하고 헤어진다.
5년 후, 정치자문가 해리는 우연히 공항 대기실에서 뉴욕 매거진 기자 샐리가 남자친구인 변호사 죠와 열렬히 키스하는 것을 본다. 샐리는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된 해리로부터 헬렌과 곧 결혼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두 사람은 또 남녀 간의 친구 문제로 설왕설래하다가 헤어진다.
6년 후, 두 사람은 서점에서 우연히 재회한다. 샐리는 죠와 서로 안 맞아서 헤어졌지만, 담담해한다. 그러나 해리는 세무사랑 바람난 아내가 결혼생활을 끝내자고 해서 이혼했는데, 아직도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별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서로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는 친구가 된다. 가끔 식사도 함께하고, 밤늦게 전화 통화도 한다.
연말 송년회 파티에서 만난 해리와 샐리는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면서 함께 춤을 추다가 어색한 키스를 하게 된다. 이후 이들은 각자의 친구인 제스(브루노 커비 扮)와 마리(캐리 피셔 扮)를 데리고 나와서 서로에게 소개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제스와 마리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귀게 된다.
어느 날 밤, 샐리가 울먹이면서 전 남자친구 죠가 결혼한다고 연락이 왔다면서 ‘좀 와줄래?’ 하고 해리에게 전화가 온다. 샐리의 집에 도착한 해리는 울고 있는 샐리를 안아주다가 묘한 감정에 빠져들어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내게 된다. 아침에 일어난 해리는 왠지 어색해서 그 자리를 떠나는데, 그날 저녁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실수였다고 말한다.
얼마 후, 제스와 마리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난 해리와 샐리는 또다시 그날 일을 들먹이며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인다.
1988년, 제야(除夜)의 파티에 참석한 샐리는 문득 외로움을 느끼며 집에 가려고 파티장을 나온다. 거리를 배회하던 해리는 샐리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제야의 파티장으로 뛰어가다가 만난 샐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샐리는 연말이라 외로워서 그런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데, 해리는 사랑하는 이유를 열거한다. 그러자 샐리는 ‘당신은 정말 미워할 수가 없어.’ 하고 말한다. 두 사람은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뜨겁게 키스한다.
해리와 샐리는 첫 만남 이후 12년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린다. 이 영화는 중간중간에 노부부들이 나와서 자신들이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한 인터뷰를 보여주는데, 마지막에 해리와 샐리의 인터뷰가 나오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에서 남녀주인공의 톡톡 튀는 대사와 개성 있는 연기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년)의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여성 감독 노라 에프론의 빼어난 각본과 롭 라이너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 덕분이다. 나온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지만 아직도 로맨틱 코미디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화 중간쯤에, 해리가 식당에서 자신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여자를 만족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샐리는 여자는 오르가슴을 가짜로 연기할 수 있다면서 그 자리에서 오르가슴을 연기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 테이블의 할머니가 웨이터에게 ‘저 여자가 먹는 거로 주세요.’ 한다. 이 할머니는 롭 라이너 감독의 어머니인데, 저 대사는 대본을 보여줬을 때 어머니가 낸 아이디어로, 감독이 영화에 출연해서 그 대사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어머니가 쾌히 승낙해서 나온 장면이라고 한다.
해리가 집에 찾아갔을 때 샐리가 울면서 ‘크리넥스~’ 하자, 해리가 크리넥스 통에서 휴지를 빼준다. 그러자 샐리가 ‘죠의 결혼 상대 여자 이름이 킴벌리래.’ 하면서 노골적으로 간접광고를 한다. 또, 이 영화 덕분에 ‘머피의 법칙’과 반대되는 ‘샐리의 법칙’도 나왔다. 이것은 ‘지각했는데 마침 상사가 자리에 없거나, 늦게 출발했는데 오히려 일찍 도착했을 때’ 등에 적용되는 법칙이다.
멕 라이언은 1997년에 우리나라에서 화장품 광고를 찍은 후, 미국의 TV 토크 쇼에 나와서 “아시아 어떤 나라에서 수녀복을 입고 광고를 찍었는데, 제품명이 어법에 맞지 않게 ‘섹시 마일드’라나 뭐라나.” 하면서 우리나라와 광고주를 비하하여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2025년 12월 14일, 롭 라이너 감독이 자택에서 아내와 함께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향년 78세이다. 마약중독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 닉 라이너가 부모를 살해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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