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현(수필가)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1987년)’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푸이의 자서전 ‘황제에서 시민으로(From Emperor to Citizen)’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출신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연출한 시대극 서사영화이다. 이탈리아와 영국, 중국의 합작으로 만들어졌으며, 영어를 기본 대사로 사용하였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녹음상, 의상상, 미술상, 작곡상 등 9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9개 부문을 모두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우며 영화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장엄하고 화려한 푸이의 즉위식 장면과 이어진 첫 궁정 나들이 장면은 다시 보기 어려운 명장면이다.
제작비 2천4백만 달러를 투입하여 4천4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제작비에 비해 수익이 너무 적어서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겠으나, 당시로서는 엄청난 제작비가 수지(收支) 균형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에서 관객 250만 명을 돌파하며 1988년 개봉작 중에서 ‘다이하드’(1988년)에 이어 흥행 순위 2위를 기록했다.
영화사상 처음으로 자금성을 몇 주 동안 빌려서 촬영했는데, 중국 정부에서 천안문에 걸려있던 모택동 대형 초상화를 내려주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었다. 또, 당시 중국 문화부 차관인 잉 루오청이 전범수용소장 역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1950년 중국과 소련 국경지대 기차역. 소련에서 기차를 타고 온 푸이(존 론 扮)는 전범 800여 명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 전범자수용소로 이송된다. 그는 화장실에 들어가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지만, 곧 발각되어 수용소 사무실에서 그간의 행적을 취조받으며 지나간 세월을 되새기게 된다.
1908년 북경 자금성. 자식이 없는 광서제가 붕어(崩御)하자, 세 살이 된 푸이는 태황태후인 서태후로부터 후계자로 지명받아 광서제의 뒤를 이어 청나라의 황제가 된다. 서태후도 푸이가 즉위한 다음 날 세상을 떠난다. 푸이는 즉위한 지 3년 만에 신해혁명의 불길에 휩싸여 황제 칭호만 남긴 채 퇴위당하여 자금성에 연금된다.
소년이 된 푸이는 영국인 가정교사 존스턴(피터 오툴 扮)의 가르침과 영향으로 서양 문물을 익히면서 자전거를 배우고,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가 하면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의 유학을 꿈꾼다. 궁밖에 사는 생모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궁 밖으로 나가지 못한 푸이는 신문물을 익힌 완룽 황후(조안 첸 扮)와 문수 후궁을 한꺼번에 맞이하게 된다. 푸이는 황실 재산을 좀먹는 환관들을 대거 축출하는 등 황궁 내의 개혁을 시도한다.
1924년 푸이는 군사 쿠데타 세력에 의해 자금성에서 쫓겨나고 황제 칭호마저 빼앗긴다. 푸이가 텐진의 일본인 구역으로 피신하자, 문수 후궁은 이혼을 요구하며 떠나고, 가정교사인 존스턴도 영국으로 귀국한다. 푸이는 일본 특무기관원의 감언에 속아 조상들의 고향인 만주국의 황제가 된다. 그러나 황제 칭호는 허울에 불과하였고 실권은 일본인들이 쥐고 있었다. 푸이의 우매함과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실망한 완룽 황후는 아편 중독에 빠진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나자, 푸이는 일본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푸이는 이미 만주에 들어온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중국 전범자수용소로 넘겨져 교도소에서 사상교육을 받고 10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다. 북경으로 돌아온 푸이는 식물원에 취직하여 정원사로 일한다.
1967년, 문화대혁명으로 홍위병이 온 북경 시내를 휩쓸고 다니는 가운데, 푸이는 자금성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여 성안에 들어간다. 옛 기억이 떠오른 푸이는 태화전 옥좌로 올라가는데, 이때 경비원의 어린 아들이 뛰어와 거기에 올라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자 푸이가 ‘여기는 내 집이었고, 나는 중국의 황제였단다.’ 하고 말하자, 아이는 증명해 보라고 말한다. 푸이는 환하게 웃으며 옥좌에 앉아서 옥좌 바로 뒤에 있던 여치 통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주며 열어보라고 한다. 아이가 여치 통에서 기어 나오는 여치를 보는 사이에 푸이는 사라진다.
세월이 흐르고, 자금성은 하루 평균 5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오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가이드가 ‘이곳이 청나라의 황제가 즉위했던 태화전입니다. 마지막으로 즉위한 황제는 아신자로 푸이였고, 당시 세 살이었습니다. 그는 1967년에 사망했습니다.’ 하고 소개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마지막 황제’는 서태후에 의해 황제로 지명된 세 살 푸이가 즉위한 1908년부터 신해혁명과 군사 쿠데타, 만주국의 꼭두각시 황제, 문화대혁명을 거쳐 일개 시민으로 생애를 마친 1967년까지 중국 역사상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푸이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여준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많은 곡 중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곡한 서정적인 느낌의 ‘Rain’이 가장 유명하다.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다.
푸이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다 보니 왜곡과 누락이 더러 있다. 푸이는 군주제 회복을 위해 여러 가지 모의에 가담했는데, 그런 내용은 빠진 채 이곳저곳 끌려다닌 것처럼 묘사된 것은 사실을 호도(糊塗)하는 것이다. 또, 완룽 황후가 운전기사와 바람이 나서 낳은 아이는 영화에서처럼 주사를 맞고 죽은 것이 아니고 푸이가 아궁이에 던져서 죽였다. 푸이가 소련에 남겠다고 스탈린에게 애걸했던 사실과 재혼한 사실도 빠졌다.
‘마지막 황제’는 푸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163분 분량의 극장판과 여러 주변 인물들의 서사가 골고루 들어간 218분 분량의 확장판의 두 가지 판본이 있다. 확장판은 제작비를 지원한 이탈리아 방송국에서 4부작 미니시리즈로 방영될 초기 편집본이며, 최종 감독판은 극장판이라고 베르톨루치 감독이 분명하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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