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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6. 2. 1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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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최용현(수필가)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1979년)’는 미국의 소설가 에이버리 코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로버트 벤튼이 각색과 감독을 맡아 연출한 가족영화이다. 제작비 800만 달러를 투입하여 북미에서만 1억 600만 달러를 벌어들여 대박을 터뜨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관객 26만 명을 기록하여 흥행에 성공했다.

   아카데미 9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며,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화로 꼽히는 ‘지옥의 묵시록’(1979년)을 누르고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남우주연상(더스틴 호프만), 여우조연상(메릴 스트립)을 받았다. 골든 글로브에서도 4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비발디의 만돌린 협주곡 다장조 1악장이 영화에 삽입되어, 영화와 음악이 동시에 상승효과를 누렸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한 가정주부가 자아를 찾기 위해 남편과 어린 아들을 두고 집을 나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흔한 별거와 이혼, 양육권 소송과 같은 가정 문제를 다루면서 당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여성만의 의무가 아니라는 인식이 싹트던 분위기를 반영한 작품이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눈물겨운 부성애와 아들의 양육권을 둘러싼 살벌한 법정 다툼이다.

   결혼 8년 차에 접어든 가정주부 조안나 크레이머(메릴 스트립 扮)는 7살 아들 빌리 크레이머(저스틴 헨리 扮)를 키우고 돌보면서 살아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삶의 의욕을 잃고 무력감에 빠진 자신을 발견한다. 회사일 밖에 모르는 남편 테드 크레이머(더스틴 호프만 扮)는 그런 아내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집에 와서도 회사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를 보다 못한 조안나가 집을 뛰쳐나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갑자기 변해버린 가정환경에 당황한 테드는 서투른 솜씨로 빌리의 아침을 준비하고 등교도 시켜주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하던 역할을 하게 된다. 테드가 다니는 회사의 부사장은 테드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되자, 회사 일에 전념하려면 빌리를 친척 집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그러나 테드는 자신이 빌리를 돌볼 것이라고 말한다.

   테드와 빌리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잘 맞춰 나간다. 테드 부부와 친하게 지내던 이웃 아파트의 이혼녀 마가렛은 조안나가 집을 나갔다는 얘기를 듣고 테드를 위로하면서 가끔 빌리를 봐주기도 한다. 어느 날, 빌리가 놀이터 정글짐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여 테드가 빌리를 안고 병원 응급실까지 뛰어가 눈 밑을 10바늘 꿰매기도 한다.

   조안나가 집을 나간 지 15개월쯤 되는 어느 날, 조안나의 전화를 받고 테드와 조안나가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조안나는 이제 직장이 있어서 자립할 수 있게 됐다며, 어린이는 엄마 품에서 커야 한다면서 빌리를 데리러 왔단다. 안 되면 양육권 소송을 걸어서라도 빌리를 데려가겠다는 것이다. 테드는 ‘어림없는 소리!’라고 소리치며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동안 빌리를 돌보느라 직장 일을 소홀히 한 탓에 테드가 회사에서 해고된다. 그 때문에 양육권 분쟁은 직장이 있는 조안나에게 유리하게 진행된다. 테드는 다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덕분에 취업에 성공하지만, 양육권 소송에서 패하고 만다. 이제 테드는 매월 400달러의 부양비를 조안나에게 보내야 하고, 격주로 주말과 주중 하루만 합의를 통해서 빌리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빌리를 데려가기로 한 날, 조안나가 1층에 와있다며 테드에게 잠시 내려오라는 전화를 한다. 테드를 만난 조안나는 어젯밤에 잠을 설쳤다며, 빌리에게는 현재 살고 있는 아빠의 집이 갑자기 가게 된 엄마의 집보다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빌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빌리를 위해서 빌리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한다.

   진정한 사랑의 힘은 재판 승소의 위력도 초월하는 것일까. 테드와 빌리가 헤어지기 힘들어하는 것을 잘 아는 조안나가 아들을 데려가지 않기로 한 것이다. 조안나의 양육권 포기 덕분에 테드는 계속 빌리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조안나가 빌리를 만나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영화가 끝난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플롯에도 불구하고,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와 감독의 탁월한 연출 덕분에 품격 있는 가족 드라마이면서, 흥미진진한 법정 드라마가 되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양육권을 둘러싼 재판 장면은 남녀주인공의 메소드 연기와 함께 양측 변호사들의 불꽃 튀는 설전으로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두 부자(父子)가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의 변모이다. 조안나가 떠난 뒤, 처음에 테드가 프렌치토스트를 만드는 장면은 그동안 아빠가 얼마나 가정에 무심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식사 준비에 점점 익숙해져 빌리가 테드의 집을 떠나는 날은 두 사람의 손발이 척척 맞아들어간다. 이제 두 사람이 함께 식사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레스토랑에서 테드와 조안나가 만나서 언쟁을 벌이다가 테드가 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와인잔을 벽에 던져 깨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대본에 없던 장면인데, 촬영 직전에 더스틴 호프만이 카메라 감독에게만 살짝 알렸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메릴 스트립은 놀란 와중에 감독의 컷 사인을 기다렸다가, 나중에 더스틴 호프만에게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과연 아카데미상을 받을 만한 연기 천재들 아닌가.

   흔히 메소드 연기자들은 괴팍하다는 말이 있는데, 메릴 스트립은 더스틴 호프만의 괴팍한 성질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더스틴 호프만은 연기 똑바로 하라며 메릴 스트립의 뺨을 때렸다고 하는데, 일부러 기를 죽이려고 그랬단다. 이후 메릴 스트립은 더스틴 호프만과는 두 번 다시 영화에서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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