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현(수필가)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 1954년)는 부두노동자들을 장악한 악덕 노동조합의 폭력과 부패, 횡포에 맞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보여주는 범죄드라마영화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년)와 ‘에덴의 동쪽’(1955년)으로 유명한 엘리아 카잔 감독의 작품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12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등 8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리 J. 콥과 칼 말든, 로드 스타이거는 표가 분산되어 모두 수상에 실패했다. 1997년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100대 영화에서 8위, 2007년 재선정 때는 19위에 올랐다.
‘워터프론트’(워터프런트가 올바른 표현)는 해변이나 해안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부두를 의미한다. 권투선수 테리(말론 브랜도 扮)는 중요한 경기에서 그 지역조직의 보스인 프렌들리(리 J. 콥 扮)의 지시대로 져주다가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테리는 프렌들리가 장악한 노동조합 소속의 부두노동자로 일하게 되는데, 그의 형 찰리(로드 스타이거 扮)는 프렌들리의 오른팔이다.
어느 날, 테리는 프렌들리의 지시를 받고 부두치안위원회에서 프렌들리의 불법행위를 증언하기로 되어있는 친구 조이를 건물 옥상으로 불러낸다. 그런데, 증언을 못하도록 회유를 하거나 협박을 할 줄 알았는데, 프렌들리는 부하들을 시켜서 옥상에서 아래로 밀어뜨려 조이를 살해한다. 이로 인해 충격을 받은 테리는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죽은 조이의 여동생 이디(에바 마리 세인트 扮)가 찾아와 오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있고, 마을의 배리 신부(칼 말든 扮)는 부두노동자들에게 프렌들리 일당과 맞서 싸워야한다고 설파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프렌들리에게 보복을 당하거나 일자리를 잃을까봐 두려워서 배리 신부의 뜻에 선뜻 동참하지 못한다.
배리 신부가 주관하는 교회 모임에서 조이 문제에 대한 후속대책을 협의하고 있을 때, 프렌들리 일당이 난입하여 폭력으로 모임을 해산시킨다. 테리는 이디가 안전하게 나가도록 도와주는데, 두 사람 사이에 핑크빛 분위기가 싹튼다. 그런데 노동자 두간이 배리 신부와 뜻을 함께 하겠다고 하면서 치안위원회에 나가서 프렌들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다. 그러자 프렌들리 일당은 하역 사고로 위장하여 두간을 살해한다.
배리 신부는 테리에게 조이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말해달라고 하는데, 테리는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한다. 혼자 끙끙 앓으며 고민하던 테리는 마침내 조이의 죽음에 자신도 연루되어 있음을 배리 신부와 이디에게 고백한다. 큰 충격을 받은 이디는 테리에게서 떠나려 하지만, 이디를 사랑하는 테리는 놓아주지 않는다.
테리는 조이의 죽음에 관한 증인으로 주 정부 청문회의 출석 요구서를 받는다. 프렌들리 일당은 테리에게 겁을 주면서 동시에 테리의 형 찰리를 협박하여 증언을 막으려 하지만 테리는 끝내 확답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교통사고를 위장하여 테리를 죽이려 하는데, 이디가 곁에 있어서 미수에 그친다. 그러자 이들은 찰리를 잔혹하게 살해한다. 드디어 결심을 한 테리는 청문회에서 프렌들리가 조이의 살인을 직접 지시했다고 증언한다. 아울러 두간과 찰리의 살인도….
다음날, 주요 신문에 ‘프렌들리는 워터프론트의 살인자 보스’라는 제목의 1면 기사가 난다. 조사를 받게 된 프렌들리는 테리를 쏘아 죽이려는 일당들을 만류한다. 테리는 프렌들리를 찾아가서 ‘넌 사기꾼이고 깡패두목이야!’ 하면서 치고받고 싸운다. 그때서야 노동자들은 프렌들리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테리를 응원하는데, 결국 노동자들이 프렌들리 일당에게 빼앗겼던 부두노동조합 운영권을 다시 찾으면서 영화가 끝난다.
‘워터프론트’의 각본을 쓴 버드 슐버그는 1948년에 말콤 존슨이 ‘뉴욕 선(New York Sun)’지에 연재하여 1949년에 퓰리처상을 받은 시리즈 기사인 ‘부둣가의 범죄’를 보고 영감을 얻는다. 집필에 들어간 버드 슐버그는 노조를 장악한 세력의 폭력과 부패, 갈취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의 모습을 자신의 스토리텔링으로 실감나게 그려내어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게 되고 영화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엘리아 카잔 감독은 메카시 선풍이 휘몰아치던 1952년에 자신이 과거에 공산주의자였음을 고백하고 전향을 했다. 그 때문에 이 영화는 엘리아 카잔 감독과 각본을 쓴 버드 슐버그가 과거에 영화계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국 하원의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서 동료들을 고발한 행위를 비유적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남자주인공 테리 역은 말론 브란도에게 제의가 갔으나 거절하는 바람에 프랭크 시나트라로 기울다가 엘리아 카잔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말론 브란도가 맡게 되었다. 말론 브란도는 이 영화에서 처절한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며 30세에 아카데미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아 영화인생 초반에 자신의 인생작을 찍게 된 것이다.
이디 역을 맡은 눈부신 금발의 에바 마리 세인트는 연극배우 출신으로, 데뷔작인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여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년)와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영광의 탈출’(1960년) 등에 출연하면서 의미 있는 필모그래피를 남겼다.
그녀는 1924년 7월 4일생으로 생일이 미국 독립기념일과 같다. 1951년에 프로듀서 제프리 헤이든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는데, 그 흔한 스캔들이나 이혼경력 하나 없이 2016년 남편이 타계할 때까지 65년간 함께 했다. 2024년 7월 4일에는 100회 생일을 맞아 인터뷰를 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오래오래 장수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