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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5. 1. 17.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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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

 

최용현(수필가)

 

   자택 정원을 둘러보던 노인 이진석(장민호 扮)은 육군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한국전쟁 유해발굴단이 강원도 양구 두밀령에서 ‘이진석’이라고 새겨진 만년필을 발견했는데, 참전용사 신원조회를 해보니 생존자로 나와서 전화를 한 것이란다. 그는 오래전의 가족사진을 보다가 형이 준 구두 한 켤레를 옷장에서 꺼내 만져보고 50년 전을 회상하며 집을 나선다.

   1950년 6월, 서울 종로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진태(장동건 扮)는 내년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동생 진석(원빈 扮)에게 ‘이진석’이라고 이름을 새긴 만년필을 선물한다. 우애가 돈독한 형제는 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벙어리 홀어머니와 가게를 도와주고 있는 진태의 약혼녀 영신(이은주 扮), 그리고 영신의 어린 세 동생과 함께 허름한 초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6월 25일, 서울 거리에 갑자기 북괴군이 쳐들어왔다는 가두방송과 함께 호외신문이 뿌려지고, 헌병들이 탄 군용트럭들이 돌아다니며 휴가 나온 장병들을 급히 복귀시키고 있다. 진태의 가족들은 짐을 꾸려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피난민들과 함께 무작정 남쪽으로 가는데, 7월 어느 날 대구에서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만다.

   만 18세이던 진석이 대구역 앞에서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징집되어 학도의용군으로 가득 찬 군용열차를 타게 된다. 진석을 되찾아오기 위해 군용열차에 오른 진태 또한 군인들과 대판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징집이 되어, 뒤쫓아 온 엄마와 영신과 열차 차창에서 안타까운 생이별을 한다.

   진태와 진석은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쉴 새 없이 포탄이 떨어지고 피비린내가 난무하는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다. 진석과 같은 소대에 배치된 진태는 대대장으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으면 동생을 전역(轉役)시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위험한 작전에도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운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국군은 북진을 시작한다.

   악랄하게 전공(戰功)을 쌓아가는 진태, 자신 때문에 괴물이 되어가는 형을 보면서 진석은 ‘그렇게 해서 훈장을 받아 내가 집에 가면 무슨 낯으로 어머니와 영신 누나를 보겠어?’ 하며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진태는 전쟁영웅이 되어 중사로 진급하고, 형제 사이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10월이 되자, 승승장구하던 국군은 평양에서 시가전을 벌인다. 진석은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포로로 잡힌 동네 동생 용석으로부터 엄마가 아픈 몸을 이끌고 영신 누나와 함께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압록강의 혜산진까지 북진하여 통일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드디어 진태가 태극무공훈장을 받게 되는데…,

   갑자기 중공군이 물밀듯이 쏟아져 내려오고, 국군은 다시 후퇴한다. 이때 진태가 용석을 쏘아죽이자, 진석은 ‘살려내 새끼야!’ 하며 형을 때리며 대든다. 서울근교에서 잠시 시간이 나자 진석에 이어 진태도 서울 집으로 향한다. 이때 보리쌀 준다고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영신이 반공청년단에 끌려가 총살당하는데, 그 과정에서 격렬히 저항하던 진태와 진석은 제압당해 창고에 갇힌다. 진태가 빠져나온 후 창고에 불이 나고, 불이 꺼진 뒤에 창고를 둘러보던 진태는 ‘이진석’이라고 새겨진 만년필과 그 옆에 불에 탄 유골을 발견하고 진석이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성을 잃은 진태는 방화를 지시한 상관을 돌로 쳐 죽이고 인민군에 귀순한다.

   그때 가까스로 창고를 빠져나온 진석은 대전의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진태가 인민군 소좌가 되었다는 삐라를 보고 자신이 죽은 줄 알고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석은 제대를 며칠 앞두었지만 원대(原隊)로 복귀하여 전선(戰線)을 넘어가 두밀령에서 국군과 대치하고 있는 형을 찾아낸다. 진태는 얼이 빠진 듯 진석을 알아보지 못한다. 잠시 후, 진석을 알아본 진태가 ‘먼저 가면 곧 뒤따라가겠다.’고 하면서 진석이 안전하게 귀대할 수 있도록 인민군을 향해서 기관총을 발사하기 시작한다.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진석은 무사히 돌아가지만, 진태는 결국 쓰러져 죽고 만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뒤  노인이 된 진석은 진태가 쓰러져 백골이 된 자리에서 이진석이라고 새겨진 만년필을 집어 들며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하면서 흐느낀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는 강제규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아 제작비 147억 원을 들여 경남 합천 영상테마파크에서 촬영한 전쟁블록버스터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두 형제의 드라마틱한 행적을 다루어 한국영화사상 두 번째 천만(1,175만) 관객을 돌파하여 불후의 명작 반열에 올라섰다. 그해 대종상과 청룡상,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과 촬영상, 남우주연상(장동건), 신인남우상(원빈) 등을 휩쓸었고, 아태영화제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미국에서는 ‘Brotherhood’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며,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작으로 출품되었다. 러닝 타임 148분.

   이 영화에서 피아(彼我)의 참호와 백병전 모습, 평양시가전 장면, 인민군이 주민들을 참살한 현장 등을 보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에 비견될 정도의 리얼리티로 한국영화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은 국군 중사가 갑자기 인민군 소좌가 되고, 그의 동생이 다시 인민군으로 넘어가 참호를 휘젓고 다니며 형을 찾는 마지막 부분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피소드 한 가지, 영화 초반에 진석과 진태 형제를 강제로 입대시켜 징병제를 비판한 점, 후반에 보도연맹 가입자를 처단하는 반공청년단을 사악한 단체로 부각시킨 점 때문에 국방부에서 이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러자 영화 제작진도 국방부를 업무방해죄로 맞고소를 했는데, 영화 제작진이 승소를 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개봉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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