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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몬로의 비문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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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릴린 몬로의 비문(碑文)

 

최용현(수필가)

 

   이발소에 갔다가 차례를 기다리면서 철지난 잡지를 뒤적거리다 왕년의 명우 오드리 헵번의 추모기사를 보았다. 영화 로마의 휴일티파니에서 아침을」「마이 페어 레이디에서의 요정처럼 깜찍하고 청순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을 것이다. 티 없이 맑고 큰 눈과 깡마른 몸매, 짧고 발랄한 헤어스타일.

   90년대 초, 눈가에 주름이 가득한 모습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나타나 TV를 보던 노신사들을 슬프게 하던 기억이 새롭다. 나이가 들어 은막에서 은퇴한 뒤로는 유니세프(국제아동보호기금)의 친선대사로서 아프리카 베트남 등지의 헐벗고 굶주린 어린이들을 찾아 봉사활동을 했다. ‘왜 편안한 여생을 보내지 않느냐?’고 어느 기자가 물었더니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어린 시절 썩은 감자와 잔디뿌리를 먹으며 끼니를 때웠던 시절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린 시절엔 무척 고생했던가 보다. , 요정 같은 외모 못지않게 마음씨도 고왔나 보다. 만년에 대장암과의 오랜 투병생활 중에서도 빈민구호활동을 헌신적으로 해왔다는 기사가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1993120일 세상을 떴으니 63세에 수()를 다했다. 아직도 짱짱한 나이인데. 오드리 헵번의 추모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한 시대를 화려하게 풍미하다가 대조적으로 삶을 마감한 두 여배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사람은 나이가 든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스크린에 비쳤던 여자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찬사를 받았던 스웨덴 출신의 전설적인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이다. 이름이 가르보라서 영화에서 갈보역할을 많이 하게 되었다는 희한한 유머를 남기기도 했던 불세출의 은막의 스타 그레타 가르보.

   영화계에서 은퇴하고 난 뒤에는 줄곧 숨어서 독신으로 은둔생활을 하다가 천수를 다하고 1990년에 86세로 죽었다. 가르보가 죽기 얼마 전에, 팔순이 넘은 그녀의 모습이 신문에 나온 적이 있었다. 포즈를 취해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을 몰래 스냅한 사진이었다.

   늙고 추해진 여느 팔순(八旬)의 할머니나 다름없이 변신해 있었다. 그 사진은 가르보의 이지적이면서도 요염한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런 독자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그 사진을 소개하는 글에는 이런 제목이 붙어 있었다.

   ‘! 참혹한 세월

   가르보는 그 사진이 신문에 실리고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났다.

   또 한 사람은, 황홀한 금발에다 약간 벌어진 선정적인 입술, 꿈꾸는 듯 초점 없는 눈동자, 그리고 특유의 뇌쇄적인 걸음걸이로 세계의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던 마릴린 몬로이다.

   브리지드 바르도(BB),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CC)와 함께 육체파 여배우의 대명사로 불렸던 마릴린 몬로(MM). 영화배우로서 정상의 시기에, 여자로서도 원숙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던 시기인 30대 중반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던 마릴린 몬로. 죽음의 순간까지도 숱한 화제를 뿌리며 전라(全裸)로 자신의 침실에서 발견되었던 마릴린 몬로.

   그녀의 죽음이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세계의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녀의 이런 불행한 종말이 배우로서는 어쩌면 행()이 아닌가도 생각되어 진다. 그녀가 출연했던 숱한 영화, 카메라맨 앞에서 취한 무수한 포즈들이 아직도 불멸의 작품으로 남아있고, 그녀의 늙고 추해진 모습은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마릴린 몬로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이제 칠십대, 이만한 사랑을 받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말이 있다. 미인은 명이 박하다는 뜻이니 일찍 죽는다는 얘기이다. 이 말을 실증해 낸 역사상의 인물은 수없이 많다. 우선 동서양의 대표적인 미인인 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가 그러했고, 우리나라에는 조선조 연산군 때의 장녹수나 숙종 때의 장희빈 등이 모두 그런 예에 속한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미를 발판으로 출세가도에 올라 권력의 정점에까지 진출했다가 수()를 다하지 못하고 정변에 희생된 미인들이다.

   그러나 역사상에서 정변에 희생된 미인들, 아니 여자들을 모두 합쳐보아도 정변에 의해 희생된 남자들보다는 그 숫자가 훨씬 적다. 그렇다면 미인박명이라는 말은, 모든 아름다운 것이 오래 가지 못하듯이 미인의 아름다움도 곧 사그라짐을 의미하는 통념적인 경구(警句)가 아닐까 싶다.

   물론 미인의 경우엔 일찍부터 남자들의 눈에 띄게 되고 그로 인해 평탄치 못한 삶을 살게 되어 박명(薄命)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전형적인 예를 마릴린 몬로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녀를 일찍 죽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었던 그녀의 미모와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레타 가르보, 마릴린 몬로, 오드리 헵번. 세 사람은 모두 뛰어난 미모를 가진 화려한 스타였지만, 나이가 들어 아름다움이 사그라지고부터는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 한 사람은 숨어서 혼자 살다 죽었고, 한 사람은 스타로서 정상의 시점에서 의문사 했다. 또 한 사람은 빈민구호사업을 위해 세계 각지의 빈민촌을 누비고 다니다가 죽었다.

   누가 가장 값진 삶을 살았는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의 사랑을 재산으로 하는 여배우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상의 시기에 죽은 마릴린 몬로의 삶이 가장 성공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거리에서 마릴린 몬로의 전기(傳記)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의 표지엔 마릴린 몬로의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사진과 함께 그녀의 비석사진이 나란히 담겨져 있었다. 그 비석에 새겨진 비문(碑文)은 이러했다.

   ‘MARILIN MONROE(1926~1962)’

   그뿐이었다. 마릴린 몬로라면 그 비석도 꽤 거창할 거고 비문도 상당히 수다하게 길 것이라는 내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나의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은 곧 고쳐져야 옳았다.

   그렇다. 마릴린 몬로라면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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