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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1. 3. 20.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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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The Pianist)

 

최용현(수필가)

 

   2002년,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의 유럽영화 두 편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한 편은 애드리언 브로디가 주연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The Pianist)’이고, 다른 한 편은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La Pianiste)’이다.

   전자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필두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수상했고, 세자르영화제 6관왕 등 여러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후자는 한 여교수의 독특한 사랑을 다룬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로, 칸영화제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을 동시에 석권했다.

   두 편 다 놓치기 아까운 수작(秀作)이지만, 여기서는 전자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939년, 유대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스와프 슈필만(애드리언 브로디 扮)이 한 인기 라디오 프로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는 중에 방송국이 폭격을 당한다.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것이다. 독일군은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별’ 표시를 한 완장을 차게 하더니, 바르샤바에 유대인거주구역인 게토를 조성하여 강제로 이주시키고 높은 담장을 쌓는다.

   슈필만은 자신의 팬이면서 첼로를 전공한 폴란드 처녀 도로타와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는데, 유대인은 공원이나 다방에 출입할 수가 없어서 변변한 데이트도 못한 데다 슈필만의 가족이 게토로 이주를 했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슈필만은 게토 내의 식당에 피아니스트로 취직하여 근근이 가족을 먹여 살린다.

   얼마 후, 나치 독일은 유대인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수용소로 가는 길에서 캐러멜 하나를 사서 여러 조각으로 잘라 가족들에게 한 조각씩 나눠주는데, 그것이 마지막 가족식사가 된다. 슈필만은 한 유대인 경찰의 도움으로 도망치지만 결국 노역장으로 끌려간다.

   힘든 노역을 하던 슈필만은 감자 사러나갈 때 도망쳐서 도로타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녀는 결혼하여 임신 중이었지만, 남편과 함께 새로운 도피처를 마련해준다. 그러나 음식을 챙겨주기로 한 사람이 슈필만의 이름을 팔아서 기부금을 모아 도망치는 바람에 영양실조로 사경을 헤매다가 살아난다.

   게토로 숨어들어간 슈필만은 어느 허물어진 주택의 다락방에 자리를 잡고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며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피클 통조림을 발견하고 쇠꼬챙이로 쑤셔서 따다가 통조림이 바닥에 떨어져 굴러가는데, 바로 앞에 독일군 장교(토마스 크레취만 扮)가 서있었다.

   그 장교가 ‘넌 누구냐? 뭐 하는 사람이냐?’ 하고 묻자, 슈필만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장교는 못 믿겠다는 듯 슈필만을 옆집으로 데리고 가서 피아노 연주를 시킨다. 덥수룩한 수염에 피골이 상접한 슈필만이 누더기를 걸치고 연주하는 쇼팽의 발라드 선율이 폐허가 된 게토에 울려 퍼진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멀리서 소련군의 포격소리가 들려온다. 장교는 빵을 잔뜩 갖다 주며 자신이 입고 있던 코트까지 벗어주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하면서 이름을 묻는다. ‘슈필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는 ‘피아니스트다운 이름이군.’하고 말하면서 돌아간다. 독일군이 물러가자, 슈필만은 3년 넘게 이어온 도피생활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다.

   다시 방송국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게 된 슈필만은 동료로부터 소련군 포로수용소에서 한 독일군 장교가 당신을 찾더라는 소식을 듣는다. 슈필만이 찾아갔을 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슈필만과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쇼팽의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가 흐르는 가운데 이런 자막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난다.

   ‘슈필만은 바르샤바에서 살다가 2000년 7월 6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독일군 장교 호젠벨트는 1952년에 소련의 포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여 대규모 세트장으로 게토를 건설하고 실제로 폭파하는 등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실사 촬영하였다. 애드리언 브로디가 피아노를 치는 손의 대역은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입상한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야누슈 올레이니차크가 맡았는데, 그가 영화에 나오는 쇼팽의 곡들을 모두 연주하였다.

   완벽주의자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주인공 슈필만 역에 유대인 분위기가 나는 배우를 찾으려고 고심하다가 영국배우 조셉 파인즈로 낙점하려 했으나 미국에서 애드리언 브로디를 만나면서 바뀌게 된다. 애드리언 브로디는 열연을 펼친 끝에 만 29세에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다.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는 슈필만 외에도 여러 유대인들을 구했으나, 소련에서 25년 형을 선고받고 포로생활을 하다가 사망한다. 슈필만은 그 장교의 이름을 몰라서 구하지 못한 것 때문에 평생 괴로워했는데, 슈필만의 아들이 이름을 찾아내어 2009년에 호젠벨트를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추모기념관에 세계의 의인으로 등재시켰다고 한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유대인 어머니는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사망했다. 당시 10살이던 폴란스키는 게토를 탈출하여 살아남았는데, 영화에서 통조림을 따는 장면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었다고 한다. 1969년에는 임신한 아내 샤론 테이트가 억울하게 살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77년, 그는 미국에서 여러 건의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피소되어 30여 년간 유럽에서 도피생활을 했고, 2003년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을 때도 시상식에 갈 수 없었다. 2018년에는 미국 영화계에서 제명되었고, 2020년에는 프랑스 세자르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으나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의 공과(功過)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죗값도 치르고 그의 빛나는 예술혼도 살리는 묘안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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