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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1. 4. 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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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최용현(수필가)

 

   일제강점기인 1935년 북간도 용정,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 윤동주(강하늘 扮)와 송몽규(박정민 扮)는 동갑내기 사촌이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시인을 꿈꾸는 동주는 몽규가 콩트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자 속으로 열등감을 삭인다. 동주는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장래문제로 갈등을 겪지만, 몽규는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상해임시정부를 찾아가는 등 거침없이 행동한다.

   연희전문학교에 들어간 동주와 몽규는 경성에서 하숙을 하면서 동문(同門) 강처중과 옥천 출신의 이화여전 학생 이여진과 함께 문예지를 만들며 대학생활을 한다. 동주는 여진과 함께 밤길을 걸으면서 풋풋한 설렘을 느끼고, 여진은 동주의 시를 좋아한다면서 ‘별 헤는 밤’을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쓸쓸해진다고 말한다.

   여진과 동주는 고향 옥천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정지용 시인에게 인사드리러 간다. 정 시인은 동주에게 이제 학교에서도 조선어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럴 바엔 좋은 선생이 많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라고 권한다. 동주가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유학을 한다면 부끄러울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거지.’ 하고 말한다.

   창씨개명을 한 동주는 ‘참회록’이란 시에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하고 쓴다. 우수한 성적으로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몽규는 친일파 교장이 주는 우등상을 팽개쳐버리고 동주와 함께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몽규는 교토제국대학 서양사학과에, 동주는 동경 릿쿄대학 영문학과에 들어간다.

   일본 지식인의 양심으로 불리며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다카마쓰 교수의 수업시간에 일본 군인이 교실로 들어와 동주를 끌어내어 구타하고 강제로 삭발한다. 교련수업을 거부했기 때문이란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본은 조선인 징집령을 내린다. 유학생들을 규합하여 반군조직을 결성하던 몽규를 찾아간 동주는 자신도 끼워달라고 하는데, 몽규는 ‘너는 시를 계속 써라. 총은 내가 들 테니까.’ 하면서 말린다. 몽규가 유학생들을 모아놓고 조선인 혁명을 부르짖던 중에 일본경찰들이 기습을 해오고, 학생들은 잡히거나 흩어져서 도망친다.

   귀국준비를 한 동주는 자신의 시를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작업을 하고 시집 출간을 도와주던 여학생 쿠미를 만나기 위해 다방으로 향한다. 일본 형사(김인우 扮)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동주는 다방에서 쿠미에게 시집 제목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알려주는데 그때 형사가 들이닥친다.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된 동주는 형사에게 집요하게 취조를 당하는데, 몽규도 이곳에 잡혀와 있었다. 주3회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는 두 사람은 사후에 생체실험을 해도 좋다는 신체포기각서에 서명을 강요받는다. 몽규는 절망하면서 서명하고, 동주는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하겠다며 서류를 찢어버린다. 몸과 마음이 점점 피폐해져가던 어느 날, 동주는 감옥의 창 너머로 밤하늘을 쳐다보며 ‘서시(序詩)’를 읊조리고 각혈을 하며 쓰러진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해방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윤동주와 송몽규가 수감 중’이라는 전보를 받은 두 사람의 아버지들이 후쿠오카형무소로 찾아와 피골이 상접한 몽규를 만난다. 동주는 며칠 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몽규도 3월에 세상을 떠난다. 둘 다 28세였다. 두 사람의 시신은 아버지들에 의해 북간도의 용정 동산에 묻힌다.

   ‘동주’는 이준익 감독이 2015년에 만든 흑백영화로,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일본 형사와의 취조과정에서 밝혀진 윤동주 시인의 행적을 플래시백(Flashback) 형식으로 보여준다. 청룡영화상을 비롯하여 여러 영화제에서 각본상(신연식)과 신인남우상(박정민)을 휩쓸었다.

   윤동주 역을 맡은 강하늘은 일본군에게 강제로 머리카락이 잘리는 장면에서 실제로 삭발을 했고, 시를 쓰는 장면에서도 직접 육필로 원고지에 글씨를 썼다. 또 형무소에서 점점 수척해지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하기도 했다. 그는 촬영기간 내내 완전히 윤동주에 이입(移入)되어 있었다고 한다.

   송몽규 역을 맡은 박정민은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북간도 용정에 있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생가를 방문하고 두 사람의 묘소도 찾아갔다. 윤동주 시인의 묘는 잘 다듬어져 있고 그 앞에 많은 꽃다발이 놓여있었지만, 송몽규 열사의 묘는 허술하고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동주와 몽규의 수감복에 달린 죄수번호 475와 368을 직접 한자로 쓴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 시인에게 가려져있던 송몽규 열사를 조명하는 것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후쿠오카감옥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18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자막을 보면서,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이 울화와 분노를 어떻게 삭여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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