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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발탄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1. 12. 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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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발탄(誤發彈)

 

최용현(수필가)

 

    ‘오발탄(誤發彈)’은 소설가 이범선이 1959년 10월 ‘현대문학’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6·25전쟁이 끝난 후 해방촌에 사는 한 실향민 가족의 암담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초기 분단소설의 걸작이다. 거장 유현목 감독이 흑백영화로 만들어 1961년 봄에 국제극장에서 개봉하였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5·16 군사혁명이 터지자, 이 영화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켰다는 점과 주인공의 노모가 수시로 ‘가자!’ 하고 외치는 것이 월북을 암시하는 메시지로 해석된다는 이유로 군사정부에 의해 상영중지처분이 내려졌다. 작가와 감독이 그것은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대사라고 해명을 하였으나 통하지 않았다.

    그 후, ‘오발탄’이 제7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출품되어 본선에 진출하고 주인공 김진규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게 되자, 1963년 재상영 때 뜨거운 화제가 되면서 ‘아리랑’(1926년) 이후 최고의 영화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 영화는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여러 번 촬영이 중단되다가 13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조명 담당자와 카메라 담당자가 유현목 감독과 함께 공동책임을 지는 동인제(同人制)로 제작한데다 거의 모든 배우와 스텝들이 무보수로 출연하거나 봉사했다. 당시 김지미가 나오는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1961년) 제작비가 8,000만 환인데 비해 이 영화는 그 10분의 1에 해당하는 800만 환으로 제작되었다.

    후암동 언덕배기에 있는 허름한 판자촌에 사는 송철호(김진규 扮)는 계리사(計理士) 사무소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지만, 딸린 식구가 많아 입에 겨우 풀칠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앓던 치통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치과에 가지 못하고 있다.

    정신착란증으로 늘 누워있는 그의 노모는 북쪽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6·25전쟁 때 비행기 폭음의 충격으로 환청에 시달릴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벌떡 일어나 ‘가자!’ 하고 외친다. 여러 식구들을 뒷바라지하는 만삭의 아내(문정숙 扮)는 가난에 찌들려 영양실조 상태이다. 어린 딸 해옥은 새 고무신을 갖고 싶어 한다.

    하사관 출신의 동생 영호(최무룡 扮)는 제대한지 2년이 지났으나 취직이 되지 않아 군인출신 동료들과 어울려 다니며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 여동생 명숙(서애자 扮)은 사귀던 장교가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떠나버리자, 식구들 몰래 짙게 화장을 하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양갈보 생활을 하고 있다. 막내 동생 민호는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신문팔이를 하고 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은 철호는 중부경찰서에 가는데, 거기서 권총으로 은행을 털고 도주하다가 체포된 영호를 보게 된다.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진 영호는 찾아온 형에게 ‘왜 왔어요?’ 하면서 ‘구경꾼들이 많은 시내 한복판에서 내 목을 매달아줬으면 좋겠어.’ 하고 빈정거리듯 말한다.

    철호는 사무실에 들어가려다 말고 아침에 해산 끼가 있던 아내 생각에 후암동으로 향하는데, 집 가까이 언덕배기에 올라서자 노모의 ‘가자!’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에 도착하니 여동생이 ‘빨리 대학병원에 가보세요. 언니가 위독해요. 난산(難産)이래요.’ 하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핸드백에서 지폐 한 다발을 꺼내 건네준다. 철호가 병원에 도착하니 아내는 이미 사망하여 영안실로 옮겨져 있었다.

    퀭한 눈으로 병원을 나온 철호는 갑자기 치통이 심해져 근처 치과에 들어간다. 앓던 사랑니를 뽑은 그는 거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입안에 고인 핏덩어리를 배수로에 뱉어내고 택시를 탄다. 해방촌으로 가자고 했다가 다시 대학병원으로 가자고 한다. 그러다가 다시 중부경찰서로 가자고 한다. 철호가 횡설수설하자 운전기사가 옆에 있는 조수를 보며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하며 중얼거린다. 머리를 앞으로 수그린 철호의 입에서 흘러내린 선지피가 와이셔츠를 적시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난다.

    원작소설을 그대로 충실하게 영상으로 구현한 ‘오발탄’은 6·25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 남겨진 상흔(傷痕)과 부조리, 궁핍한 사회상이 흑백화면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울러 민생고에 시달리는 한 가족 구성원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의표를 찌르는 전개와 영상으로 심도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사에서 리얼리즘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그것은 당시의 영화들이 두리뭉실한 화면과 신파조의 대사, 고진감래 식의 이야기 전개와 뻔한 귀결에 비해 이 영화는 탄탄한 원작을 기반으로 유현목 감독 특유의 화면구도와 사실적인 영상, 절제된 대사와 한 템포 빠른 전개가 이어진다. 아울러 국보급 배우인 김진규와 최민수의 아버지인 최무룡의 열연도 톡톡히 한 몫을 한다.

    ‘오발탄’의 원본 필름은 분실되어 없어졌고, 우리가 볼 수 있는 영상은 제7회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출품한 프린트를 토대로 1975년 영화진흥공사에서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거의 모든 영화인들로부터 100년이 넘는 한국영화사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4년 영화진흥공사의 ‘광복 40년 베스트10’에서 1위, 1998년 조선일보의 ‘대한민국 50년 영화 50선’에서 1위에 선정되었다. 또, 1999년에는 한국일보의 ‘21세기에 남을 한국의 명화’와 월간 ‘스크린’ 창간 15주년기념 ‘한국영화 베스트20’에서 1위, KBS TV의 ‘20세기 한국 톱 영화’와 MBC TV의 ‘20세기를 빛낸 한국영화’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다. 2014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표한 ‘한국영화 100선’에서도 ‘하녀’(1960년), ‘바보들의 행진’(1975년)과 함께 공동1위로 선정되었다.

    아카데미 4관왕 ‘기생충’(2019년)이 ‘오발탄’의 이 기록들을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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