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무솔리니가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던 날, 이탈리아의 해안마을에 사는 열세 살 소년 레나토(쥬세페 술파로 扮)는 아버지로부터 중고자전거 한 대를 선물 받는다. 레나토는 자전거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둑에 앉아서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인 말레나(모니카 벨루치 扮)가 걸어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말레나를 연모하면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기 시작한다.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서 홀로 남은 말레나는 가끔 이웃 마을에 혼자 살고 있는 친정아버지를 보살피러 가곤 한다. 레나토가 다니는 중학교의 교사인 친정아버지는 귀가 많이 어둡다. 레나토는 낮에는 친구들과 둑에서 말레나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밤에는 말레나의 집 담장 옆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 벽에 난 구멍으로 집 안을 훔쳐본다. 집에 돌아가면 말레나의 알몸을 상상하며 자위를 한다.
어느 날, 말레나는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27살에 미망인이 된 말레나는 푼돈 연금을 받게 되어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된다. 취직을 하려고 하니 마을의 남자들은 그녀를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안달이고, 여자들은 질투에 눈이 멀어 그녀가 유부남들을 유혹한다고 소문을 퍼뜨려서 아예 취직을 못하도록 만든다.
젊은 중위가 잠시 말레나의 집에 다녀가자, 말레나에게 흑심을 품은 치과의사가 시비를 걸어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자 남편의 불륜을 의심한 치과의사 부인이 간통죄로 고소하여 말레나는 법정에 서게 된다. 변호사가 잘 변론해준 덕분에 무죄판정을 받았으나 변호사는 수임료 대신이라며 말레나를 강간한다.
며칠 동안 배를 곯던 말레나가 길에서 한 남자가 주는 빵을 얻어먹는 순간, 갑자기 마을 상공에 연합군의 폭격기들이 나타난다. 곧 공습경보가 울리고 마을사람들은 모두 방공호로 대피하지만, 경보소리를 듣지 못한 말레나의 아버지는 집에 그대로 있다가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고 만다.
남편에 이어 아버지까지 사망하자, 말레나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먹을 것을 갖다 주는 사람에게 몸을 준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립스틱을 짙게 칠한 말레나가 마을광장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입에 물자, 뭇 남성들이 라이터에 불을 켜서 들이댄다. 급기야 말레나는 고급 창녀가 되어 독일군 장교들에게까지 몸을 판다.
이 모습을 보고 낙담한 레나토가 몸져눕자, 어머니는 귀신이 들렸다며 신부를 불러 퇴마의식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춘기의 아들이 넘치는 거시기(?)를 분출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며 아들을 데리고 창녀촌으로 간다. 레나토는 그곳에서 말레나와 닮은 여자를 골라 첫 경험을 한다. 그리고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미군이 마을에 들어온다. 마을의 여자들은 독일군에게 몸을 팔았다는 이유로 말레나를 거리 한복판으로 끌고나와 반역자라고 욕하면서 머리를 자르고 무자비하게 구타한다. 말레나는 옷이 다 찢어진 채 피투성이가 되어 도와달라고 절규하지만, 남자들은 아내의 눈치를 보며 외면한다. 말레나는 기차를 타고 마을을 떠난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말레나의 남편이 한쪽 팔을 잃은 상이군인이 되어 나타나 말레나를 찾는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아무도 그동안 말레나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레나토가 그간의 사연과 말레나가 메시나행 기차를 타고 떠난 사실을 적어서 남편에게 전해준다.
1년 후, 말레나가 남편과 팔짱을 끼고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반갑게 인사를 하고, 말레나를 욕하며 구타했던 여자들도 먼저 말을 걸며 살갑게 대해준다. 말레나는 잠시 머뭇거리지만, 곧 밝게 웃으며 그들의 호의를 받아준다.
말레나가 혼자 시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바구니에서 과일들이 떨어지자, 레나토는 재빠르게 달려가 말레나가 과일 담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면서 ‘행운을 빌어요. 말레나.’ 하고 처음으로 말을 거는데, 말레나는 엷게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다시 걸어간다.
세월이 흐르고, 한층 성숙해진 레나토의 독백이 내레이션으로 나오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 후에 나는 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했고, 그들은 내 품에 안겨서 자신을 기억해 줄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매번 그러겠다고 했지만,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여자는 말레나 뿐이다.’
‘말레나(Malena)’는 ‘시네마 천국’(1988년)을 감독한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2000년에 연출한 영화로, 사춘기에 접어든 한 소년의 성적 판타지를 다룬 몽정기(夢精記)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음악의 대부 엔니오 모리코네가 들려주는 선율은 감미롭고 아련하다.
시골 소읍(小邑) 출신인 모니카 벨루치는 고등학생이던 16세부터 모델 일을 시작했는데, 빼어난 미모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마을사람들의 부담스런 관심과 시선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이 영화 촬영 당시 36살이었으나 27살로 나올 만큼 독보적인 미모의 소유자로, 한때 자타공인 최고의 섹스심벌이었다.
영화 속에서, 당시 이탈리아의 독특한 풍습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반바지를 입은 남자는 거시기(?)가 짧다는 얘기나, 아버지가 사춘기 아들을 창녀촌에 데리고 가는 장면이 그러하다. 또 말레나가 담뱃불을 붙이는 모습은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매춘부가 남자로부터 불을 받아 담뱃불을 붙이는 것은 그 남자와의 관계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성에 눈 뜬 사춘기 소년 레나토는 늘 말레나를 훔쳐보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말레나의 남편에게 말레나의 행방을 알려주는 용기를 발휘하기도 한다. 레나토가 말레나에게 한 말은 ‘행운을 빌어요. 말레나’ 뿐이었지만, 말레나는 레나토의 뇌리에 아름다운 첫사랑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