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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1. 3. 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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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최용현(수필가)

 

   1970년, 영국 히스로공항의 수하물노동자인 탄자니아 출신의 인도계 파록 불사라(라미 말렉 扮)는 퇴근 후 3인조 대학생 밴드 ‘스마일(Smile)’의 공연을 보러갔다가 탈퇴한 보컬 자리에 발탁된다. 그리고 부티크에서 일하는 메리(루시 보인턴 扮)와 사랑에 빠진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귈림 리 扮)가 이끌던 그 밴드는 기존 드러머 로저 테일러(벤 하디 扮)에, 보컬 프레드릭 불사라에 이어 베이시스트 존 디콘(조셉 마젤로 扮)이 합류하면서 4인조 록밴드가 된다. 리더 역할을 하게 된 프레드릭은 밴드 이름을 ‘퀸(Queen)’으로 바꾸고 자신의 이름도 프레디 머큐리로 바꾼다.

   1년 후, ‘퀸’은 똥차 밴을 팔고 3개월 치 공연수입을 모아 독창적인 방식으로 홍보용 데모테이프를 제작하는데, 이 데모를 접한 엘튼 존의 매니저 존 레이드로부터 면담 제안이 온다. 프레디는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는 아웃사이더들을 위해 음악을 한다.’며 ‘퀸’의 정체성에 대해 견해를 밝힌다.

   존 레이드는 대형음반사 EMI와 전속계약을 주선해주고, 전담 매니저 폴을 붙여준다. 아울러 ‘퀸’의 BBC TV 데뷔도 성사시켜준다. 프레디는 연인 메리에게 평생을 함께 하자며 프러포즈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퀸’은 미국 공연투어를 성황리에 마치고 귀국하여 조용한 전원주택에서 차기작을 준비한다. 메리를 위해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를 만들고 있던 프레디에게 매니저 폴이 갑자기 다가와 키스를 한다. 남자끼리의 키스는 프레디의 게이(gay) 성향을 일깨운다. 프레디는 다시 혼신의 열정으로 ‘보헤미안 랩소디’의 창작에 몰두한다. 가사를 보자.

 

     Mama, just killed a man

     엄마,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

     그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더니, 그가 죽어버렸어요.

     Mama, life had just begun. But now I've gone and thrown it all away

     엄마, 이제 삶이 시작되었는데, 내가 모두 망쳐버렸어요.

                       --- (중략) ---

      Mama, ooh, (any way the wind blows,) I don't want to die

      엄마, 우~ (바람이 어디로 불든) 저는 죽기 싫어요.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

      난 가끔 내가 아예 태어나지 않았기를 바랄 때도 있어요.

 

   1975년에 발표한 이 곡은 5분 55초 분량의 대작으로, 너무 길어서 EMI로부터 앨범 제작을 거부당한다. 그러나 라디오 전파를 타고 불이 붙어 영국 싱글차트 9주 연속 1위와 음반판매 1위를 기록하고, 미국 빌보드차트 9위에 오르면서 ‘퀸’이 월드스타로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때 세계 최초로 제작된 홍보 영상(promotional video)은 뮤직비디오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을 죽였다’는 가사 때문에 1989년까지 금지곡이 된다.

   전 세계 대도시를 돌며 순회공연을 하고 돌아온 프레디가 메리에게 자신이 게이라고 고백하자, 메리는 떠나간다. 그 후 메리는 다른 남자를 사귀지만 프레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버리지는 않는다. 그 무렵 프레디는 CBS레코드의 적극적인 유혹과 매니저 폴의 부추김으로 ‘퀸’과 결별하고 솔로로 전향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프레디는 아프리카 난민돕기 자선공연(1985. 7.13)인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은 폴을 해고하고 다시 ‘퀸’에 합류한다. 그날 세계 150개국 15억 인구가 TV를 지켜보는 가운데, 입추(立錐)의 여지없이 꽉 들어찬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에서, 프레디는 ‘퀸’에 할당된 20여분 동안 멋진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먼저 ‘보헤미안 랩소디’와 ‘라디오 가 가(Radio Ga Ga)’를 부르고, 이어 쿵쿵따 리듬의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와 ‘에이-오(Ay-Oh)’,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으로 운집한 관중들의 떼창을 유도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켜 모금 목표액인 100만 파운드를 달성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집시들의 광시곡’ 혹은 ‘방랑자의 노래’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1970년 ‘퀸’의 결성에서부터 1985년 ‘라이브 에이드’까지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굴곡진 삶을 다룬 영화이다. 골든 글로브 작품상을 받았고 주인공 프레디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라미 말렉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비롯하여 여러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1991년, 45세인 프레디가 에이즈로 사망하자, ‘퀸’의 명성은 전설로 바뀐다. 공연 때마다 프레디의 리드에 따라 관중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함께 춤추는 떼창(sing along) 문화는 그가 간 후에도 요원의 불길처럼 전 세계에 퍼져나간다. 2001년, ‘퀸’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獻額)된다.

   2018년 2월, ‘퀸’은 음반계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그래미의 평생공로상을 받는다. 그해 10월에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되면서 전 세계에 다시 ‘퀸’의 바람이 몰아친다. 우리나라에서도 ‘퀸’을 기억하는 50대 이후 세대와 10대, 20대들의 뉴트로(newtro) 열풍에 힘입어 995만 명의 관객이 프레디 머큐리를 보러 극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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