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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霸王別姬)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0. 9. 1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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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霸王別姬)

최용현(수필가)

 

   ‘패왕별희(霸王別姬)’는 한의 유방과 결전을 벌이던 초의 패왕(霸王) 항우가 막판에 사면초가에 빠졌을 때, 애첩 우희(姬)가 자결하는 것을 이별(別)로 표현한 사자성어이다. 1993년, 첸 카이거 감독은 이 장면을 경극으로 재현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우희와 패왕 역을 맡은 두 남자 주인공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세파에 시달리며 겪은 인생역정을 함께 다루었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비롯하여 골든글러브의 외국어영화상 등 해외 영화제에서 7관왕을 차지함으로써 첸 카이거 감독이 왜 아시아를 넘어서는 세계적인 거장인지 증명하였다. 세 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고 절묘한 구도(構圖)에 경이로운 장면들로 가득 차 있어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첫 장면에서, 11년 만에 만난 두지(장국영 扮)와 시투(장풍의 扮)가 분장을 하고 경극장에 들어서자, 열렬한 경극팬이었던 관리인이 ‘함께 공연을 못 하신지 20년이 넘었죠? 4인방 놈들 때문에.’ 하며 비위를 맞춘다. 4인방은 경극을 핍박한 문화대혁명의 네 주역을 일컫는 말이다. 관리인이 무대를 밝히자, 두 사람은 경극 ‘패왕별희’의 공연을 시작하는데, 화면은 어느새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1924년, 청나라가 망한 후 중화민국이 들어서던 혼란기에 한 창녀의 손을 잡고 와서 베이징 경극학교에 맡겨진 어린 두지는 그곳에서 알게 된 시투를 형처럼 의지하며 지낸다. 예쁘장한 얼굴 때문에 여자 역할을 맡게 된 두지와 씩씩하고 듬직한 시투는 힘든 훈련과정을 이겨내며 실력 있는 경극배우로 성장한다. 이때는 경극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대였다.

   1937년,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중원에서 활개를 치던 시기로, 이때 두지와 시투는 유명한 경극배우가 되어있었다. 경극 ‘패왕별희’에서 우희 역할을 하는 두지는 패왕 역할을 하는 시투를 경극에서처럼 사랑하면서 평생 함께하기를 원했는데, 시투는 창녀 출신의 주샨(공리 扮)을 사랑하고 있었다. 시투가 주샨과 결혼을 하자, 배신감에 휩싸인 두지는 경극계의 대부이면서 자신의 열성팬인 원대인과 가깝게 지내면서, 아편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다.

   1945년, 항복한 일본군이 물러나자 북경을 점거한 국민당은 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을 검거하는데, 두지도 일본군 앞에서 경극 노래를 했다는 이유로 간첩죄로 기소된다. 일본군이 총으로 협박을 했다고 하면 정상참작이 될 수 있었는데, 체념한 두지는 강제가 아니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원대인과 시투의 도움으로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1949년,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패한 국민당은 대만으로 쫓겨 가고, 승리한 공산당은 중원을 차지한다. 경극대부 원대인이 공산당에 의해 처형되고, 경극은 이제 공산당의 선전도구로 추락한다. 두지는 자신이 보살펴온 어린 후배가 공산당의 핵심당원이 되어 우희 역할마저 빼앗아가 버리자, 이제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경극배우를 그만두게 된다.

   1966년,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의 기치 아래 젊은 홍위병들을 앞세워 ‘반동을 색출하라.’ ‘문화계의 요괴들을 타도하라.’며 지식인들을 핍박하고, 각종 문화재와 예술품들을 파괴한다. 이제 경극은 구시대의 문화유산으로 간주되었고, 두지와 시투는 반혁명 인사로 체포되어 군중들 앞에서 자아비판과 함께 동지들을 비판해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에 떨던 시투는 일본군 앞에서 노래를 한 두지를 친일 부역자로 몰아붙이며, 동성애에다 아편까지 했다고 폭로한다. 두지도 자신의 치부를 폭로한 시투를 야비한 놈이라고 욕하면서, 시투를 빼앗아간(?) 주샨을 창녀 출신이라고 폭로한다. 그러자 시투는 주샨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헤어지겠다고 말한다. 낙담한 주샨은 쓸쓸히 떠나간다.

   1976년, 세월이 흐르고 영화는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온다. 11년 만에 만나 경극장에 함께 걸어 들어온 두지와 시투는 22년 만에 텅 빈 무대에서 경극 ‘패왕별희’의 공연을 한다. 패왕이 된 시투 앞에 우희가 된 두지는 대사(臺詞)를 하다가 패왕의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자신의 목을 찌르면서 영화가 끝난다. 우희의 자결장면을 그대로 실연(實演)한 것이다.

   1993년 12월, 이 영화의 국내개봉 때의 러닝 타임은 156분이었다. 27년 후, 장국영의 17주기 기일(忌日)에 맞춰 삭제된 15분을 되살린 171분짜리 확장판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을 2020년 4월 1일 재개봉하려 했으나, 코로나 상황의 악화로 5월 1일 재개봉했다.

   중학생 때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자신의 아버지를 비판했고 홍위병으로 입대하여 5년간 복무했던 첸 카이거 감독은 칸영화제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나 자신은 홍위병이었고, 이 영화는 사죄를 표하는 내 나름의 표현이며, 일종의 주문이다. 문화혁명은 무수한 배우가 연기한 마오쩌뚱의 오페라였다,’라고 말해 ‘패왕별희’가 자신의 참회록임을 밝히기도 했다.

   시토 역의 장풍의는 지금도 스크린과 TV에서 고전물과 현대물을 넘나들며 선 굵은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로, 영화 ‘적벽대전1, 2’(2008년, 2009년)에서 조조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주샨 역의 공리는 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무협물보다는 문예물 등 정극(正劇) 연기로 크게 성공한, 중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이다. 두지 역의 장국영은 너무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반짝이던 순간은 무대에 서 있을 때뿐이었다

   ‘패왕별희’는 장국영의, 장국영에 의한, 장국영을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장국영을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서게 한,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장국영은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뛰어난 배우로 정평이 나있다. 그의 유작 ‘이도공간’(2002년)의 마지막 장면인 옥상에서의 추락자살은 극중 여친이 막아냈지만, 몇 달 후 그는 홍콩 만다린호텔 24층 객실에서 뛰어내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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