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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 – 천하무인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0. 9. 5.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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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 – 천하무인

 

최용현(수필가)

 

   청나라 말기 광서제 시대, 미국과 영국, 포르투갈의 전함들이 맘대로 들어와 서양인들이 활개를 치고 다녀도 조정에서는 이를 막아낼 힘이 없었다. 미국인 잭슨 일당은 ‘미국에 한번 가는 것이 평생 중국에 있는 것보다 낫다. 미국은 발아래 황금이 널려있다.’고 현혹시키며 중국의 젊은이들을 미국에 데려가 노동자로 팔아넘기고 있다.

   광동성 불산에 사는 황비홍(이연걸 扮)은 보지림(寶芝林)에서 의술을 펼치며 젊은이들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있다. 이곳에는 영어를 잘하는 아소(장학우 扮)와 돼지로 불리는 제자 임세영(정칙사 扮) 등이 그를 보필하고 있다. 또 영국유학을 다녀온 소균(관지림 扮)이라는 아가씨도 있는데, 그녀는 이모로 불리지만 황비홍을 좋아하고 있다.

   한편, 한 극단에서 잡부로 일하고 있는 양관(원표 扮)은 조폭인 사하파 패거리들이 삥을 뜯으러오자, 황비홍과 그의 제자들의 도움으로 이들을 격퇴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사하파 패거리들은 밤에 보지림에 불을 질러 큰 피해를 입히는데, 그 일로 관부의 추적을 받게 되자, 관부보다 더 센 미국인 잭슨에게 빌붙어 모든 책임을 황비홍에게 떠넘긴다.

   극단에서 말썽을 부리다가 쫓겨난 양관은 떠돌이 무예고수 엄진동(임세관 扮)의 제자가 되고, 엄진동은 황비홍을 찾아가 최고를 가리자며 폭우 속에서 격투를 벌이지만 무승부로 끝난다. 황비홍은 소란 및 난동죄를 뒤집어쓰고 관부에 투옥되는데, 이모 소균이 사하파 패거리에게 잡혀 미국 전함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탈옥한다.

   양관은 사하파 두목에게 강간당할 위기에 처한 소균을 구해주지만, 엄진동을 사부로 추대하고 기고만장하는 사하파 두목의 모함을 받아 엄진동에게 잡혀서 묶이고 만다. 그때 들이닥친 황비홍과 엄진동의 재대결이 펼쳐진다. 두 무예고수가 공중 사다리에서 곡예를 하듯 보여주는 현란한 무술은 이 영화 최고의 볼거리이다.

   엄진동을 제압한 황비홍은 민단 청년들과 함께 미국 전함으로 달려가 양관을 풀어주고 총으로 무장한 잭슨 일당을 상대로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 잭슨 일당은 사하파 패거리를 포함하여 중국인들을 무차별 쏘아 죽이는데, 엄진동도 총에 맞아 쓰러진다. 엄진동은 황비홍에게 ‘우리 무술이 아무리 강해도 총을 당해낼 수는 없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결국 황비홍은 잭슨을 처치하고 전함에 갇혀있던 소균 등 중국 젊은이들을 모두 구해낸다.

   보지림을 재건한 황비홍은 새로 제자가 된 양관과 임세영, 아소, 소균 등 식솔들과 함께 새 출발을 다짐하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오프닝 크레디트와 마찬가지로 엔딩에서도 황비홍 사부의 무술지도를 받는 민단 청년들의 힘찬 동작과 함께 ‘남자는 마땅히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뜻의 주제곡 남아당자강(男兒當自强)이 우렁차게 흘러나오면서 영화가 끝난다.

 

                    오기는 거센 파도와 맞서고 뜨거운 피는 붉은 해와 같네

                    담력은 무쇠를 닮았고 뼈는 정제된 강철과 같아서

                    포부는 수천 장에 이르고 눈의 정기는 만 리에 이르노라

                    나는 더욱더 분발하여 사나이로 강해지리라

                    사나이는 매일매일 스스로 강해져야 하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나이라면 태양이라도 견주리라

 

   1절의 가사이다. 자각(自覺)을 일깨우는 굳은 각오와 호쾌한 기백이 절절이 배어있지 않은가. 영화 ‘황비홍’은 시리즈로 쭉 이어지는데, 1편~3편, 6편은 이연걸이 황비홍 역을 맡았고, 4편과 5편은 조문탁이 맡았다. 황비홍을 소재로 한 영화는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총 98편이나 된다고 하니 아마 이 부문 세계기록이 아닐까 싶다.

   황비홍의 정식 시리즈로는 ‘황비홍 1~6편이 있다. 이 중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 평을 받은 2편 남아당자강은 수입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는 3편보다 늦게 개봉되었다. 방계(傍系) 시리즈로는 ‘철계투오공’(1993년) 등 6편이 있다. 그 외에 성룡의 출세작인 ‘취권’(1978년)을 비롯하여 ‘육아채여 황비홍’(1976년), ‘인자무적’(1979년), ‘용자무구’(1981년), ‘무관’(1981년) 등도 황비홍이 등장하는 영화이다.

   황비홍(1856~1924)은 그의 호이고 본명은 황석상이다. 그는 5살 때부터 광동십호(廣東十虎)의 한 사람인 아버지 황기영으로부터 무술을 배우고 여러 비기(祕技)를 익혀 홍가권(洪家拳)의 종사(宗師)가 되었다. 또 의약(醫藥)에도 정통하여 빈민들에게 무료로 의술을 베풀었으며, 사자춤에도 뛰어나 광주사왕(廣州獅王)으로 불렸다.

   그는 평생 동안 후진양성과 의료봉사에 매진하였으나, 만년에 일어난 상단(商團) 폭동 때 보지림이 불에 타서 파산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병을 얻어 68세에 타계했다. 관(棺)을 살 돈조차 없었지만 은혜를 입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백운산 묘원에 안장되었다. 불산시에 ‘황비홍기념관’이 있다.

   그런데, 황비홍의 무용담은 대부분 민간에 전해져 오는 것이며 검증(檢證)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최근, ‘광동성을 빛낸 인물 116인’이 선정되었는데, 황비홍의 이름은 없고 무술인 중에는 채리불권(蔡李佛拳)의 창시자인 진향과 황비홍의 제자인 임세영이 들어있다. 영화에서 돼지라는 별명으로 친숙한 임세영은 홍콩에서 무술도장을 열어 홍가권을 전파한 인물로, 그가 사부(師父)를 과장하여 홍보하는 바람에 황비홍이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진실은 알 수가 없다.

   임세영의 제자 중에 유담이라는 인물이 있다. 유담의 아들로는 ‘소림 36방’(1978년)의 감독과 배우인 유가량과 유가영 형제가 있고, 민머리 쿵푸스타 유가휘는 유담의 양자이다. 어쨌거나 이들이 바로 황비홍 – 임세영 – 유담 – 아들 3형제로 4대째 이어지는 황비홍의 계승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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