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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秦俑)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0. 9. 1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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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秦俑)

최용현(수필가)

 

   ‘진용(秦俑)’은 진나라의 병마인형을 뜻하는데, 진시황 시대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남녀가 2천여 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되는 환생을 다룬 영화이다. 정소동 감독의 1989년 작품으로, 동양의 스필버그라 불리는 서극이 특수효과를 맡았다. 명감독 장예모가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배우를 해도 괜찮을 용모와 연기를 보여준다.

   진시황이 사냥을 나갔다가 자객들의 습격을 받는다. 이때 황릉관리를 맡은 몽천방(장예모 扮)이 달려가 자객들을 물리치고 진시황을 구하는데, 진시황은 그를 황궁으로 불러들여 측근에 둔다. 방사(方士)들이 올린 불로불사약을 시식한 장군이 즉사하자, 진시황은 방사들을 모두 죽이려 했으나, 방사 서복이 동해의 봉래에서 불로장생약을 구해오겠다고 하면서 위기를 모면한다.

   황궁에서는 즉시 5백 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징집하고, 몽천방에게 호위를 맡긴다. 이때 궁녀로 입궁한 동아(공리 扮)는 동녀로 뽑혀 먼 길을 떠나게 되자, 자신의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지만 몽천방이 구해낸다. 결국 동아와 몽천방은 사랑에 빠져서 선을 넘고 마는데, 이들은 대역죄인임을 자인하고 함께 죽어 다음 생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이 무렵, 방사들은 불로불사약 제조에 성공한다. 동아는 훔친 불로불사약을 기둥에 묶여있는 몽천방에게 키스로 입에 넣어주고 바로 불 속으로 뛰어들고, 몽천방은 자원해서 산 채로 온몸에 흙을 바르는 진용이 되어 황릉을 지키게 된다.

   2천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30년, 영화배우 백운비(우영광 扮)는 영화촬영을 핑계로 일당들과 함께 서안에 와서 진시황릉 도굴을 획책하고 있다. 엑스트라 배우 주리리(공리 扮)는 백운비와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권총 오발사고로 비행기가 추락하는데, 백운비는 낙하산으로 탈출하지만 주리리와 비행기는 진시황릉 입구에 떨어진다.

   황릉 입구에서 2천여 년 간 진흙용사로 서 있다가 깨어난 몽천방은 비행기에서 나오는 주리리를 보고 동아의 환생임을 직감하고 동아라고 부르며 쫓아다닌다. 주리리는 몽천방을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함께 황릉 밖으로 나온다. 주리리는 눈부셔하는 몽천방에게 자신의 선글라스를 씌워준다.

   몽천방은 문명세계에 적응하지 못해 여러 해프닝을 벌이지만, 주리리가 하이힐 때문에 발이 아프다고 하면 업어주는 등 주리리를 철벽호위하며 극진히 보살펴준다. 그러다가 동아가 2천 년 전에 아까워서 신지 못하던 하얀 비단신을 건네주지만, 주리리는 그 신발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백운비는 몽천방의 머리카락과 갑옷을 몰래 채취하여 탄소측정을 해보니 2천여 년 전의 것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몽천방이 진시황 때의 무사임을 알게 된다. 백운비는 몽천방을 불로장생약 연구 실험용으로 팔아 목돈을 챙기고 기차에 태워 보내는데, 이를 눈치 챈 몽천방은 일당을 물리치고 주리리와 함께 말을 타고 탈출한다.

   몽천방은 만리장성을 바라보며 ‘왜 이렇게 허물어졌지? 모든 것이 과거가 되었군. 당신도 나의 동아가 아니야!’ 하며 비단신을 던져버리고 다시 황릉으로 돌아가려한다. 그때서야 몽천방의 진심을 알게 된 주리리가 비단신을 찾아들고 나타나 몽천방을 따라간다.

   한편, 백운비 일당이 황릉에서 폭약을 터뜨리자, 진시황릉에 생매장된 병사와 군마들이 다시 살아나 도굴꾼들과 혈투를 벌인다. 백운비는 주리리를 납치하여 비행기로 도망치는데, 몽천방도 비행기에 올라가 격렬하게 싸운다. 그 와중에 주리리는 백운비의 총에 맞고, 백운비는 몽천방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몽천방의 품에서 죽어가던 주리리는 그때서야 ‘기다려 줘요. 다시 돌아올게요.’ 하면서 숨을 거둔다.

   다시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서안에서 진시황의 병마용이 발굴되어 각국에서 관광객이 오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으로 온 한 아가씨가 진용들 사이를 지나가며 구경하다가, 진용 복원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몽천방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를 짓는다. 몽천방도 주리리의 환생이 확실한 그 일본아가씨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주제곡 ‘분심이화(焚心以火)’가 애절하게 흐르면서 영화가 끝난다.

   ‘진용’은 기발하면서도 탄탄한 줄거리에 오락적 재미도 갖춘 영화이다. 만리장성 축조장면이나 병마용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 진시황릉의 침입방지 특수장치 등 놀라운 장면들도 많이 있다. 진시황 역을 맡은 육수명과 백운비 역을 맡은 우영광은 둘 다 삼국지 관련 영화에서 긴 수염을 달고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관우 역할로 낯이 익은 배우들이다.

   공리는 데뷔작인 ‘붉은 수수밭’(1987년) 이후 ‘국두’(1990년) ‘홍등’(1991년) ‘귀주이야기’(1992년)에서 장예모 감독과 함께 하면서 불륜에 빠지기도 했다. ‘패왕별희’(1993년) 이후에는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게이샤의 추억’(2005년) ‘상하이’(2010년) 등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중국을 대표하는 여배우가 되었다.

   장예모는 첸 카이거와 함께 중국 제5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붉은 수수밭’으로 감독에 데뷔한 후 ‘인생’(1994년) ‘집으로 가는 길’(1999년) ‘영웅’(2002년) ‘황후화’(2006년) ‘5일의 마중’(2014년) 등을 연출하여 제3세계의 변방에 머무르고 있던 중국영화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중국 문화계의 영웅이 되었다.

   이 영화에서 동아는 몽천방과 내세(來世)를 약속하고 불속에 뛰어들었다가 2천여 년 만에 주리리로 환생하지만, 전생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몽천방이 동아의 비단신을 던져버리고 황릉으로 돌아갈 때 주리리가 따라간 것은 자신이 동아의 환생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몽천방이 자신을 극진히 위하고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시 주리리가 했던 말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영화계에서는 모두 날 무시했는데, 당신만은 내게 잘해주었어요. 동아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당신과 함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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