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유성호접검’은 장철, 호금전과 함께 홍콩 쇼브라더스사의 전성기를 이끈 3대감독 중 한 사람인 초원이 만든 무협영화이다. 여기서 유성(流星)은 밤하늘에 눈부시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별똥별처럼 자객의 운명은 덧없다는 의미이고, 호접(蝴蝶)은 봄날의 나비처럼 사랑은 순식간에 왔다가 간다는 뜻으로, 자객들의 운명과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영화는 배신이 난무하는 살벌한 강호의 적나라한 모습과 무협고수들의 심모원려(深謀遠慮)를 추리기법을 통하여 보여주는 스릴러물이다. 최근에 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것을 40여년 만에 다시 보았는데,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진한데다 곳곳에 의표를 찌르는 반전이 숨어있어서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었다. 가히 1970년대 최고의 무협영화 중 한 편으로 꼽힐 만하다.
1976년에 제작되었으나 우리나라에는 1979년에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여러 무협영화에서 조연으로 나오는 종화, 악화, 곡봉 등의 중견배우들이 주연을 맡았고, 주연으로 활약하던 나열(로례)이나 능운(링윈) 같은 배우들이 조연으로 나온다. 그 때문에 별 볼일 없는 영화라고 생각하여 수입하지 않으려다가 뒤늦게 이 영화의 진가를 알고 수입을 한 것 같다.
‘유성호접검’은 용문방을 이끌어가는 손옥백 방주를 중심으로 그를 호위하는 무사들과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들 사이에 야심과 음모, 배신이 드라마틱하게 이어지는 영화이다. 비중 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와서 자칫 극의 흐름이 산만해질 수도 있었으나, 각 캐릭터들의 개성이 무리 없이 잘 녹아있어서 별 문제가 없다. 먼저 주요등장인물을 살펴보자.
맹성혼(종화 扮)은 당대 최고의 자객으로, 고급요정으로 위장해있는 살인청부업체 쾌활림의 단장으로부터 손옥백을 암살하라는 살인청부를 받는다. 맹성혼은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도중에 호접림이라는 나비숲을 지나가다가 아름다운 여인 소접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손옥백(곡봉 扮)은 무림 최고의 문파인 용문방의 방주로서 수하에 비밀경호원 한당과 용맹한 아들 손검, 그리고 아들보다 더 신뢰하는 양아들 율향천을 두고 있다. 또, 손옥백은 어떤 창검으로도 뚫을 수 없는 천라사라는 특수섬유로 만든 의상을 입고 있으며, 여러 곳에 비상탈출로를 만들어놓고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
율향천(악화 扮)은 뛰어난 지모를 갖춘 야심 많은 책사이며, 무예 또한 절정의 고수로서 항상 손옥백을 가까이에서 호위하고 있다. 온몸에 숨기고 있는 72가지의 비기(祕器)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위급한 순간에는 방천화극 같이 생긴 창을 무기로 사용한다.
이들 세 주인공 외에 손옥백의 딸 소접(정리 扮)은 맹성혼의 동료 자객인 엽상(능운 扮)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이를 알게 된 손옥백은 딸과 사랑에 빠진 엽상을 죽이라고 한당에게 지시하고, 한당은 3일간의 대결 끝에 승리하지만 엽상을 살려준다. 엽상은 술에 빠져 폐인이 되어가고, 소접은 아버지와 의절하고 호접림에 은거해 살고 있다.
한당(나열 扮)은 호숫가에서 갓을 쓰고 낚시를 하며 손옥백을 지키는 무사로, 그가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몇 사람뿐이다. 낚싯대를 무기로 사용하는 초절정 고수로서 자신을 습격한 만붕왕 일파의 고수들을 모두 물리치지만 느닷없이 뒤에서 찌르는 동료의 칼에 비명횡사하고 만다. ‘적의 검은 두렵지 않으나 친구의 검이 가장 두렵다.’는 말을 남긴다.
손옥백의 면접을 통과하여 용문방에 들어간 맹성혼은 손옥백을 죽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거의 폐인이 된 동료 엽상이 소접의 아버지가 손옥백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자결해버리자 갈등에 빠진다.
손옥백은 아들 손검과 비밀경호원 한당이 갑자기 죽자 만일을 대비하여 율향천을 후계자로 삼고 용문방의 중요사항을 알려준다. 그러자 만붕왕과 짜고 이미 손검과 한당을 죽인 율향천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침소에서 천라사를 벗는 손옥백을 등 뒤에서 해독약이 없는 칠성침으로 공격하여 쓰러뜨린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손옥백은 미리 준비해놓은 비밀통로인 지하수로로 가까스로 도망쳐서 오래전에 은혜를 베푼 지인들의 도움으로 율향천의 추격을 따돌린다. 강한 내공의 힘으로 등에서 칠성침을 빼내고 기사회생한 손옥백은 이제 믿을 사람은 자신을 암살하러온 맹성혼 뿐임을 알게 된다.
손옥백은 맹성혼과 함께 세력을 규합하여 용문방의 새 방주 행세를 하는 율향천과 만붕왕 일파를 역습하여 응징한다. 쫓기던 율향천은 죽마고우를 찾아가는데, 변심한 친구가 주는 독배(毒杯)를 마시고 손옥백 일행 앞에서 최후를 맞는다. 손옥백은 맹성혼과 딸 소접을 맺어주어 강호를 떠나게 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원작자 고룡은 대만 출신으로 얼마 전에 94세로 타계한 ‘소오강호’의 저자 김용과 쌍벽을 이루는 무협소설가이다, 무협명작인 ‘초류향’ ‘천애명월도’ 등을 썼다. 안타깝게도 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48세 때인 1985년에 간경화로 세상을 떴다. 그가 죽자 친구들이 관 속에 그의 나이 만큼인 48병의 술을 넣어주었다고 한다.
이 영화에는 고수들의 불꽃 튀는 무술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지금 보면 상당히 허접하지만 당시에는 무협마니아들을 매료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었을 것 같다. 앞부분에 나오는 낚시터에서의 한당과 만붕왕 일파의 고수들과의 대결장면, 율향천이 객잔에서 혼자 적들과 싸우다 포승줄에 묶여 허공에 들려지는 장면, 두 라이벌 맹성혼과 율향천의 막판 결투장면 등.
1993년,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신유성호접검(新流星蝴蝶劍)’이 나왔는데, 양조위 왕조현 양자경 견자단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현란한 액션과 특수효과 등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유성호접검’에서 캐릭터만 따왔을 뿐 내용은 다른 무협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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