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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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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최용현(수필가)

 

   시전문지 시인세계가 우리 가요사 100년을 기념하여 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노랫말이 아름다운 가요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는데, ‘봄날은 간다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3위는 북한강에서’, 4위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5위는 한계령이었다.

   ‘봄날은 간다는 가수 백설희 씨가 1953년에 취입한 이래 60여 년간 우리 국민들의 애창곡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백설희라는 이름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이고, 걸 그룹 티아라의 멤버 보람의 할머니라고 하면 알는지.

   가사는 화가이며 작사가인 손로원 씨가 썼다. 그가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피난해 있을 때 살던 판잣집에 불이 나 연분홍 치마 차림의 어머니 사진마저 타버리자 그 모습을 회상하면서 쓴 것이라고 한다. 가사가 처연하게 아름답다.

   작곡자는 대중음악인으로는 처음으로 1982년에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았고,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등 무수한 히트곡을 남긴 가요계의 거목 박시춘 선생이다. 201310,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남이섬에 노래비를 세웠는데, 그 비에 새겨진 노래가 바로 봄날은 간다이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는 사랑이 어떻게 변모하는지 보여주는 영화이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는 일을 하는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 )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치매 걸린 할머니와, 오래 전에 상처(喪妻)한 아버지, 그리고 고모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 겨울날, 상우는 강원도로 소리채집 여행을 갔다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서 들려주는 강릉방송국 라디오 아나운서 겸 PD 은수(이영애 )를 만난다. 두 사람은 함께 상우 차를 타고 다니며 일하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진다. 한번 이혼한 적이 있는 은수도 부담 없이 다가오는 순진한 청년 상우가 싫지 않다.

   어느 날, ‘라면 먹고 갈래요?’ 하는 은수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은수의 아파트에 들어가고 함께 밤을 보낸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지만,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상우가 김치 담글 줄 알아요?’ 하고 묻자, 은수는 그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 무렵, 은수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초대 손님과 가까워진다. 은수는 상우에게 우리 한 달만 떨어져 있어봐하고 말을 꺼낸다. 은수가 변했음을 감지한 상우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고 반문하지만, 은수는 헤어져!’ 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변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우는 어쩔 줄 모르고 고통스러워한다. 상우는 방송국으로 은수를 찾아갔다가 은수가 웬 남자와 함께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미련과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우는 은수를 만나러 강릉으로 달려가지만 은수가 또 그 남자와 함께 골프여행을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느 숨 막히게 아름다운 봄날, 마루에 걸터앉아 꺽꺽 울고 있는 상우에게 할머니가 등을 두드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버스하고 여자는 한번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할머니는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집을 나갔다가 그 길로 세상을 하직한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 상우는 은수에 대한 마음도 정리한다. 만나자고 연락을 해온 은수가 우리, 함께 있을까?’ 하고 말하지만, 상우는 덤덤하게 은수를 떠나보낸다. 사랑이 봄날처럼 왔다가 봄날처럼 또 그렇게 가버린 것을 이제 상우도 안다.

   영화 봄날은 간다는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주요 장면마다 메인 테마곡 ‘One Fine Spring Day’의 선율이 애잔하게 깔리고 엔딩 크레딧으로 나오는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도 찡하게 다가오지만, 이 영화의 주제곡은 할머니가 마루에서 흥얼거리며 부르던, 50년대에 나온 국민가요 봄날은 간다이다. 옛날 노래라서 그런지 가사가 3절까지 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던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성황당 길에, 꽃 편지, 청노새 짤랑대던, 열아홉 시절, 앙가슴.’ 가사가 어쩌면 한 폭의 그림처럼 이토록 목가적일 수 있을까? 노래 가사가 아니라 한편의 시 같다. 어떤 시가 이보다 더 감미로울 수 있을까?

   ‘봄날은 간다는 영화도 불후의 명화이고 노래도 불후의 명곡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스라이 먼 곳으로 스러져간 그 많은 봄날들. 그 맹세도 그 기약도 헛되이 봄날은 그렇게 속절없이 가는 것인가. , 봄날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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