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청나라 말기, 무당파의 고수 모백(주윤발 扮)은 사부가 푸른여우의 독침에 맞아 목숨을 잃자, 오랜 숙고 끝에 강호를 떠날 결심을 하고 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400년 된 청명검을 사매인 수련(양자경 扮)에게 맡긴다.
경비업체인 표국(鏢局)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수련은 모백을 연모하고 있으면서도 죽은 약혼자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복면을 한 자객이 청명검을 훔쳐가자,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는 수련이 바로 따라가 결투를 벌이다가 놓치고 만다. 수련은 옥대인의 딸 교룡(장쯔이 扮)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녀가 자숙하기를 바라며 모른 체 한다.
유모로 위장한 푸른여우에게서 어릴 때부터 무예수련을 받아온 교룡은 혼자서 비급(秘笈)까지 연마하여 스승을 능가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다. 교룡은 강호에서 무공을 뽐내며 영웅처럼 살고 싶어 하는데, 그녀의 부모는 정략결혼을 강요하고 있다. 아버지의 부임지로 가기 위해 사막으로 향하던 교룡은 마적단에 납치되어 두목 소호(장진 扮)와 티격태격하다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강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교룡은 다시 북경으로 돌아온다.
교룡은 수련에게 언니라고 부르겠다고 하면서도 다시 청명검을 훔쳐가고, 남장(男裝)을 한 채 주막에서 무예실력을 과시하는 등 좌충우돌한다. 수련은 교룡을 타이르며 청명검을 돌려달라고 하는데, 교룡은 뺏어가라고 한다. 마침내 두 사람은 검으로 맞붙어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이게 된다.
이때 모백이 나타나자, 교룡과 모백은 대나무 숲으로 날아가 결투를 벌인다. 모백은 교룡의 무공이 상당함을 알고 자신의 제자가 되어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한다. 모백은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손은 뒷짐을 진 채 대나무의 반동에 순응하며 서 있다. 반면 교룡은 대나무에 강한 반동을 주어 모백을 떨어뜨리려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떨어짐으로써 부족한 무공과 불안한 심리상태를 드러낸다.
기진맥진한 교룡을 푸른여우가 데려간다. 모백은 동굴에서 미향(媚香)에 취해 비틀거리는 교룡을 발견하고 혈도를 짚어서 살려낸다. 이때 푸른여우가 독침을 쏘며 나타나는데, 모백이 단숨에 처치한다. 그러나 모백도 푸른여우의 독침을 맞고 만다. 수련이 찾아오고, 독이 온몸에 퍼진 모백은 득도(得道)에 걸림돌이 될 만큼 그동안 자신의 심중에 깊숙이 간직해온 말을 수련에게 털어놓고 숨을 거둔다.
“난 일생을 허비했소. 이젠 말하리다. 평생 당신을 사랑해 왔소.”
수련은 모백의 입술에 입을 맞추면서 오열한다. 이때 교룡이 해독제를 구해서 돌아오지만 이미 늦었다. 수련은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고, 무당산 꼭대기 절에서 소호가 기다리고 있으니 가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충고한다.
“앞으로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스스로에게 진실하길 바란다.”
수련의 인품과 깨달음의 깊이를 짐작해볼 수 있는 말이다. 교룡은, 비급을 혼자 연마한 것을 시샘한 스승 푸른여우가 자신을 혼자 두고 미향을 피웠고, 미향에 중독된 자신을 모백이 구해준 것을 되새기며, 그간의 경거망동(輕擧妄動)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수련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무당산에서 소호와 재회한 교룡은 전에 소호가 얘기해줬던 ‘설산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떠올리며 안개의 바다로 자신의 몸을 던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와호장룡(臥虎藏龍)’은 누운 호랑이와 숨은 용을 뜻하는데, ‘음식남녀’(1994년), ‘센스, 센서빌리티’(1995년) ‘헐크’(2003년), ‘색, 계’(2007년) 등을 연출한 이안 감독이 왕도로의 동명 무협소설에서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네 주인공을 중심으로 재창작한 것이다. 무술(武術)은 뛰어나지만 무도(武道)에는 철부지인 한 젊은이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구도(求道) 영화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이안 감독의 영화는 여러 번 곱씹어봐야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그는 강호의 비정함과 은원(恩怨), 음양의 조화와 욕망, 감정의 미묘한 흐름 등을 절제된 대사와 음향으로 잘 엮어내어 거장다운 연출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과장된 장풍(掌風)이나 과잉액션으로 점철된 기존 무협영화와는 격이 다르다. DVD로 소장(所藏)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 영화는 정(靜)과 동(動)의 얼개로 짜여있다. 모백과 수련의 사랑은 애틋하면서도 정적인 정신적 사랑이다. 반면에 교룡과 소호의 사랑은 치열하면서도 동적인 육체적 사랑이다. 또 수련과 교룡의 결투는 격렬한 검무(劍舞)가 수반되는 역동적인 대결이고, 모백과 교룡의 결투는 조용하게 진행되는 정적인 대결이다.
특히 모백과 교룡의 대나무 숲 위에서의 대결장면은 약 18m 상공에서 촬영했는데 영상미에서 단연 압권이다. 이 장면은 호금전 감독의 무협고전 ‘협녀’(1969년)에서의 대나무 숲 결투장면을 버전 업한 것이다. 황산의 대나무 숲에서 이 장면을 촬영할 때 20여 명의 안전요원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이 1,500만 달러를 들여 중국 본토와 홍콩, 대만을 오가면서 동양무협에 낯선 서양관객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고, 그 해 여러 영화제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었다.
주연급 네 사람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중화를 대표하는 배우들이다. 또 한 사람, 푸른여우로 나오는 정패패는 ‘방랑의 결투’(1966년)와 속편 ‘심야의 결투’(1968년)에서 주인공 금제비 역을 맡는 등 60년대에 왕우, 로례 등과 함께 홍콩검술영화 전성시대를 풍미한 히로인이다.
영화 ‘매트릭스’(1999년)에서 무술감독을 맡았던 원화평이 지도한 현란한 검술과 공중 와이어 액션은 아주 자연스러워서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피아노 줄에 매달려 가장 많이 날아다닌 장쯔이는 촬영 내내 멀미로 고생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