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방학이 되어 집에 온 대학생 제프리(카일 맥라클란 扮)는 아버지 병문안을 갔다가 동네 풀밭에서 사람의 귀가 잘려서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를 하지만 담당형사는 기본적인 조사만 할 뿐,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는다.
제프리는 담당형사의 딸인 동네 친구 샌디(로라 던 扮)로부터 인근에 사는 미모의 나이트클럽 여가수 도로시(이사벨라 로셀리니 扮)가 이 건(件)으로 조사를 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제프리는 소독하러 왔다고 속이고 도로시의 아파트를 방문하는데, 그때 훔친 열쇠를 이용하여 밤에 몰래 도로시의 아파트에 들어간다.
갑자기 도로시가 집에 들어오자, 제프리는 급히 옷장 안에 숨는다. 전화벨이 울리고, 도로시는 프랭크라는 남자에게 ‘제발 남편과 아들을 죽이지 말라.’고 애원한다. 샤워를 하고 나온 도로시는 인기척을 감지하고 부엌칼을 들고 옷장 문을 열어 제친다. 도로시는 제프리를 칼로 위협하며 옷을 모두 벗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이상야릇한 행동을….
그때, 좀 전에 통화한 프랭크(데니스 호퍼 扮)가 찾아오고, 제프리는 다시 옷장 안으로 숨는다. 제프리는 마약을 흡입한 프랭크가 도로시를 잔인하게 구타하면서 기괴하게 섹스를 하는 모습을 옷장 문틈으로 보고 충격을 받는다. 프랭크가 떠나자, 도로시는 제프리에게 자신을 좋아하느냐고 묻더니 안아달라고 하고, 또 자신을 세게 때려달라고 한다.
‘블루 벨벳(Blue Velvet)’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미스터리 스릴러로, 청소년은 보호자의 동행 없이는 관람이 불가능한 R등급의 영화이다. 이 영화를 감독한 데이비드 린치는 우리나라의 김기덕 감독처럼 소수의 마니아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와 찬사를 받는 컬트영화의 귀재이다. 이 영화는 80년대를 대표하는 컬트영화로 첫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도로시를 악랄하게 괴롭히는 프랭크는 겉으로는 멀쩡한 성인이지만 성적(性的)으로는 유아기에 머물러 있어서 어머니와 섹스를 하려는 오이디푸스 환자이다. 마약밀매에다 살인도 서슴지 않는 포악한 성격의 프랭크에게 남편과 어린 아들을 납치당한 도로시는 그의 성적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프랭크는 도로시를 ‘엄마’라고 부르며 그녀의 성기를 관찰하다가 아들(?)인 자신과 성행위를 할 것을 강요한다. 도로시가 쳐다보기라도 하면 사정없이 주먹이 날아온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나타났다고 외치고 재빨리 도로시와 성관계를 하는 모션을 취하면서 자신의 도착적(倒錯的)인 성적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다.
자,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 영화의 후반부로 들어가 보자. 제프리는 프랭크의 마수로부터 도로시를 구하기 위해 다시 아파트를 찾아가고, 도로시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급기야 두 사람은 프랭크에게 길들여진 도로시가 리드하는대로 약간 가학적(加虐的)인 섹스를 한다.
제프리는 자신의 승용차로 프랭크의 차를 미행한다. 그리고 한 경찰관이 포함된 마약밀매현장과 살인현장을 몰래 사진으로 찍어둔다. 다시 도로시의 아파트를 찾아간 제프리는 프랭크 일당에게 발각되어 이곳저곳 끌려 다니며 직사하게 얻어터지고 길에 버려진다.
상처를 추스른 제프리는 샌디의 아버지인 담당형사를 찾아가 사진자료들을 넘겨주고, 샌디와 함께 파티에 갔다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 온몸이 멍 자국과 상처투성이인 도로시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아파트 앞으로 뛰쳐나와 제프리에게 안긴다. 눈이 휘둥그레진 샌디를 남겨두고 제프리는 도로시를 병원으로 후송한다.
돌아온 제프리는 샌디에게 경찰에 연락해달라고 부탁하고 혼자 도로시의 아파트로 들어간다. 한쪽 귀가 잘린 도로시의 남편이 기괴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은 채 죽어있고, 그 옆에는 프랭크의 뒤를 봐주던 경찰이 총에 맞아 선 채로 죽어있다.
이때 성난 프랭크가 아파트로 들어와 권총을 빼들고 제프리를 찾으면서 영화는 극도의 긴장감과 함께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결국 옷장에 숨어있던 제프리가, 선채로 죽은 경찰의 안주머니에서 빼낸 권총으로 프랭크의 이마를 쏘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영화가 시작될 때 보여준 하얀 울타리 안의 파란 하늘과 꽃이 핀 정원의 모습을 마지막에도 똑같이 보여준다. 이것은 숨 막히듯 벌어지던 일들이 잘 마무리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도로시는 다시 찾은 아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샌디도 도로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제프리를 용서하면서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주제곡은 도로시가 나이트클럽에서 부르는 느릿한 발라드풍의 ‘블루 벨벳(Blue Velvet)’이지만, 프랭크의 친구 벤이 원곡 테이프를 틀어놓고 흐느적거리며 립싱크로 부르는 몽환적인 가사와 리듬의 ‘인 드림스(In Dreams)’가 더 강렬한 임팩트로 뇌리에 남아있다. 한 때 이 곡에 필이 꽂혀서 배워보겠다고 열심히 따라 부르던 때가 있었는데….
가끔 사무실에 조그맣게 켜놓은 라디오에서 로이 오비슨의 ‘인 드림스’가 나오면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초점 잃은 눈동자와 함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 ‘백야’(1985년)에서 봤을 때는 뚜렷하게 인상에 남지 않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은근히 고혹적인 섹시미를 물씬 풍기고 있다. 그래도 어머니인 전설적인 명우 잉그리드 버그만의 무구(無垢)한 미모에 비하면 한참 처지는 듯하다.
또 한 사람, 광기어린 악당 역을 맡은 데니스 호퍼의 눈부신 열연이 이 영화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탱하고 있는 알파와 오메가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인디영화의 전설로 남아있는 ‘이지 라이더’(1969년)로 우레 같은 명성을 날리던 그도 세월은 이기지 못해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거장 데이비드 린치는 하얀 울타리가 둘러쳐진 미국 중산층의 풍요로운 삶 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어두운 그림자를 잔인하리만치 적나라하게 조명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컬트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 영화도 보기에 불편한 장면들이 여러 군데 나온다. 이 영화를 관람한 소감을 한 줄로 표현하면, 술에 취해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 자면서 꾸는 한판의 꿈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