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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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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英雄本色)

 

최용현(수필가)

 

   둥근 테 선글라스, 입에 문 성냥개비, 짙은 남색 바바리코트. 홍콩느와르의 바이블로 추앙받는 영웅본색(英雄本色)’의 주인공 주윤발의 이미지이다. 그 시절에는 껌 좀 씹는(?) 청소년들도 입에 성냥개비를 물고 다녔고, 그가 위조지폐로 담뱃불을 붙이는 장면을 보고는 복사한 지폐로 담뱃불을 붙이다가 손을 데이는 사람도 있었다.

   ‘영웅본색19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명화이다. 피 튀기는 총격전과 잔혹한 폭력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줘 범죄를 미화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준 형제애와 의리,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뜨거운 우정은 그런 비판을 덮고도 남을 만큼 깊은 감동과 가슴 먹먹한 울림을 남겼다.

   형 아호(적룡 )는 홍콩의 한 범죄 조직에서 위조지폐사업(?)을 하는 중간보스이고, 동생 아걸(장국영 )은 막 경찰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형사이다. 아호는 후배 아성(이자웅 )과 함께 사업차 대만으로 가는데, 누군가의 밀고로 대만 경찰에 포위되어 총상을 입는다. 아호는 죗값을 치르고 나서 떳떳하게 살기 위해 자수를 하고, 결국 옥살이를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아호의 친구 마크(북경어 버전으로는 소마, 주윤발 )는 대만으로 날아가 아호를 죽이려한 조직원들의 회식장소에 찾아가 쌍권총으로 원맨쇼를 하며 통쾌하게 복수를 한다. 그 과정에서 다리에 총을 맞아 한쪽 다리를 절게 된 마크는 홍콩으로 돌아와 후배 아성 밑에서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지낸다.

   한편, 아걸의 여자친구를 미행해온 괴한이 집에 침입하여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납치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한다. 아걸은 형 아호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보스가 감옥에 갇힌 형의 입을 막기 위해 아버지를 인질로 잡아놓으려고 괴한을 보낸 것을 알아내고, 범죄조직에 몸담고 있는 형을 증오한다.

   3년 후, 형기를 마친 아호는 홍콩에서 택시운전을 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크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후배 아성의 자동차를 닦아주고 푼돈을 받는 모습을 보고 억장이 무너진다. 3년 만에 만나 뜨겁게 포옹하는 두 사람, 아호는 대만에서 자신을 배신하고 밀고한 자가 후배 아성이었고, 그가 지금 조직의 보스가 되어있음을 알게 된다.

   아호는 동생이 아성 일당에게 총을 맞아 수술을 한 데다, 마크마저 아성 일당에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터지자, 복수를 하고 나서 홍콩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마크는 위조지폐 제작과정이 담겨진 비밀 테이프를 입수하고, 아호는 그 테이프를 경찰인 동생에게 보낸 후, 돈을 갖고 오면 테이프를 돌려주겠다며 아성을 부둣가로 불러낸다. 아성에게서 돈 가방을 넘겨받은 마크는 쾌속선을 타고 먼저 떠나고, 아호는 동생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 남는다.

   한편, 아걸은 형 때문에 경찰 내에서 의심을 받고 진급에서도 누락되자, 형을 체포하겠다며 혼자 부두로 향한다. 그러다가 포위된 아호 아걸 형제와 아성 일당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마크는 뱃머리를 돌려 기관총을 쏘며 돌아온다. 월등한 화력으로 아성 일당을 거의 섬멸해가던 마크는 서먹해하는 아걸과 아호 형제를 화해시키다가 날아온 총탄에 머리를 맞아 쓰러지고 만다.

   형의 진심을 알게 된 아걸은 비로소 마음의 응어리를 푼다. 그리고 형의 총에 총알이 떨어지자 자신의 총을 건네주며 아성에게 복수를 하게하고 함께 손을 잡고 걸어 나온다. 이때 장국영이 부르는 주제곡 당년정(當年情)’이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때의 정이란 뜻의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오래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장국영이 생각나서 마음이 짠해진다. ‘헹헹 씨우쎈~’으로 시작되는 당년정의 마지막 후렴 부분 가사를 우리말로 옮겨본다.

 

       너를 바라보니 눈 속의 따스함이 이미 통하고

       마음 속 이전의 꿈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네.

       내 오늘 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시 시험해보니

       그때 우리의 우정은 다시 새로움을 더해간다네.

 

   이 영화는 세계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듯 1986년 개봉 때부터 영어제목을 붙이고 나왔다. ‘영웅본색영웅의 본래 색깔이란 뜻이고, 영어로 쓰자면 ‘The Original Color of the Hero’쯤 될 것 같은데, ‘A Better Tomorrow’라는 아주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인 영어제목이 붙어있다. 실제로 오우삼 감독은 이 영화의 성공을 계기로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된다.

   앞부분 어느 커피숍에서 아호와 마크, 후배 아성이 얘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노래가 귀에 익다 했더니 구창모의 희나리중국어 버전이다. 아마 우리나라 팬들을 의식해서 넣은 것이리라. 요즘은 K팝을 필두로 한 한류(韓流) 열풍이 거세지만, 그때는 우리나라 대중들이 홍콩스타들에게 열광하지 않았던가.

   ‘영웅본색에는 주윤발과 장국영 외에도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나온다. 60~70년대 홍콩무술영화에서 주로 의협(義俠)으로 나오던 적룡이 형 아호로, 주로 사부(師父)나 악당 두목을 맡던 전풍이 형제의 아버지로 나온다. 또 제작자인 서극과 감독인 오우삼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서극은 아걸의 여자친구 오디션장의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있고, 누런 뿔테 안경을 쓴 오우삼은 수사관으로 나오는데, 젊을 때라서 그런지 인상이 꽤 샤프해 보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호와 아걸 형제이고, 스토리도 형제의 갈등과 우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아무 조건 없이 목숨을 걸고 친구를 위해 싸운 마크이고, 그가 이 영화의 제목에 나오는 영웅임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이런 갱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서, 이 영화와 월남전을 다룬 80년대 명화 플래툰’(1986)을 놓고 어느 것을 선()할까 고민했었다. ‘영웅본색을 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두 친구가 부두에서 아성을 기다리면서 나눈 짤막한 대사였다. 아호가 너는 신의 존재를 믿어?’ 하고 묻자, 마크가 이렇게 답한다.

   ‘믿어. 내가 바로 신이거든. 신도 인간이야. 자신의 운명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인간이 바로 신이지.’

   그랬다. 그때는 주윤발이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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