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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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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권(醉拳)

 

최용현(수필가)

 

   크리스마스 때마다 TV에서 한 꼬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나홀로 집에’(1990)가 방영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명절 때는 으레 성룡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중국영화를 보여주곤 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고 털털한 이미지의 성룡은 우리나라에서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계층의 팬을 가지고 있다. 국내 배우 중에서 신성일이나 안성기 외에는 그 만큼 오랫동안 큰 인기를 누린 배우를 찾기가 힘들지 않나 싶다.

   ‘취권(Drunken Master)’19799월부터 5개월 동안 서울에서만 관객 90만 명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중국영화이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고도의 무술을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성룡이라는 신인배우의 화려하고 현란한 무예솜씨와 익살스런 연기도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데뷔 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성룡은 이 영화 한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 후 오복성’, ‘폴리스 스토리’, ‘용형호제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했고, 지금은 300억 원이 넘는 전용 비행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 폭력이 난무하는 살벌한 쿵푸영화에 코미디 요소를 가미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즐기면서 무협영화를 보게 한 것은 순전히 그의 업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청나라 말, 중국 광동성에는 홍가권(洪家拳)의 고수인 황기영이 쿵푸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외아들인 황비홍(성룡 )은 무술적 재능은 뛰어난데 도통 수련은 하지 않고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저잣거리에서 말썽을 피우기 일쑤였다. 황기영은 고심 끝에 취팔선권(醉八仙拳)의 고수인 사형 소화자(원소전 )에게 아들의 무술 수련을 맡기기로 한다.

   황비홍은 소화자가 알코올중독자에, 잘 씻지도 않는 지저분한 늙은이에다, 수련을 혹독하게 시킨다는 소문을 익히 듣고 있던 터라 집을 나가버린다. 황비홍이 어느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하다 걸려서 직사하게 얻어터지고 있을 때, 마침 그곳에서 밥을 먹고 있던 소화자가 그를 구해준다. 황비홍은 소화자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해서 억지로 수련을 받게 된다.

   소화자가 무술은 가르쳐 주지 않고 매일 따분하고 고통스러운 동작만 계속 반복시키자, 어느 날 황비홍은 스승을 물항아리 속에 처박아 넣고 도망친다. 그러다가 신의 다리로 불리는 발차기의 고수 염철심(황정리 )과 시비가 붙는데, 처참하게 얻어터진 황비홍은 그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는 수모를 당한 끝에 바지도 입지 못하고 줄행랑을 치게 된다.

   황비홍은 비로소 자신의 무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깨닫고, 제 발로 다시 스승에게 돌아온다. 소화자는 그동안 해온 고통스런 동작들이 모두 취권을 익히기 위한 기초과정이었음을 일러주고, 손목을 더욱 강화하는 수련을 한 다음 마침내 자신의 비기(秘技)인 취팔선권을 전수해준다.

   여기서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자. 취팔선권은 청나라 말기에 실존(實存)한 무림고수인 소화자(일명 소걸아)가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으려고 중원을 떠돌아다니면서 창안한 것으로, 술에 취한 여덟 신선(神仙)의 무술적인 몸놀림을 상상해서 만든 여덟 가지 권법이다. 팔선취권(八仙醉拳)이라고도 하는데 나중에 취권(醉拳)으로 불리어졌다.

   소화자는 쿵푸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제 황기영에게 자신이 창시한 취권을 전수했고, 황기영의 아들 황비홍이 다른 권법들을 가미하여 홍가권을 집대성하면서 취권도 그 안에 담았다. 홍가권은 여러 제자들에게 전수되었고, 그 중 한 줄기가 대만의 장극치에게 이어졌다.

   우리나라에도 장극치의 제자가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 부근에서 쿵후관을 운영하는 화교 2세 무술고수 필서신 관장이다. 그는 20세 때인 1977년 대만에서 개최된 중국무술대회에 참가했는데, 거기서 장극치가 시연하는 취권을 보고 한눈에 반해서 그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5년 동안 홍가권과 함께 취권을 전수받았다.

   자, 이제 영화 줄거리를 마무리하자. 취권을 거의 다 익혀가던 어느 날, 황비홍은 술을 사러 마을 주막에 내려갔다가, 전에 알코올 부족으로 손이 떨리는(?) 스승과 함께 대적했다가 호되게 당했던 막대술의 대가 곤왕(棍王)을 만나게 된다. 황비홍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여 그를 후련하게 혼내주고 돌아오지만, 스승 소화자는 이제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는 메모를 남기고 사라지고 없다.

   한편, 황기영은 마을에서 위세를 부리던 유지(有志)가 매장량이 엄청난 석탄광산을 독점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황기영이 그 유지의 협조 요청을 거절하자, 유지는 염철심을 매수하여 황기영을 죽이려 한다. 마침내 황기영과 염철심은 격투를 벌이게 되는데, 수세에 몰린 황기영의 패색이 짙어갈 무렵, 아들 황비홍이 달려온다. 유랑길을 떠난 소화자도 이곳을 지나가던 길에 합류하게 된다.

   아버지와 스승이 지켜보는 가운데, 황비홍은 당대 최고의 무술고수인 염철심과 최후의 대결을 펼친다. 염철심이 날카로운 발기술로 거세게 공격해오자, 황비홍은 스승이 던져준 술병을 들이키면서 취권을 하나씩 시현해나간다. 드디어 염철심의 어깨위에 올라탄 황비홍이 한손으로 호두알을 깨뜨리듯 치명타를 가하자, 염철심이 고목나무처럼 고꾸라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에서는 독주를 계속 마시지만, 실전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단다. 취권은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면서 적을 방심하게 만든 뒤 상대방의 급소에 번개처럼 일격을 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법의 전형이라 할 수 있으리라.

   ‘취권이 낳은 월드스타 성룡(Jackie Chan)은 한류우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친한파 연예인이다. 그는 1954년생으로 환갑이 지났지만 노익장(?)도 대단한 것 같다. 얼마 전에 난 신문기사를 보니, 성룡은 자신이 기획, 제작, 감독하고, 권상우와 유승준 등과 공연한 용형호제 3(12생초)’을 홍보하기 위해 방문한 프랑스 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그동안 위험한 액션영화를 찍으면서 하도 많이 다쳐서 액션대작은 이것으로 끝내고 싶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로버트 드 니로처럼 다양한 장르에서 연기를 하고 싶고, 클린트 이스트 우드처럼 늙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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