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명군의 불초한 후예 ‘손권의 자손들’

삼국지 인물열전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5. 11:17

본문

명군의 불초한 후예 손권의 자손들

 

최용현(수필가)

 

   수성의 명군 손권(孫權)의 치세 말기, 위나라는 조조로부터 4대째로 이어져 이미 쇠락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으니 실권은 모두 사마의의 아들인 사마사 사마소 형제가 쥐고 있었다. 촉에서는 오래 전에 유비가 죽어 그의 아들인 유선의 치세가 계속되고 있었고, 오에서는 아직도 손권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 시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집권이 장기화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손권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그도 치세 말기에는 명군답지 않게 몇 가지 실책을 범했다. 위에 반기를 든 요동태수 공손연과 손잡고 위에 대항하려 했다가 공손연의 배반으로 외교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손권의 가장 치명적인 실책은 후계자 선정에 있어서 갈팡질팡한 점이다. 처음엔 순리대로 장남 손등을 태자로 세웠으나 손등이 일찍 죽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손권은 다시 후처 소생의 장남을 태자로 세우면서 동시에 아우를 노왕으로 임명하여 태자와 거의 동등한 대우를 하면서 극진히 총애했다. 이에 조정 중신들은 태자파와 노왕파로 나뉘어져 서로 헐뜯고 싸웠다. 국론이 극도로 분열되었다.

   이 무렵, 승상 고옹이 죽자 손권은 후임으로 형주를 지키고 있던 명장 육손을 승상직까지 겸하게 했다. 그런데 육손으로부터 태자를 나라의 반석으로 삼고 노왕과 차별을 두어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노왕을 총애하는 손권의 귀에는 그 상소가 태자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소리로 들렸다. 이때 타격을 받은 노왕파에서 육손을 모함하기 시작했다.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손권은 여러 차례 관리를 보내 육손을 문책했다. 결국 육손이 화병으로 죽고 난 후에야 손권은 육손이 아무런 죄가 없음을 알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마침내 손권은 최후의 기력을 모아 결단을 내렸다. 태자 손화를 폐하고 노왕 손패에게 사약을 내린 다음, 이제 겨우 여덟 살인 어린 손량(孫亮)을 새 태자로 세웠다. 그로부터 2년 후에 손권이 죽었다. 형 손책을 이어 열아홉 살부터 일흔한 살까지 52년 동안 오의 주인으로 있었던 손권, 황제로서의 재위기간도 24년이나 되었다.

   새 황제 손량이 너무 어리다보니 조정의 실권은 태부 제갈각에게 돌아갔다. 제갈근의 아들인 제갈각은 위군의 침공을 막아낸 공로 덕분에 한때 승승장구했으나, 무리하게 군사를 동원하여 위를 정벌하려다 실패하여 실권을 잡은 지 일 년 만에 반대파인 손준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조정의 실권은 이제 손준에게, 그리고 다시 그의 종제(從弟)인 손침에게 넘어갔다. 손침은 또다시 무리하게 군사를 동원하여 위를 침공했다가, 손침의 전횡에 실망한 장수들이 위에 투항해버리자 그들의 일족을 처형하는 등 독재와 공포정치를 일삼았다.

   어느덧 오주 손량의 나이가 열일곱 살이 되었다. 실권자인 손침을 아주 싫어하던 손량은 어느 날 측근에게 손침을 죽이라는 밀조를 내렸다. 그러나 이 사실이 손침의 귀에 들어가는 바람에 오히려 손량 자신이 제위를 뺏기고 말았다.

   실권자인 손침은 낭야왕으로 있던 손휴(孫休)를 새 황제로 세웠다. 새로이 오주가 된 손휴는 손침을 승상 겸 형주목으로 임명하고, 자신의 조카이면서 손권의 손자인 손호를 오정후에 봉했다. 그러자 오의 실권자인 손침의 권세는 황제를 능가할 정도였다.

   손침은 제위 자리까지 넘보았다. 이에 놀란 오주 손휴는 노장 정봉에게 은밀히 명하여 손침을 죽이고 그 일족을 모조리 처형했다. 오랜만에 오나라는 권세를 부리던 실권자들을 처단하고 다시 황실의 면모를 일신할 수 있었다.

   그 무렵, 촉이 위의 사마소에게 평정되었다. 오주 손휴는 육손의 아들 육항과 노장 정봉에게 국경수비를 철저히 하게 하여 위의 침입에 대비했다. 위에서는 실권자인 사마소가 죽자, 그의 아들 사마염이 위주 조환을 폐하고 진() 황제로 등극했다.

   오주 손휴가 병으로 죽자, 오정후 손호(孫皓)가 중신들의 추대로 제위를 물려받았다. 그는 손권에 의해 한때 태자로 임명되었던 손화의 아들인 바, 그가 바로 오의 마지막 황제이다.

   제위에 오른 손호는 날로 흉포해져서, 충간하는 중신들을 가차 없이 처단했다. 또 도성을 건업에서 무창으로 옮기고 나날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세월을 보냈다. 재정이 바닥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토목사업을 벌이고 궁궐을 증축했다.

   또 명장 육항에게 진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가,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여 판단한 육항으로부터 지금은 공격할 때가 아닙니다.’라는 상소문이 올라오자 그의 병권을 뺏어버렸다.

   드디어 때가 이르렀다고 판단한 진 황제 사마염은 두예와 왕준을 보내 두 갈래로 오를 공격했다. 이미 국력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오는 전투다운 전투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패퇴를 거듭했고 마침내 도성이 포위되고 말았다.

   오주 손호는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어지자, 20년 전 후주 유선이 했던 것처럼 스스로를 포박한 채 중신들을 이끌고 항복했다. 강동의 호랑이 손견과 그 아들 손책이 창업하고, 명군 손권을 위시하여 주유 노숙 여몽 육손 등 무수한 명장들이 지켜온 오나라도 453년 만에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280).

   이로써 조조 유비 손권이 세운 삼국은 모두 망하고, 위를 이은 진에 의해 삼국통일이 이루어졌다. 오주 손호는 왕준을 따라 낙양으로 끌려갔다. 진 황제 사마염은 손호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짐이 자리를 만들어놓고 경()을 기다린 지 이미 오래되었소.”

   손호가 대답했다.

   “()도 남쪽에서 이런 자리를 만들어놓고 폐하를 기다렸습니다.”

   망국의 황제치고는 얼마나 당당하고 호기로운 말인가. 오주 손호는 삼국지연의에 아주 포악한 군주로 기술되어 있으나 실상은 상당히 당찬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진 황제 사마염에 의해 귀명후에 봉해져서 구차한 삶을 이어가다가 오가 망하고 3년 후에 죽었다.

   오는, 위를 이은 진을 정통으로 세운 정사 삼국지와, 촉을 정통으로 세운 삼국지연의 어느 것으로도 비호를 받지 못했다. 오의 마지막 황제 손호가 포악한 군주로 낙인찍힌 것은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역사는 이긴 자에 의해 기록되기 때문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