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중국사의 여러 창업자들 중에서 이루어놓은 업적에 비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은 촉을 창시한 유비가 아닌가 싶다. 유비가 걸어온 길과 그의 인간적인 매력, 처세술, 그리고 그가 제시한 비전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난세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웅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후한 말 황건적의 난은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유비에게도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은 유비도 동문수학한 공손찬의 막하에서 황건적 토벌에 적잖은 공을 세워 한 고을의 장령(將領)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어, 서주의 책임자가 되었으나 여포에게 뺏겼고, 다시 조조를 따라 허도에 갔으나 조조제거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도망쳐 나오기도 했으며, 하북의 원소에게 의지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조조가 강북을 통일하고 손권이 강동에서 탄탄한 기반을 확립하고 있을 때까지도, 유비는 일성(一城)도 얻지 못하고 형주에서 유표의 눈칫밥을 얻어먹고 있었다.
그런 유비가 뒤늦게나마 조조 손권과 나란히 필적할 수 있었던 것은 걸출한 기재 제갈량과 방통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적벽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그 여세를 몰아 형주와 서천, 한중을 얻어 촉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유비가 이런 걸출한 인물들을 얻을 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유비는 항상 겸손했고 누구에게나 성심으로 대했다. 때로는 우둔해 보일만큼 정직했던 점도 그의 강점이 되었다. 유비 진영이 내세울 점은 인화를 바탕으로 한 튼튼한 팀워크이고, 그 원천은 유비의 인간적 매력에서 찾을 수 있다. 인화를 빼면 유비진영에서는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관우 장비 조운 황충 같은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용장들로부터 절대적인 충성을 받을 수 있었고, 제갈량과 방통 같은 대현인을 부하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유비의 이런 신비한 매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에게는 은근히 사람을 끌어들이고 포용하는 힘이 있었다.
또, 그가 한 황실의 후예라는 점을 그의 카리스마를 유지하는 데 큰 무기로 활용했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지금도 한 고조 유방과 함께 중국인들에 의해 인군(仁君)의 전형으로 추앙받고 있다.
유비의 인물됨에 대해서는 가장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이라는 평가가 정설이지만, 결코 뱃속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음험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 후자의 예가 될 만한 일화 하나를 소개해 본다.
형주의 백성들과 함께 피난 길에 오른 유비 일행이 당양벌 장판파에서 조조의 대군에 추월당하자, 유비진영의 맹장 조운이 단기(單騎)로 조조의 대군 속에 뛰어들어 유비의 어린 아들 ‘아두’를 구해오는데, 이때 유비의 반응을 보자. 적지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어린 아들을 안고 볼을 부비다 말고 갑자기 땅에 내동댕이치며 이렇게 말한다.
“이놈 때문에 하마터면 국장(國將)을 잃을 뻔했구나!”
아들은 다시 낳을 수 있지만 조운 같은 장수는 다시 얻을 수 없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런 주군을 따르지 않을 장수는 없다. 유비는 이런 식으로 부하들의 충성을 이끌어 냈다.
유비를 음험한 인물로 보는 것은 이러한 그의 언행을 고도의 계산된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덕망과 인품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물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또 한 가지, 진의가 의심스러운 일화가 있다. 관우의 복수를 위해 국운을 걸고 오를 치러 나섰다가 대패한 유비가 백제성에서 제갈량을 불러 후사를 부탁하는 장면이다.
“승상, 위를 쳐서 한의 명예를 회복해 주시오. 만약 내 아들이 도와서 될 만한 인물이거든 승상께서 도와주시오. 그러나 도와줘도 도저히 안 될 인물 같으면 승상께서 촉의 주인이 되시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태자 유선은 그때 열일곱 살이었고, 조운이 조조의 대군 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구해왔던 바로 그 아두였다. 유비가 내동댕이칠 때 머리를 다쳐서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정말로 그는 중국 역사를 통틀어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멍청한 군주의 표본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제갈량은 지나치게 똑똑하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폐하고 황위를 차지하라는 것일까? 아니면, 아예 찬탈을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혹시 후일에 있을지도 모르는 그의 찬탈기도에 미리 쐐기를 박아두자는 것일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음험한 계산이 깔려있는 유언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말을 듣고 제갈량은 너무도 황송한 나머지 엎드린 채 계속 이마를 짓찧어 바닥이 온통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유비가 필생을 다하여 일궈놓은 촉은, 나라를 혼자 떠맡다시피 짊어지고 있던 제갈량에게 달려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제갈량은 그 모자라는 유비의 아들을 하늘처럼 받들면서 충성을 다했다. 제갈량의 위대함은 실로 거기에 있다할 것이다.
제갈량은 유비의 유훈을 한 시도 잊지 않고 분골쇄신하며 중원통일을 도모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전선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고 하지 않는가.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한의 부흥을 기치로 내걸었던 유비의 비전이 과연 당시의 상황에 합당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한의 부흥이 물 건너간 것이라면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 같은 참신한 비전을 제시하여 민심에 호소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일반적으로 ‘천시(天時 chance), 지리(地利 location), 인화(人和 teamwork)’ 이 세 가지 요소를 다 갖추고 있어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당시의 판세에 대입해 보면 위의 조조는 천시를, 오의 손권은 지리를, 촉의 유비는 인화를 얻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냉정하게 판단해 볼 때, 위나라가 이 세 가지 모두에 가장 가깝게 접근해 있었고, 오나라는 지리와 인화 두 가지를, 촉나라는 인화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해답이 너무나도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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