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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형과 조카 ‘제갈근과 제갈각’

삼국지 인물열전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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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형과 조카 제갈근과 제갈각

 

최용현(수필가)

 

   제갈근은 제갈량의 삼형제 중 맏이로, 사려 깊고 온후한 품성을 지닌 인물이다. 일찍이 고향을 떠나 남양에서 살던 중 오의 중신 노숙의 천거로 손권을 섬기게 되었다.

   그는 손권의 부름에 응하면서, 당시 네 주를 차지하고 있던 하북의 강자 원소가 머지않아 조조에게 패망할 것이라며, 원소와의 거래를 끊고 조조와 관계를 맺도록 권했다. 손권은 그의 말대로 따랐고 그의 예측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제갈근은 주로 촉과의 외교교섭을 담당하였는데, 그의 아우 제갈량이 유비를 섬기게 되고부터는 여러 번 어려움을 겪었다. 제갈량의 친형이라는 이유 때문에 여러 중신들에게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가솔들을 모두 옥에 가둬둔 채 혼자 촉으로 가서 오의 숙원인 형주반환 협상을 해야 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형주지역 사령관인 촉장 관우의 딸과 오주 손권의 아들과의 혼인교섭을 맡았다가 관우로부터 어찌 범의 딸을 개의 아들에게 시집보낼 수 있겠는가?’하는 치욕적인 말을 듣고 쫓겨 온 적도 있었다.

   또, 관우가 오의 명장 여몽의 기습 전략에 허를 찔려 형주를 뺏기고 맥성으로 피신해 있을 때, 그에게 손권을 섬기도록 권하러 갔다가 다시 관우의 칼에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는 등 외교관으로서 많은 수난을 겪었다.

   관우와 장비가 죽은 후, 촉 황제 유비가 두 아우의 원수를 갚는다며 거국적인 대군을 일으켜 오로 쳐들어왔을 때, 손권을 위시한 오의 중신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때 제갈근이 앞으로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군후의 녹을 먹은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아직 이렇다 할 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제 제가 촉주 유비를 만나 이해득실로 설득하여 그의 군사를 물러가도록 해보겠습니다.”

   촉군 진영으로 찾아가 유비를 만난 제갈근은 형주를 도로 촉에 돌려드리고, 관공과 익덕을 해친 장수들도 묶어서 촉으로 보낼 테니 부디 우리와 힘을 합쳐서 제위를 찬탈한 위의 조비를 치자.’고 간곡하게 제의했다.

   그러나 복수심에 불타는 유비에게는 오의 파격적인 제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비는 승상의 낯을 보아 그대의 목을 베지 않을 것이니, 돌아가서 손권에게 목을 씻고 죽음을 기다리라 이르라.’며 제갈근을 꾸짖고 내쫓았다.

   한편, 제갈근이 촉으로 떠난 지 여러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제갈근은 아우 제갈량의 꾐에 빠져 오를 버리고 촉을 택한 것 같다.’며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오주 손권은 내가 그를 버리지 않는 한 그 또한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절대적인 신임을 보였다.

   제갈근에게는 총명하고 재기 넘치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제갈각이다. 제갈각이 어릴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손권이 잔치를 열어 오의 중신들을 위로하고 있는데 여섯 살 난 제갈각도 아비를 따라 그 자리에 끼이게 되었다.

   손권이 갑자기 뜰에 있는 당나귀를 끌고 오게 하더니 당나귀의 면상에다 분필로 제갈자유(諸葛子瑜)’라고 썼다. 자유(子瑜)는 제갈근의 자()이다. 제갈근의 얼굴이 유난히 긴 것을 빗대어 우스개삼아 쓴 것이었다. 이것을 본 중신들은 모두 큰소리로 웃었다.

   이때 어린 제갈각이 자리에서 일어나 당나귀에게로 다가가더니 분필을 집어 네 글자 밑에 지려(之驢)’라는 두 글자를 더 썼다. 이제 제갈근의 당나귀라는 뜻이 되었다. 제갈근은 졸지에 당나귀가 될 뻔 했다가 아들의 기지로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중신들은 모두 어린 제갈각의 재치에 혀를 내둘렀고, 손권 역시 감탄하며 그 당나귀를 그 꼬마에게 선물로 하사했다.

   한번은 손권이 어린 제갈각에게 네 아버지와 숙부 중에서 누가 더 똑똑하지?’하고 물었다. 숙부란 말할 것도 없이 제갈량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갈각은 스스럼없이 아버지가 더 똑똑하다고 대답했다. 손권이 이유를 묻자 그 꼬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섬기는 상대를 잘 골랐지만 숙부는 잘못 골랐기 때문입니다.”

   아주 얄미울 정도로 멋진 대답이 아닌가.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제갈각은 타고난 총명과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명장 육손이 죽자 마침내 오나라의 총사령관에 임명되었고, 손권이 죽은 후에는 오의 국권을 한손에 쥔 실권자가 되었다.

   제갈각은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여 백성들의 신망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 무렵 중원의 위나라가 손권의 죽음을 틈타 쳐들어왔다. 제갈각은 손수 오군을 이끌고 나가 위의 대군을 격파하여 그의 기세와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위군을 물리친 제갈각은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시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리고 20만 대군을 이끌고 위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위군의 방어는 철통같이 탄탄했다. 마음이 조급해진 제갈각은 진두에 서서 지휘를 하다 화살에 맞는 부상을 입었다. 게다가 오군들 사이에 전염병이 돌고 투항자가 속출하는 등 도저히 전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오군은 많은 병사와 물자를 잃은 채 퇴각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제갈각의 인기는 땅에 떨어졌고 정적(政敵)이 속출했다. 그러나 그는 책임을 지기는커녕 모든 허물을 부하장수들에게 뒤집어씌우고 더욱 권세를 휘둘렀다. 마침내 정적들이 오주 손량을 설득, 제갈각을 꾀어내어 주살하니 실권을 장악한 지 겨우 일 년 만에 몰락하고 말았다. 그의 일족들도 모조리 참수되었다.

   아버지 제갈근의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성실한 성공에 비해, 아들 제갈각은 한때 그의 아버지가 쌓았던 공훈을 능가하는 화려한 재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실패로 위기에 처하자 슬기롭게 헤어나지 못하고 자멸하고 말았다.

   그것은 자신의 재능만 믿고 그 재능의 뿌리가 되는 덕을 쌓는 것에는 소홀한 데서 온 스스로의 한계라고 할 수밖에 없으리라. 제갈각의 짧은 성공에 이은 통한의 실패는 자신의 재주만 믿고 설쳐대는 사람들에게 뼈저린 교훈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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