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포악한 독재자의 전형 ‘동탁’

삼국지 인물열전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4. 16:19

본문

 포악한 독재자의 전형(典型) ‘동탁

 

최용현(수필가)

 

   진시황 수양제 히틀러 스탈린 후세인. 세계사에 등장하는 유명한 폭군과 독재자들의 이름이다.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매스컴이나 대중을 동원한 여론조작에 능하다는 점, 타협이나 논리, 정당성 같은 이성적인 것을 싫어한다는 점, 적대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공포정치를 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삼국지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동탁도 그런 점에서 당당히 독재자의 반열에 낄 만한 인물이다. 아니, 오히려 이들보다 더한 이력을 한 가지 더 갖추고 있다. 보통의 독재자들이 적대세력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일반 국민들에게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던 데 비해, 동탁은 적대세력은 물론 민중들도 무자비하게 억압하였던 것이다.

   그가 대권을 잡는 과정과, 그 이후의 행적 그리고 몰락과정을 살펴보자.

   동탁(董卓), 자는 중영(仲穎). 섬서성 출신으로 키가 크고 몸집이 육중했으며 가는 눈매에 재지(才智)가 번뜩이는 사나이. 어릴 때부터 힘이 장사여서 활통을 말 양쪽에 매달고 달리면서 좌우 어느 쪽 팔로도 활을 쏠 수 있었는데, 쏘았다 하면 백발백중이었다고 한다. 변방의 오랑캐인 강족 토벌에 큰 공을 세우면서 중앙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황건적과의 전투에서 여러 번 패하여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조정의 실세인 십상시(十常侍)에게 뇌물을 주고 서량자사로 임명되면서 다시 기사회생한다. 한조의 멸망을 예감한 그는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변방에서 20만 군병을 양성하면서 천하를 움켜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사위인 모사(謀士) 이유와 이각 곽사 장제 번조 등 강맹하기로 이름난 네 장수가 포진하고 있었다.

   드디어 대장군 하진으로부터 도성으로 들어와 십상시를 토벌하라는 격문이 오자,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동탁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도성으로 향한다. 이때 도성에서는 십상시에게 죽임을 당한 하진의 부하들이 환관들을 무참히 살육하는 참사가 일어났고, 난을 피해 궁궐 밖을 전전하던 황제 일행은 동탁군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 입궐한다. 대권이 너무도 쉽게 동탁에게 굴러들어온 것이다.

   실권자가 된 동탁은 군대를 풀어 도성에 온통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반대파를 과감히 처단한다. 처음엔 여포를 데리고 온 병주자사 정원이 그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희대의 명마인 적토마로 여포를 매수하자 이젠 동탁의 뜻을 거스를 사람이 없었다. 이에 동탁은 소제(少帝)를 폐하고 그의 이복동생인 아홉 살짜리 진류왕을 새 황제[獻帝]로 옹립하니 이제 천하가 완전히 동탁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되었다.

   동탁은 철저히 독재자의 길을 걸었다. 폐제(廢帝)와 황비(皇妃), 그의 모후인 하 태후를 잔인하게 죽이고, 그 시체를 아무렇게나 묻어버리게 했다. 자신에게 대항하는 사람은 무조건 잡아 죽이니 조정의 백관들은 넙죽 엎드려 목숨을 보전하기에 바빴다. 또 낙양의 부호 수천 명을 잡아들여 죽여 버리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그는 제위에 버금가는 영화를 누리면서도 심심하면 사람을 죽이는 가학적인 광란 증세를 보였다.

   어느 봄날, 동탁이 수십 명의 미녀를 마차에 태우고 성 밖 매원(梅園)을 지나고 있을 때, 마침 고을의 축제일이라 청춘남녀 한 쌍이 곱게 차려입고 마차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를 본 동탁이 농사꾼 주제에 밭에 나가 일하지 않고 돌아다니니 괘씸하다.’며 군사들에게 그들을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라!”

   군사들은 두 사람의 손발을 네 필의 소에 매달아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거열형(車裂刑)]. 두 사람의 사지가 떨어져나가며 흘린 피가 매원을 붉게 물들였다. 이를 본 동탁은 오늘은 꽃구경보다도 더 재미있는 구경을 했구나.’하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 원소 조조 손견 공손찬 등 각지의 군웅들이 연합군을 구성하여 맞서보았으나 내분으로 실패하고 만다. 동탁은 도성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는 한편, 장안 교외에다 으리으리한 새 궁궐 미오성을 지었다.

   그 안에 20년 치의 군량과 보물을 저장해놓고 미희 800명을 뽑아 밤낮없이 주지육림 속에서 살았다. 그는 일가붙이를 모두 조정의 요직에 임명하여 그의 눈과 귀가 되도록 해놓고 제위를 찬탈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는 미오성에 기거하면서 보름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장안으로 출사했다. 그의 수레가 지나가는 연도에는 모래를 깔고 보호막을 치는 등 법석을 떨었고, 조정의 중신들은 모두 나와서 도열했다. 민가에서는 밥 짓는 연기마저 피우지 못하고 그의 수레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혹시라도 그의 눈에 거슬려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하늘을 찌를 듯한 그의 위세도, 조정의 원로인 사도(司徒) 왕윤과 그의 수양딸 초선이 주도면밀하게 연출한 미인계(美人計)와 연환계(連環計)에 빠져 부하인 여포에게 목이 떨어지면서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그의 나이 54, 대권을 잡은 지 3년만이었다. 동탁이 죽자 장안의 백성들이 모두 거리로 뛰쳐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의 머리는 차고 노는 축구공이 되었고, 그의 목 없는 시신의 배꼽에는 심지를 박아서 불을 붙였는데 뱃가죽이 얼마나 기름졌던지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백성들의 원한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적대세력을 억누르고 국민들을 억압하는 데는 공포정치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러나 공포를 수단으로 정치를 하려면 강력한 자극을 주는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공포감도 반복되면 마비현상이 생기게 되어 웬만한 자극으로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독재자는 차츰 광란적인 가학심리에 빠지게 되는데, 그 방법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적대세력을 더욱 단합하게 만들어 결국 자기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만다. 이것이 공포정치의 귀결이다.

   세계사에서 보아온 독재자들의 말로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처참한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자신이 뿌려놓은 죄과에 대한 업보이다. 그런 점에서 포악한 독재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동탁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