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사람은 자신의 역량에 합당한 자리가 주어졌을 때 최대의 기량을 발휘한다. 기량의 크기가 자리[職位]보다 현저하게 크거나 현저하게 작으면 문제가 생긴다.
전자의 경우는 제갈량에 버금가는 준재로 꼽히던 봉추(鳳雛) 방통에게 처음에 시골 현령을 맡겼을 때는 매일 술만 마시며 세월을 보내더니, 나중에 서촉 정벌군의 군사(軍師)로 임명했을 때는 발군의 지략으로 큰 공을 세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 즉 기량의 크기에 비해 직위가 현저하게 높을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알아보자. 이의 예를 미모가 출중한 누이 덕분에 벼락출세한 대장군 하진의 부침과정을 통하여 살펴보면서, 아울러 삼국지의 서장(序章)이 열리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후한 말기, 황건적의 난을 겨우 평정한 조정의 권력은 십상시(十常侍)라 불리는 환관들에게 독점되어 매관매직이 성행하는 등 부패가 극에 달해 있었다. 허수아비 황제인 영제(靈帝)는 그저 여색이나 탐할 뿐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이 무렵 후궁 하 씨가 황자 변을 낳았다. 그러자 황제는 황후를 쫓아내고 후궁 하 씨를 황후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하 황후의 오라비인 하진은 원래 소와 돼지를 도축하는 백정이었으나 누이 덕분에 갑자기 조정으로 불려와 벼슬을 하게 되었다.
황후인 누이 덕분에 하진의 벼슬도 나날이 올라갔고, 장각이 주도하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드디어 대장군에 임명되어 반란 진압의 총책임을 맡게 되었다. 단숨에 군부를 손아귀에 넣게 된 것이다.
그 후 후궁인 왕 씨가 황자 협을 낳자, 하 황후는 변 황자의 장래를 위해 후궁 왕 씨를 독살하고, 황제의 모후인 동 태후에게 협 황자를 기르도록 하였다. 협 황자는 영특하고 총명하여 황제는 물론 십상시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중병에 걸린 영제는 협 황자를 태자로 삼아 대통을 잇게 하고 싶었으나, 군권을 쥐고 있는 처남 하진 때문에 눈치를 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십상시들도, 변 황자가 대통을 이으면 더욱 기세등등해질 대장군 하진이 언제 자기들에게 칼을 들이댈지 모르기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영제가 갑자기 승하하자, 하진은 십상시의 우두머리인 건석을 살해하고 누이의 아들인 변 황자를 황제로 즉위시켜[少帝] 드디어 조정의 대권을 거머쥐었다. 권력투쟁에서 외척세력이 환관세력을 누르고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때 하진의 막하에는 후일 군웅이 되어 패권을 다투게 될 청년시절의 원소 원술 조조 등 신진관료 엘리트들이 모여 있었다. 이참에 환관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아 조정을 어지럽히는 화근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는 참모들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하진은 계속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근위무관 원소가 한 가지 계책을 내었다.
“사방의 군웅들에게 격문을 보내 그들의 군사로 하여금 환관들을 해치우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각지의 군웅들이 몰려와 조정에 칼을 들이댈지도 모른다고 간하는 참모들이 있었지만, 타인의 손으로 환관들을 쓸어버리자는 원소의 말에 하진은 눈이 번쩍 띄었다. 자신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구석 자리에 앉아있던 풋내기 무관 조조는 감히 나서지도 못하고 홀로 한숨을 쉬며 탄식하고 있었다.
“형리(刑吏)에게 명하여 환관들을 잡아들이면 될 것이지, 각지의 군웅들을 불러들여 화를 자초한단 말인가.”
결국 대장군 하진의 이름으로 띄운 격문은 각지의 군웅들에게 보내졌고, 서량자사 동탁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20만 대군을 이끌고 낙양 외곽에 도착, 도성 안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병주자사 정원도 맹장 여포를 앞세우고 낙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편, 십상시들도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어서 하 태후에게 빌붙어 목숨을 구걸하는 한편,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하진을 제거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날, 십상시들은 하 태후의 친서를 받아내어 하진에게 속히 입조하라고 전갈을 보냈다. 누이의 친서를 받은 하진은 십상시들의 함정일 거라며 입조하지 말라는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허세를 부렸다.
“무슨 소리야? 천하의 병권이 지금 내 손안에 있는데, 십상시 따위가 감히 나를 어쩐다는 말이냐?”
하진은 호위병 5백 명을 대동하고 궁궐로 들어갔다. 그러나 궁문을 지키는 환관이 ‘태후마마께서 대장군 혼자만 들어오라고 하셨다.’면서 하진만 들여보내주는 바람에 호위병들은 장락궁 밖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혼자 걸어 들어가는 하진의 등 뒤에서 갑자기 벼락같은 고함 소리가 났다.
“개백정, 게 섰거라!”
하진은 순간 ‘아차!’ 싶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사방에서 튀어나온 십상시측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순식간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하진의 호위병들은 격분하여 궁궐에 불을 지르고 환관, 궁녀는 물론 그 가속들 2천여 명을 무참히 죽이는 변란을 일으켰다. 장락궁의 피바람으로 불리는 이 ‘십상시의 난’ 때 진시황 이후 4백년이 넘게 황제에서 황제에게로 이어져온 옥새가 없어졌다. 옥새 없는 황제, 이제 후한도 완전히 망조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 와중에서도 재빨리 몸을 피하여 살아남은 일부 십상시들은 황제와 그의 이복아우 협(진류왕)을 납치하여 궐 밖으로 달아났다. 그러다가 황제 일행은 낙양 교외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동탁 군사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 입궐하게 된다.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미모가 출중한 누이 덕분에 대권을 잡은 대장군 하진, 그의 막하에서 원소 조조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보필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조언을 가려서 듣지 않고 좌충우돌하다가 외지의 군웅들을 도성으로 불러들여 놓고 어이없이 죽고 말았다.
출신이야 어떠했던 간에, 하진의 역량 여하에 따라 후한말의 난세는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그릇과 기량은 기울어지는 왕조의 대권을 맡기에는 너무나 작고 부족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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