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해마다 10월에는 군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동서 댁에 밤 따러 가곤 했었는데 올 가을엔 부쩍 심해진 편두통 때문에 가지 못했다. 지난주에 군산 처제한테서 밤은 이제 다 따고 없으니 고구마 캐러 오라는 전화가 왔었단다.
나는 인천에 사는 작은 동서한테 이번 주말에 군산에 가자고 전화를 했다. 토요일 저녁 7시 좀 넘어서 출발했는데 군산 동서 댁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어있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내년에는 부산에 사는 막내 처제와 동서도 부르기로 했다.
다음날, 늦은 아침을 먹고 세 자매가 마루에서 태양초 고추를 다듬는 사이, 남자들은 집 뒤에 있는 고구마 밭으로 올라갔다. 코에 와 닿는 공기가 차가우면서도 상큼했다. 서리를 맞아 축축하게 늘어진 고구마 줄기와 잎을 군산 동서가 낫으로 긁어내면서 설명을 했다.
“이 쪽 두 고랑은 밤고구마, 저 쪽 두 고랑은 호박고구마, 가운데 고랑은 모두 물고구마랑게. 맛은 호박고구마가 최고랑게.”
군산 동서가 몇 번 호미질 시범을 보이고는 비닐하우스에 갔다 오겠다며 내려갔다. 나와 인천 동서는 군산 동서가 가르쳐준 대로 호미질을 하며 고구마를 캤다. 토질이 좋아서인지 호미가 지나간 자리에 고구마가 엄청 많이 나왔다. 좀 있으니 아내와 인천 처제도 올라왔다. 군산 처제는 고추를 빻으러 방앗간에 갔단다.
고랑 끝 부분에서 희끄무레한 물체가 보였다. 살살 뽑아보니 덩어리가 따라 나왔다. 잔주름이 많았고 실 같은 잔뿌리가 여럿 붙어있었다. 내가 한 손에 번쩍 쳐들고 ‘이게 뭐지?’ 하고 물었다. 모두들 가까이 다가와 잔뿌리를 하나씩 떼어 껍질을 까고 씹었다. 동서는 더덕 같다고 했고, 처제와 아내는 야생도라지 같다고 했다.
나도 잔뿌리를 떼서 씹어보았다. 쌉싸래한 맛이 났다. 약간 쏘는듯한 매콤한 맛도 혀끝에 맴돌았다. 또 다른 잔뿌리를 떼서 씹어 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이름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귀한 약재 같았다. 인천처제가 말했다.
“형부, 10년 묵은 야생도라지는 산삼보다 더 좋대요. 가실 때 언니한테 토종닭이나 한 마리 얻어가요. 이거 넣어서 푹 고와 드셔보세요. 형부 요새 두통도 심하신데….”
“그러세요. 처형님이 어디다 넣어두세요. 군산 형님이 보면 내놓으라고 할 거요.”
인천 동서가 맞장구를 쳤다. 내가 그것을 밭고랑 둑으로 던져놓자 아내가 빙그레 웃으며 비닐봉지에 담았다.
다시 고구마를 캤다. 한참 있으니 군산 동서가 경운기를 몰고 와서 남은 고랑을 단숨에 갈아엎었다. 밭고랑 옆으로 고구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더러는 토막이 나기도 했지만. 우리는 경운기를 따라다니며 고구마를 주워 밭고랑에 모았다.
“이 호박고구마는 맛이 끝내준당게.”
군산 동서가 입맛을 다시며 다시 강조했다. 우리는 밭고랑에 모아둔 고구마를 모두 가마니에 담았다. 상처가 난 고구마는 따로 모았다. 사료로 쓴단다. 모은 가마니를 경운기에 싣고 집 앞 마당으로 내려왔다. 군산 동서가 우리 차와 인천 차에 고구마 한 가마니씩을 넣어주었다. 군산 처제가 점심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충 씻고 점심을 먹었다. 땀 흘려 일한 탓인지 밥맛이 꿀맛이었다. 밥 한 공기를 더 먹었다.
2시가 조금 넘어서 출발했다. 군산에서 금강 하굿둑을 지나오니 바로 충청남도 서천이었다. 서천에서 당진까지는 서해안고속도로와 나란히 가는 21번 국도를 탔다. 차가 많이 밀리는 서해안고속도로보다 국도가 더 나을 거라 생각했지만 별반 차이가 없었다. 보령과 홍성을 지나 당진에 접어들 무렵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주위가 금방 어둑어둑해졌다.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했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었나? 당진을 지나 서해안고속도로 쪽으로 진입할 무렵에는 뱃속이 더부룩하더니 신물이 자꾸 올라왔다. 머리도 지끈지끈 아팠다. 토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제하며 서해대교에 진입했다.
끝없이 뻗어 있는 6차선 다리 위로 가로등 불빛이 그림처럼 이어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차들이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었다.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주탑을 조금 지나니 많은 사람들이 3차선에 차를 세워놓고 다리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속이 뒤틀리면서 구역질이 나왔다.
나는 토하지 않으려고 입을 꽉 다물면서 3차선 차들 사이에 급히 주차하고 교각 쪽으로 갔다. 다시 구역질이 올라오자, 나는 바다를 향해 험한 것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점심 때 먹은 것이 모두 다 나온 것 같았다. 나중에는 신물이 나왔다. 입안에 쌉싸래한 맛이 맴돌았다. 아, 그 맛이었다. 아까 고구마 밭에서 캔 그 도라지인지 더덕인지….
나는 갑자기 생각나서 아내에게 물었다.
“아까 그 약초뿌리 어떻게 했어?”
“뒤 트렁크에 실었어요. 그거 때문인 것 같아요? 나도 속이 좀 메스꺼운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은 잔뿌리를 약간 맛만 보는 것 같았는데 나는 서너 번 씹어 먹었다.
“맞아, 그것 때문이야. 군산에 전화해봐야겠어.”
핸드폰을 꺼내 군산동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처제가 받았다. 나는 서해대교 위에서 토하고 있다고 말하고 아까 고구마 밭에서 캔 그 도라지(?) 설명을 했다. 처제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형부 그거 도라지 아니어요, 그거 우리 밭에 많은데 투구꽃 뿌리, 백부자예요. 옛날에 임금이 내리는 사약 만드는데 쓰는 원료예요. 그거 많이 먹으면 죽어요. 형부, 얼마나 먹었어요? 먹은 거 다 토해 내요. 얼른….”
전화가 뚝 끊어졌다. 나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다시 왝- 왝- 하며 진액 한 방울까지 다 토했다. 아내가 내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약이라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아내가 트렁크에서 꺼내온 그것을 다리 아래로 냅다 던졌다. 다리 저 아래에는 가로등 불빛을 받은 바다가 누렇게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