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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대신 닭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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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대신 닭

 

최용현(수필가)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 혼자서 식은 밥에 풋고추와 된장으로 점심요기를 한 임 씨는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잠결에 병태아부지요!’ 하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떴다. 뒷산 서당골에 사는 광호가 삶은 감자를 꿴 꼬챙이를 들고 마당에 서있었다. 임 씨는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 하고 물었다.

   “서당골 밭에 꽁이 와글와글합디더. 총만 있었다카믄 몇 마리는 잡았을 낀데.”

   임 씨는 당장 일어나 총을 들고 서당골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말만 듣고 체통 없이 벌떡 일어날 수는 없었다. 광호는 총이 있으면서 왜 꿩을 잡으러 가지 않느냐는 듯 감자가 꿰인 꼬챙이를 허공에다 대고 조준하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멋쩍은 듯 문밖으로 사라졌다.

   여름방학이라 여편네가 병태를 데리고 친정에 갔기 때문에 벌써 며칠째 홀아비 생활이다. 여편네, 집에 있을 땐 모르겠더니 없으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소 풀이나 베어올까 생각하고 빈 지게에 낫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뒷산 서당골 밭으로 털레털레 올라갔다.

   밭에는 엊그제까지만 해도 수염 달린 옥수수들이 황소의 그것(?)처럼 탐스럽게 영글고 있었는데 밑둥치에 달린 것들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이빨이 다 빠져있었다. 무엇이 쪼아 먹은 것이 분명했다. 그 옆 콩밭의 풋콩도 숱하게 까발려져 있었다. 그때 저쪽 호박밭에서 커다란 호박 잎사귀가 얼핏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잘못 봤나 싶어 자세히 보니 호박 잎사귀 사이에 무엇이 숨어있었다. 꿩이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순간 임 씨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스쳐갔다. 그 자리에 지게를 받쳐놓고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고무신에 땀이 차서 상당히 미끄러웠다. 벗겨지고 다시 신기를 여러 번 그는 맨발에 마른 흙고물을 수없이 묻혀가며 집을 향해 뛰었다. 아까 광호가 하던 얘기가 떠올랐다. 총을 가지고 올 걸.

   집에 들어서자마자 마루와 안방에 흙발 도장을 찍으며 다락에 넣어두었던 공기총을 집어 들고 다시 뛰어나왔다. 막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마을 공동우물에서 주전자에 물을 담고 있는 광호가 보였다.

   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걸었다. 그러나 아뿔싸, 우물 옆을 지나는 순간 들키고 말았다. 총을 들고 있는 임 씨를 발견한 광호가 주전자를 팽개치고 쫓아왔다. 밭머리 산등성이를 오르면서 임 씨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니는 저만치 떨어져서 오거래이.”

   광호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밭머리에 이르자 엎드려서 살금살금 기었다. 땅에서 솟는 열기 때문에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뒤따라오던 광호도 헉헉거리고 있었다. 밭둑엔 제법 큰 뽕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밑으로 숨어들었다.

   장끼의 꼬리 하나가 호박잎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총알을 장전하고 총을 어깨에 올렸다. 그의 바로 뒤까지 따라온 광호도 풀밭에 엎드린 채 용을 쓰고 있었다. 호박 잎사귀 사이로 장끼 한 놈이 머리를 내밀었다.

   그가 막 조준을 끝내고 발사하려는 찰나, ‘광호야! 광호야!’ 하는 고함소리가 밭 위에서 들려왔다. 광호엄마의 목소리였다. 엎드려있는 광호를 발견했는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이노무 새끼, 물은 안 떠오고 거기 엎드려서 뭐하는 기고?”

   “엄마, , , 어어 꽁.”

   광호가 손가락 하나를 입에 갔다대며 말했지만 호박밭에 있던 꿩들이 후다닥 도망치고 말았다. 뛰어가는 놈, 날아가는 놈. 총 한번 못 쏘아보고 꿩을 다 놓쳐버린 임 씨, ‘이 마을 여편네들은 뭔 목소리가 그리도 큰지.’ 하고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그때서야 임 씨를 발견한 광호엄마가 소리쳤다.

   “으엥, 병태아부지는 와 거기 엎드려 있었능교?”

   그는 대답대신 헛기침만 두어 번 하고 다시 지게 있는 곳으로 향했다. 광호는 물주전자를 가지러 부리나케 우물로 뛰어 내려갔다. 임 씨는 소 풀이나 베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총을 지게에 얹고 산을 내려왔다.

   광호네 집 옆에 붙어있는 임 씨의 밭을 지날 때였다. 닭 예닐곱 마리가 임 씨의 밭을 파헤치고 있었다. 광호네 닭이 분명했다. ‘훠이, 저리 가! 이노무 달구새끼들.’ 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닭들은 들은 체도 않고 열무잎사귀 쪼기에 열중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임 씨는 그 자리에 지게를 받쳐놓고 꿩 대신 닭이군.’하며 총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차마 닭에게는 쏘지 못하고 닭이 없는 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 - 닭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그 순간, - 소리와 함께 깃털이 날아올랐다. 열무 잎이 무성한 곳에 닭 한 마리가 숨어 있다가 세 번째 총알에 맞은 모양이었다. 총소리를 듣고 담 너머로 빼꼼 내다보던 광호아버지가 소리쳤다.

   “아이고, 우리 달구새끼 아인가배. 자네는 꿩하고 닭도 구별 못하나. 닭 보고 총을 쏘게.”

   광호애비가 담을 훌쩍 뛰어넘더니 쓰러진 닭의 날갯죽지를 잡고 치켜들었다. 암탉 한 마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임 씨는 아무 말도 못했다. 죽은 닭 값으로 사료 한 포대를 주기로 했다. 죽은 닭은 광호애비가 들고 갔다.

   ‘오늘은 광호네 식구들 땜에 영 일진이 안 좋구만.’ 임 씨는 투덜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대충 씻고 마루에서 총을 정성 들여 닦고 기름칠했다. 그때 광호애비가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아따, 문둥이가 새끼를 낳으면 씻겨 조진다더니 병태애비는 그 총 문질러 조지려는 가배.”

   사료를 받으러 왔나싶어 임 씨가 사료포대를 꺼내려하자, 광호애비가 손을 내저으며 갖고 온 비닐봉지를 열었다. 털이 모두 뽑힌 닭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아까 임 씨의 총에 맞아 죽은 닭이었다.

   “사료는 관두게나. 아까 서당골에서 광호 에미 땜에 꿩을 놓쳤다는 얘기 광호한테서 들었구먼. 이거 병태애비가 삶아 먹게나. 그래야 내 맘이 편할 것 같구먼.”

   그때서야 임 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꿩 대신 닭이라, 그것도 괜찮지.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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