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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끼와 땡 포수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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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끼와 땡 포수

 

최용현(수필가)

 

   국내유일의 사냥잡지인 자연과 사냥발행인으로부터 공기총을 선물 받은 강인호 편집부장, 지난 연말 송년회 때 서울에 올라온 대학친구 병주에게 말했었다. 올 겨울 충청도 사냥시즌이 끝나기 전에 공기총을 들고 당진에 한번 가겠노라고. 꿩 두 마리만 잡아서 한 마리는 진흙구이 해먹고 한 마리는 백숙을 해먹자고.

   2월 첫 토요일, 병주에게 간다고 전화를 하고 오후 5시에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밀렵하기가 싫어서 지난달에 수렵 강습을 이수하고, 비싼 돈을 내고 수렵면허와 포획승인증까지 발급 받았다. 차가 생각보다 많이 밀려서 8시쯤 되어서야 도착했다. 병주 부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불평부터 늘어놓았다.

   “아이고 못 올 곳이구먼. 80km 거리에 3시간이 뭐냐?”

   “토요일이라서 그래. 그래도 서해안고속도로가 생겨서 빠른 거야. 예전에 토요일 오후에 서울에서 국도로 올 때는 5시간이나 걸렸어.”

   병주가 위로한답시고 말을 받았다. 방으로 들어서자 푸짐한 술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 사람은 밤늦게까지 얘기꽃을 피우다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늦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2월의 날씨치고는 좀 춥긴 했으나 하늘은 맑고 쾌청했다. 대호간척지도 구경할 겸 당진과 서산의 경계인 대호지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병주가 운전을 하기로 했다. 나는 조수석에, 두 여자는 뒷좌석에 앉았다.

   시내를 벗어나 농촌으로 접어들었다. 길옆 논에 까마귀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산 아래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냥꾼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조금 더 가니 야트막한 야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골짜기 입구에 차를 세웠다.

   차 트렁크에서 총을 꺼냈다. 골짜기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비둘기처럼 생긴 새가 여러 마리 나무 위에 앉아 짹짹~ 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몸은 온통 잿빛이었으나 목 주위에 주황색 무늬가 있었다. 어치라고 했다. 한 마리를 겨냥해서 쏘았으나 빗맞았는지 후루룩 날아가 버렸다. 거리가 너무 먼 것 같았다.

   조금 더 들어가니 조그만 땡감들이 빨갛게 익은 감나무 가지 위에 어치 몇 마리가 앉아있었다. 가까이서 쏘기 위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10m쯤 될까, 총을 어깨에 올려놓는 사이 또 후루룩 날아가고 말았다. 어치들이 날아간 나뭇가지 위에 온몸이 시커먼 털로 덮여있는 조그만 짐승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청설모였다.

   총을 겨누었다. -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들썩했다. 맞았구나! 그러나 놈이 나뭇가지 뒤로 몸을 숨겼다. 한 방 더 쏘았다. 그때서야 놈이 땅으로 떨어졌다. 짜릿한 쾌감이 전신을 스쳐갔다.

   차가 있는 곳으로 오니 두 여자가 휴대용 가스버너를 꺼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내가 잡은 청설모를 보여주자 두 여자는 기겁을 했다.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야외에서 끓여 먹는 라면은 색다른 맛이 있었다. 커피까지 한 잔씩 타서 마시고 다시 차를 타고 천천히 산기슭을 훑었다. 길옆 논에 까마귀 몇 마리가 앉아 있었다. 15미터쯤 되는 거리였다. 차에서 내리면 날아 가버릴 것 같았다. 차를 세우게 하고 살며시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제일 가까이 있는 놈을 겨냥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까마귀들이 날아올랐으나, 한 놈은 그 자리에서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놈을 비닐봉지에 담아 뒤 트렁크에 실었다. 비닐봉지가 부스럭거렸지만 좀 있으니 잠잠해졌다.

   다시 차를 탔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바로 앞에서 제법 큰 새 한 마리가 산기슭으로 잽싸게 뛰어 들어갔다. 까투리 같았다. 차를 세우고 놈이 들어간 곳을 살펴보았다. 그때 차에서 불과 5m 정도 앞 풀밭에서 장끼 한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더니 산기슭 풀숲으로 사라졌다.

   꼬리가 유난히 길고 수려하게 생긴 장끼였다. 암수 한 쌍이 함께 있다가 까투리는 먼저 산으로 뛰어들고 뒤늦게 장끼가 따라갔나 보다. 놈의 행방을 찾았다. 아내가 저기, 저기하며 손가락으로 한 군데를 가리켰지만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총알을 장전하고 살며시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운전석에 앉아있던 병주가 저기!’ 하며 다시 차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운전석 옆 창문을 내리며 들어와 앉아서 쏘라고 했다. 나는 총구를 앞세우고 다시 차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퍽- 하는 총소리가 났다. 오발이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괜찮아?”

   내가 병주를 돌아보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 괜찮아.”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병주도 넋이 나간 듯했다.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니 운전석 바로앞 유리가 거미줄처럼 방사형으로 금이 쭉 가있었고 가운데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만약 총구 방향이 조금만 더 옆으로 향해 있었더라면 병주의 얼굴에 맞았을 것이다. 그때서야 병주도 상황을 파악한 듯 소리를 질렀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고 들어오면 어떡해?! 하여튼 살려줘서 고마워.”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뒷좌석에 앉아있던 병주의 아내가 민망한 듯 병주를 힐난했다.

   “당신이 자꾸 차에 들어오라고 하니까 인호 씨가.”

   그때서야 인호는 정색을 하고 병주의 아내의 말을 막았다.

   “아니오. 내 잘못이요. 꿩을 보고 너무 흥분해서 손가락이 방아쇠에 들어가 있는 걸 깜박 잊었어요. 꿩 잡으려다 하마터면 친구 잡을 뻔했소. 진흙구이고 뭐고 그만 돌아갑시다.”

   나는 총을 도로 케이스에 넣어 뒤 트렁크에 실었다. 그리고 대호간척지를 한 바퀴 돌고나서 병주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출발하면 차가 많이 밀린다며 한사코 저녁을 먹고 가라는 병주 부부의 간청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당진 읍내를 벗어나니 서해안고속도로로 진입하려는 차들이 잔뜩 밀려 있었다. 아내는 차에 오른 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자꾸만 그 아찔했던 순간이 떠올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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