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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우두머리 까치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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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우두머리 까치

 

최용현(수필가)

 

   영종도로 들어가는 배 위에서도 함 씨의 입가에 흐르는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거금 80만원을 주고 구입한 공기총이 쥐어져 있었다.

   며칠 전에 인천 월미도의 한 의원에서 간단한 신체검사를 하고 총포사에서 구입한 공기총을 찾아오는 길이다. 처음 발급 받은 총포소지허가증이 오늘 나왔기 때문에 총을 받아오는 것이다. 엽총은 방아쇠뭉치를 파출소에 맡겨놓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집에서 보관할 수 있는 산탄공기총을 샀다.

   뱃머리로 달려드는 갈매기들을 보면서 자꾸만 총을 꺼내 겨누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애써 참았다. 영종도가 가까워지자 나무 위에 까치들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요즘 까치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늦가을에 감나무 꼭대기에 붙어있는 감이야 저들의 식량이라 치더라도, 수확을 앞둔 이때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몰려와서 사과와 배를 쪼아 놓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집 인근에서 까치 때문에 남모르는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함 씨가 총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동네 어른들로부터 우두머리 까치를 잡아서 그 놈의 시체를 나무에 걸어놓으면 까치가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서 그 우두머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며칠 동안 망원경으로 집 주위에 사는 까치들을 꼼꼼하게 관찰한 끝에 드디어 우두머리 까치를 찾아냈다.

   그 놈은 눈 밑에 갈퀴 같은 것이 유달리 크게 돋아나 있는 덩치가 아주 큰 놈이다. 그 놈은 늘 앞장을 선다. 다른 까치들이 나무에 앉을 때 사람을 피해 멀찍이, 그리고 높은 곳에 앉는데 비해 그 놈은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앉아 안방까지 들여다보면서 깍-- 하며 울어댄다. 그러면 금방 졸병 까치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그 놈을 잡아야 한다, 그 놈을.

   마을 어귀에서 버스에서 내렸다. 집에 들어서자, 그의 집 감나무 위에 까치들 몇 놈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우두머리 까치는 옆집 감나무의 야트막한 가지에 앉아 있었다. 집이 조용했다. 학교에 간 아이들은 아직 올 때가 멀었고, 여편네는 아침에 강화도 장에 간다더니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그는 마루에 걸터앉자마자 총을 꺼내 총알을 장전했다. 우두머리 까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거리가 좀 멀었지만 잘 쏘면 맞을 것 같았다. 그가 누군가. 군대생활 할 때 우수한 사격성적으로 포상휴가까지 간 일등사수가 아니었던가.

   마루기둥에 기대어서 조준을 하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 하는 소리와 함께 깃털이 날리면서 그 놈이 장독대 쪽으로 비실비실 떨어졌다. 약간 빗맞은 것 같았다. 뛰어가 보니 항아리들 사이에서 기어가면서 퍼덕거리는 것이 보였다.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그놈은 항아리 사이로 숨어버리고, 항아리 하나가 와지끈 박살이 났다. 아들 세환이가 용돈을 벌기 위해 틈틈이 뱀을 잡아 넣어둔 항아리였다. 대여섯 마리나 되는 뱀들이 스멀스멀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뿔싸! 그는 재빨리 마루에 총을 올려놓고 부엌에서 큰 집게를 들고 나와 마당에 기어 다니는 뱀을 잡기 시작했다. 그 사이 우두머리 까치는 다시 힘을 차렸는지 후루룩 날아가 버렸다. 뱀 세 마리를 잡아서 비료포대에 담았다. 다시 한 마리를 잡아 포대에 넣으려는 순간, 그놈이 대가리를 돌리더니 그의 오른손 엄지를 콱 물었다. 순간, 그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물린 자리에서 피가 나왔다. 물린 곳을 입으로 빨아 뱉어냈다. 피가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신발을 신은 채로 방에 뛰어 들어가 실을 꺼내 엄지손가락을 칭칭 감아 묶었다. 물린 부분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마당에 길게 뻗어 있는 그 놈을 자세히 보니 독사는 아닌 것 같았다. 뱀을 담은 비료포대 입구를 빨래집게 여러 개로 막았다.

   댓돌 위에 털썩 주저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앞집 뒤뜰의 감나무에 앉아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까치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그한테 총알 세례를 받은 바로 그 우두머리 까치였다. 꼬리를 아래위로 까딱까딱 흔드는 게 그를 놀리는 것 같아 또 심사가 뒤틀렸다. 다시 전의(戰意)가 불 타 올랐다.

   “어쭈, 요놈 봐라. 아직 뜨거운 맛을 못 본 모양이군, 내 요놈을 잡아서 감나무에 꼭 매달고 말겠어!”

   그는 마루에 있는 총을 꺼내 다시 그 놈을 겨누었다. 놈이 눈치를 채고 휙 날아오르더니 집 옆 배추밭에 있는 감나무에 앉으려고 했다. 앉는 순간 놈의 머리통을 향해 총알을 발사했다. - 하는 소리와 함께 그놈이 수직낙하, 배추밭으로 떨어졌다. 명중이다! 놈이 뒤뚱거리며 밭고랑 사이로 기어가고 있었다.

   후다닥 뛰어가 놈의 날갯죽지를 꽉 움켜잡았다. 그놈이 쪼려고 자꾸 입을 벌리자, 놈의 입에 검붉은 피가 솟아나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크고 무섭게 생겼다. 부엌에 들어가 큰 고무 통에 그놈을 쑤셔 넣고 뚜껑을 닫았다. 날개를 퍼덕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모양이다. 숨이 끊어지면 감나무에 매달아야지.

   그때 깍-- 하는 까치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보통 때의 까치소리와 전혀 다른, 온몸에 오싹하는 전율을 느끼게 하는 비명이었다. 부엌에서 내다보니 온 동네 나무 위에 까치들이 새까맣게 앉아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고 이쪽저쪽에서 수십 마리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금세 그의 집 감나무에도 까치들이 가득 찼다.

   어떤 놈은 그가 있는 부엌문 쪽으로 저공비행을 하며 위협하듯 비껴가기도 했다. 얼마 안 있어 영종도에 있는 까치는 다 모여든 듯 온 동네가 깍--- 하는 굉음으로 뒤덮였다. 가히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였다.

   갑자기 중학교 때 보았던 히치콕 감독의 (The Bird)’라는 영화에서 새떼가 사람을 습격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부엌에 나있는 작은 문을 통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문 고리를 걸어 잠그고 귀를 틀어막았다.

   함 씨의 이마에 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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