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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차 이야기(2)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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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차 이야기(2)

 

최용현(수필가)

 

   여름휴가는 매년 7월 마지막 주말에 남천강변에 있는 밀양 처가에 모여서 함께 보내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번 휴가 때는 전에처럼 경부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강릉으로 가서 7번 국도를 타고 동해안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낮에 우리 아이들과 인천 동서의 아이들을 미리 열차로 보내고, 단골정비소에 가서 14년 된 똥차를 점검한 다음, 아내와 함께 인천 동서한테로 갔다. 군산에 사는 처제와 동서도 차를 가지고 인천으로 와서 함께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밤늦게 출발하면 차가 덜 밀릴 것 같아 밤 11시쯤 인천 처제와 동서를 내 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인천문화회관 옆을 막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떨거덕떨거덕~ 하는 소리가 났다. 내 차에서 나는 것 같았다. 신혼여행 가는 차들이 머플러 꽁무니에 깡통을 달고 갈 때 나는 그런 소리였다. 길옆 가로등 아래에 차를 세우고 뒤로 가보았다.

   머플러의 끝에서 30cm 정도 되는 부분이 녹이 심하게 슬고 삭아서 부러져 있었는데, 부러진 끝 부분이 도로에 긁히면서 나는 소리였다. 부러진 부분을 손으로 잡고 당기니 뚝 떨어졌다. 한밤중이라 어디 가서 고칠 데도 없었다. 동서가 말했다.

   “형님, 괜찮아요. 머플러는 부러져도 운행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어요. 아마 좀 시끄러울 거예요. 내일 낮에 강원도 어디에서 용접을 하든지 아니면 그냥 다녀도 돼요.”

   아니나 다를까 가속기를 밟으니 비행기 엔진소리처럼 붕- 하는 굉음이 났다. 동해안으로 향하는 여정은 그렇게 비행기를 탄 것 같은 기분으로 시작되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영동고속도로에는 밤에도 차가 넘쳐났다. 계속 가다서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날이 새고 있었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밥을 해먹고 다시 출발했다.

   동해안을 따라 7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는 길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한 굽이를 돌아 나오면 검푸른 바다가 보이고 간혹 소나무와 어우러진 곳은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군데군데 보이는 해수욕장은 수십만 인파가 몰려드는 대도시 인근의 해수욕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조용하고 깨끗했다.

   해안선을 따라 쭉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다. 우리는 경북 울진의 어느 해수욕장 입구 나무 그늘에 차를 세우고 준비해온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백사장을 가로질러 바닷가에도 가보았다. 양말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동해안은 역시 물이 참 맑았다.

   다시 영덕, 포항을 지나 경주에서 경부고속도로에 올랐다. 언양IC에서 빠져나와 밀양으로 향하는 24번 국도를 탔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양념한 소고기를 석쇠에 올려 숯불에 구워 먹는 언양불고기로 저녁을 해결했다.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명불허전이었다.

   다시 차를 몰았다. 꽁무니에서 나는 비행기 소리는 여전했다. 꼬불꼬불 산길을 계속 올라가니 터널이 나왔다. 터널만 지나면 바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이곳부터 밀양이다. 얼음골 표지판이 나왔다. 몇 년 전 함께 여름휴가를 보냈던 곳이다. 요즘엔 언론에 많이 소개가 되어 여름만 되면 들끓는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

   조금 더 내려오다 처가 쪽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왕복 2차선의 좁은 지방도인지라 차들도 거의 없고 조용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소나기였다. 옆에 무슨 학교가 보이는가 싶더니 저만치 앞 버스정류장에 버스 한 대가 서있었다.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기도 그렇고 해서 버스 바로 뒤에 섰다.

   어,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후진을 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빵빵- 하고 경적을 울렸지만 순식간에 꽝- 하고 부딪치고 말았다. 차에서 내려 앞으로 가보았다. 앞 보닛이 휘어져 오르고 전조등과 방향표시등이 박살나 있었다. 범퍼도 덜렁거렸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버스기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걸어왔다.

   ‘아니, 빵빵 하는 소리 못 들었어요? 왜 후진을 했어요?’ 하면서 내가 다그치자, 그 기사가 말했다.

   “내 버스 뒤에 승용차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요. 백미러로 보니까 여학생 하나가 비를 맞으며 뛰어오고 있기에 그 학생을 태우려고 후진을 했어요. 어떡하죠? 일단 시내에 있는 정비소로 가시죠. 가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은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군산차를 처가로 보내고 우리 차는 버스를 따라 밀양 시내로 들어왔다. 한 정비소로 갔다. 운전기사도 길옆에 버스를 세우고 따라 들어왔다. 내 차를 보고 상황을 파악한 정비소 직원이 보닛과 앞 범퍼, 전조등과 방향지시등을 갈아야 한다며 75만 원 정도 든단다. 그 직원이 물었다.

   “보험처리 할거죠?”

   그러자 버스기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보험처리 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입사한지 얼마 안 되어서 회사에 보고하면 해고된단다. 그러면서 자기가 돈을 내겠다며 고치라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사의 처지가 딱해 보였다. 나는 그 직원에게 말했다.

   “이 차 보닛은 잘 펴주시고, 범퍼는 그대로 붙여주세요. 그렇게 하면 얼마 들어요?”

   옆에 있던 동서가 왜 그러느냐는 듯 내 팔을 툭 쳤다. 정비소 직원이 말했다.

   “그렇게 하면 한 30만 원 정도 듭니다.”

   나는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버스기사에게 기사님, 걱정 말고 손님들 다 모셔다 드리고 30만원만 가지고 오세요.’ 하고 말했다. 그 기사가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다시 버스로 갔다. 기사가 가자마자 정비소 직원이 왜 그렇게 하세요? 가만히 있으면 새 차 만들어드릴 텐데.’ 하며 딱하다는 듯 힐난조로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못마땅해서 냉큼 쏘아붙였다.

   “이 똥차 팔아봤자 몇 십만 원도 안 되는데 75만원 들여서 고친다고 새 차 되겠어요? 그리고 보고하면 실직한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해요?! , 고치는 김에 머플러도 갈아주세요. 그 돈은 내가 낼 테니.”

   옆에 서있던 아내와 처제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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