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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차 이야기(1)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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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차 이야기(1)

 

최용현(수필가)

 

   나는 퇴근하자마자 집에 들어가지 않고 아파트 앞마당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몰고 단골정비소로 갔다.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에 미리 차를 점검해 보기 위해서였다. 내 차는 1990년산 흑장미 색 르망이다. 스틱형이고 그 흔한 파워핸들이나 ABS브레이크 같은 것도 없다. 숫처녀로 시집와서 11년 넘게 잘 살아주었으니 내게는 조강지처인 셈이다.

   그동안 출퇴근은 늘 지하철을 이용해왔고, 내 차는 주말나들이 할 때나 명절에 고향 갈 때나 타다 보니 주행거리는 아직 76k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놈의 차가 요즘 들어 심심찮게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지난 설날, 고향에 다녀오던 경부고속도로에서 대전을 막 지날 무렵 갑자기 기어가 들어가지 않았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보험회사에 연락을 했는데, 결국 출동한 레커차에 끌려서 가까운 신탄진에 있는 정비소에 가게 됐다. 삼발이가 탈이 난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미션 오일이 말라버린 탓이었다. 그동안 미션 오일을 한 번도 보충을 안 해주었으니. 결국 세 시간을 기다린 끝에 삼발이까지 교체하고 나서 다시 차를 몰고 서울로 올 수 있었다.

   지난 6월에는 어머니 제사지내러 내려가다가 고향에 거의 다 가서 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가던 중에 갑자기 보닛에서 떨꺼덕떨꺼덕 하는 소리가 났다. 고향의 시내 정비소에 가서 알아보니 에어컨 벨트가 끊어졌는데, 그 끊어진 벨트가 축에 감기면서 나는 소리였다.

   ‘어이구, 이놈의 똥차! 팔든지 폐차를 시키든지 해야지.’

   수리를 하고 서울에 돌아와서 중고차 시장에 전화를 해보았다. 1990년산 스틱형은 100만원 받기도 어렵단다. 그렇다고 폐차를 시키자니 아직 8km도 안 뛰었는데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래, 엔진은 이상이 없으니 10km 채우자. 그때 봐서 폐차를 하든지.’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오늘은 정비소 아저씨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더욱 철저히 점검을 했다. 아예 엔진오일도 갈고 혹시나 해서 배터리까지 새 것으로 갈았다. 부동액도 좀 더 채우고 타이어 공기압도 체크한 다음 출발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경부고속도로는 차들로 넘쳐났다. 그래도 내 차는 쌩쌩 잘 나갔다. 밤늦게 경남 밀양에 있는 처가에 도착하니 전국 각지에서 온 처남과 처제들이 모두 가족들을 대동하고 와 있었다. 6남매 모두 아이가 둘씩이니 24명에다 장인장모까지 합치면 총 26명이었다.

   밤늦게까지 왁자지껄하게 놀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오늘은 학생시절 여름방학 때 자주 가던, 화악산 아래 평밭에 가재를 잡으러 가기로 했다. 모두 5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평밭으로 향했다. 산 입구에서 기어를 1단에 놓고 올라갔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청정한 산골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상쾌했다.

   산 중턱쯤 올랐을까. , 계기판의 배터리 표시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어라, 어제 배터리를 새것으로 갈았고, 내려올 때 고속도로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빨간 불이 켜져 있어도 운행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나중에 내려와서 점검을 해봐야지.

   평밭 계곡에서 가재를 잡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서 준비해온 닭백숙으로 점심을 먹고, 해가 저만치 서산 위로 기울어질 무렵 하산을 준비했다. 차에 시동을 켜니 계기판의 배터리에 또 빨간불이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 차에는 우리 부부만 타고 아이들은 다른 차에 태웠다.

   ‘별일 있을라고.’ 생각하며 산을 내려왔다. 내리막길을 거의 다 왔을 무렵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나면서 시동이 꺼져버렸다. 보닛을 열어보니 배터리 윗부분에 시커먼 구멍이 뚫려있고 그 주위에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배터리가 터진 것이다.

   레커를 불러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군산동서가 자신의 차인 더블 캡 포터에서 비상용 밧줄을 꺼내 와서 내 차의 앞 범퍼 밑에 있는 고리에 묶고 앞에서 끌었다. 나는 핸들만 조작하며 뒤를 따랐다.

   시내에 나와서 정비소로 가니 배터리와 제너레이터를 교체해야 된단다. 배터리액이 묻은 전기배선과 호스도 모두 교체해야 하고. 또 앞바퀴를 연결해주는 샤프트()도 터졌다며 새것으로 갈아야 한다고 했다. 45만원이란다. 휴가 올 때 가지고 온 돈 모두를 내도 모자랄 판이었다. 35만원에 합의를 보고 차를 고쳤다.

   다음날은 청도 운문사 계곡으로 갔는데, 또 탈이 나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별 탈은 없었다. 그 다음날 오전 10시쯤 처가를 나와 경산IC를 통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귀경길에 올랐다. 그런데 대전을 지나 호남선과 만나는 지점, 지난번에 미션 오일이 말라 레커차에 끌려갔던 바로 그 지점에 오니 또 계기판의 배터리 표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또 배터리가 터지면 어떡하나 싶어 겁이 덜컹 났다. 그때 죽암휴게소 2km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나와 2단 기어를 넣고 천천히 죽암휴게소로 들어갔다. 다행히 대우정비소가 있었다.

   계기판 배터리의 빨간 불 표시를 보더니 또 제너레이터를 갈아야한단다. 나는 어저께 배터리가 터져서 제너레이터와 배터리를 새것으로 갈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제너레이터가 불량품이라며 정품으로 갈아야 한다고 했다. 제너레이터를 또 갈았다.

   서울에 도착하여 집 근처에 오자 출발할 때 점검을 했던 단골정비소로 갔다. 정비소 아저씨에게 휴가기간 동안 있었던 사건(?)들을 얘기했다. 3일전에 여기서 배터리를 새것으로 갈았지만 하루 만에 터져서 다시 갈았고, 제너레이터는 이틀 만에 두 번이나 갈았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보닛을 열어 찬찬히 살펴보던 정비소 아저씨, ‘옳지! 이거구나.’ 하면서 나보고 가까이 와서 보라고 했다. 제너레이터와 배터리를 연결해주는 전기선의 암나사가 너무 헐거워져 있었다. 그래서 차가 조금만 덜컹거려도 수나사가 빠져버리게 되어있었다. 그게 빠지면 과열이 되어서 결국 배터리가 터지는 거였다.

   아저씨가 그 헐거워진 연결부분을 펜치로 꽉 눌러주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제너레이터와 배터리는 처음부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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