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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보조기사 이야기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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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보조기사 이야기

 

최용현(수필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손재주가 뛰어나 뭐든 뚝딱 잘 고쳤고, 여러 스포츠에도 능했던 사촌동생, 나를 유난히 잘 따랐고, 공부가 하기 싫어서 고등학교에도 진학하지 않았던 이종사촌동생 인규 이야기를 하려면.

   그래, 생각나는 대로 기억을 더듬어보자. 어머니의 세 자매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 세 자매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들 셋을 낳았다. 농촌에 사는 맏이인 어머니와 둘째인 큰이모는 세 아들 아래에 딸 하나씩을 낳았고, 읍내에 사는 작은이모는 세 아들 위로 딸 둘을 두었다.

   어릴 때, 방학을 하면 이종사촌들이 떼거리로 모여 이모 집으로 몰려다녔다. 여름엔 농수로에서 목욕을 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고, 겨울엔 소죽 끓일 때 구운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낮에는 자치기, 밤에는 신패(손목)때리기 화투를 치며 놀았다. 꼬마손님들을 먹여 살리느라 어머니와 이모들이 고생을 했지만 덕분에 이종사촌들 간에는 돈독한 정이 생겼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부산에 있는 중학교에 응시했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읍내에 있는 M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결국 시골에 있는 H중학교에 입학했고, 그 학교와 가까운 큰이모집에서 숙식을 했다. 3개월 후 M중학교로 전학을 하고부터는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는데, 이때는 읍내에서 자전거상회를 운영하는 작은이모집에 자주 들락거렸다.

   부산으로 진학한 고등학교 시절에는, 주말에 기차를 타고 밀양에 오면 우리 집으로 가는 버스종점 부근에 사는 작은이모집에 들르곤 했다. 일요일 저녁에 다시 부산으로 가기 위해 읍내에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은이모집에는 나보다 한 살, 세 살 적은 여동생이 있었는데, 이들과 놀다가 차 시간에 맞춰서 오가곤 했던 것이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서 살 때는, 서울역에서 오후에 기차를 타면 밀양에 도착할 때는 저녁이 되어 우리 집으로 가는 막차가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도 작은이모집에 가서 여동생들과 놀다가 중학생인 큰아들 인규 방에서 자곤 했다.

   나보다 다섯 살 적은 인규는 어릴 때부터 나를 잘 따랐는데, 손재주가 뛰어나 고장 난 것이 있으면 뭐든 잘 고쳤기 때문에 이모들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탁구와 테니스를 즐겨 쳤고, 조기축구회 활동도 했는데 붙임성이 좋아 형들의 총애를 받았단다. 고향에 내려올 때 서울역에서 산 스포츠 잡지를 열차 안에서 읽고 건네주면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내가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해서 3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는 길에 작은이모집에 들렀더니, 중학교를 졸업한 인규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1년간 집에서 놀면서 이모부 일을 돕고 있었다. 가족들이 입이 아프도록 진학을 하라고 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아 이제 거의 포기상태란다.

   내가 대학은 몰라도 고등학교는 꼭 나와야 된다며, 1년 재수했다 셈 치고 내년에는 꼭 입학원서를 내라.’고 설득해보았지만, 그는 자전거를 조립하고 수리하는 일은 너무너무 재미있는데, 학교 다니는 거랑 공부하는 거는 죽어도 하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듬해 2월말, 내가 2학년에 복학하기 위해 옷가방과 이불보따리를 들고 작은이모집에 들렀을 때, 인규가 서울구경을 하고 싶다며 나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TV에서 본 움직이는(?) 계단을 꼭 타보고 싶다고 했다. 군대 가기 전에 신세계백화점에서 타본 적이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작은이모가 그래, 형 따라가서 짐도 좀 들어주고 서울구경도 하다가 내일 저녁에 내려오너라.’고 하시면서 허락을 해주셨다. 우리는 밤차를 타고 상경하여 학교 앞에서 하숙집을 구하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시내로 나왔다. 먼저 남산케이블카를 탔고, 내려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신세계백화점에 가서 에스컬레이터까지 타보고 서울역에서 헤어졌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3학년 겨울방학 때 인규의 영장이 나왔다. 입대하는 날 이모집에 갔더니 이모께서 네가 인규 데리고 가서 입대시키고 오너라.’고 하셨다. 그런 부모의 심정을 모를 리 없는 인규도 나랑 같이 가겠다고 했다. 내가 인규를 대구 50사단 훈련소에 입소시키고 돌아왔을 때 작은이모는 그때까지도 방안에서 울고 계셨다.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고향에 자주 가지 못했다. 그때부터는 밀양 형님 댁에 계시다가 가끔씩 서울로 오시는 어머니로부터 고향 친지들의 소식을 듣곤 했다. 세월은 왜 그리도 빠른지 인규의 두 누나가 차례로 결혼을 했고, 인규가 제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해가 바뀌자, 인규가 맞선을 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싶더니, 인규가 큰이모네 이종사촌형이 부산에서 운영하는 냉동회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인규의 큰누나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인규가 맞선을 볼 때, 잘 되어가다가도 집에서 아버지를 도우며 자전거 수리 일을 한다고 하니 혼담이 자꾸 깨지더란다.

   그래서 결혼을 위해 부산에 위장취업을 한 것이란다. 결혼 후 적당한 시기에 집으로 돌아올 요량으로. 그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보조기사인데, 그냥 일용잡부나 마찬가지란다. 원양어선이 들어오면 냉동기사가 맨 먼저 배에 올라가 하역할 생선의 냉동처리를 하는데, 이때 보조기사가 함께 들어가 그 작업을 돕는단다.

   드디어, 인규가 다음 달에 부산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이 왔다. 참으로 반가웠다.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서라도 인규 결혼식에는 꼭 가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이모들께 인사도 드리고, 이종사촌들도 만나봐야지.

   며칠이 지났을까? 새벽에 집 전화벨이 울렸다. 새벽에 오는 전화가 주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떨치며 수화기를 들었다. 인규의 큰누나였다. 목이 완전히 쉬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오빠, 인규가, 인규가죽었어.”

   어제 TV뉴스에서 본 그 사고였다. 강원도 속초에 입항한 원양어선에 부산에서 올라와 대기 중이던 냉동기사와 보조기사가 들어가 작업을 했는데, 무슨 가스가 누출되어 폭발하는 바람에 두 사람 다 새카맣게 타버린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그 보조기사가 바로 인규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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