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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치기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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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치기

 

최용현(수필가)

 

   내가 서초영업국에서 3년 동안 영업소장을 하면서 진 빚은 3천만 원 정도 되었다. 모두 상부에서 하달한 신계약 목표액을 채우느라 주위 사람들에게 빌리거나 금융기관에서 대출 받은 돈이었다. 그 빚은 계속 조금씩 늘어나 계속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런데 하늘이 무심치 않아서인지 강남 테헤란로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고향 선배가 찾아와 대출을 부탁하기에 힘써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노후를 위해 큰 보험 한 건을 연납으로 가입해 달라고 요청해서 승낙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로 목돈이 수당으로 떨어진다. 그 돈으로 이자가 많이 나가는 빚부터 갚을 생각이었다.

   나는 영업국장에게 보고하고 대출을 부탁했다. 얼마 안 있어 대출금 6억 원이 나왔다. 나는 그 선배를 보험에 가입시켰고, 그가 1년 치 보험료 3천여만 원을 납입하자 여러 명목의 수당이 한꺼번에 나왔는데 그 금액이 1,800만 원 정도 되었다. 그런데 수당이 든 봉투를 받은 순간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수당 중 1,500만원은 대출을 받는 데 경비가 많이 들었다.’며 영업국장이 챙겨가고 내게는 300만원만 나온 것이다.

   주남철 서초영업국장.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업실적으로 우리 회사는 물론 보험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한 마디로 우리 영업국은 그의 왕국이었고 그는 왕이었다. 그는 창업자인 명예회장이 아들처럼 아끼는 사람이었고 그에게는 창업자가 허락한 두 가지의 특권이 있었다.

   하나는 우리 영업국 내에서 멋대로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이었고, 또 하나는 그의 전화 한 통이면 형통되는 대출권이었다. 인사권이 채찍이라면 대출권은 당근이었다. 그는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영업국 내에서 절대군주로 군림했다. 서초영업국 내의 어떤 영업소장도 그의 명과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한번은 얼굴이 반반한 젊은 설계사를 건드렸다가 그녀의 남편이 회사로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톡톡히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합의를 했다고 들었는데, 보통 사람 같았으면 회사에서 쫓겨났겠지만 그는 1개월 감봉처분만 받았다. 워낙 거물이어서 회사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꼬박 사흘 동안 혼자 끙끙 앓으며 고민을 했다. 영업국장과 싸워서 빼앗긴 수당 1,500만원을 받아내느냐, 아니면 비굴하게 참고 견디느냐.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나는 빼앗긴 수당을 받아내기로 결심하고 먼저 본사 감사실을 찾아갔다. 내 설명을 들은 감사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우리 회사에서 보배 같은 존재요. 그냥 모르는 체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무서워서 아무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 사람 때문에 피해를 입은 영업소장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가 이번에 착복해간 수당 1,500만원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내가 물러서지 않자 감사실장은 마지못해 조사를 해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며칠 후 영업본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감사팀이 우리 영업국으로 내려왔다. 영업본부장은 영업소장들을 한 사람씩 불러 개별면담을 했다. 내 차례는 마지막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본부장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다른 영업소장들은 모두 영업국장에게 피해를 본 것이 없다고 하는데, 그리고 그 6억 짜리 계약 건 말이야. 알아보니까 영업국장이 수당을 착복한 게 아니고 영업국 운영비로 썼다던데.”

   마치 영업국장의 대변인 같은 말투였다. 약삭빠른 주남철 영업국장이 벌써 본부장과 영업소장들에게 손을 썼던 것이다. 그러니 영업국장의 만행을 증언하거나 자신이 입은 피해를 적극적으로 밝힌 영업소장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는 다시 정색을 하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우리 영업소 사원들이 신계약을 해오면 제가 수당을 빼내서 영업소 운영비로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까?”

   대답이 없었다. 순간 본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조직사회에서 그렇게 돌출행동을 하면 본인에게 득 될 것이 없다.’고 했다. 내게 경고를 한 셈이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있어 주남철 영업국장은 차장에서 부장으로 특별승진을 했다. 그리고 강남지역의 모든 영업국을 관할하는 강남총국장이 되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본사 인사부로 찾아갔다. 그리고 좀 더 강수를 썼다. 나는 인사부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한 달 내에 납득할 만한 인사 조치를 하지 않으면 주남철 총국장의 수당착복 사실을 금융감독원에 보고하겠다. 그리고 어떻게 조치하는지 그 처리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우리 영업국에는 주남철 총국장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사람이 새로운 영업국장으로 부임해 왔다. 그는 부임한 다음날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어디를 좀 함께 가자고 했다. 그와 함께 차를 타고 간 곳은 바로 주남철 강남총국장의 방이었다. 주남철 총국장이 봉투 하나를 내게 내밀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미안하네. 1,500만원을 모두 돌려줄테니 이제 그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주게.”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그 봉투를 받아들고 영업소로 돌아왔다. 빼앗겼던 수당을 다시 찾아 흐뭇했다. 그리고 절대군주 같은 주남철 총국장을 상대로 싸워 이겼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영업소로 돌아온 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인사 발령장이 팩스로 날아왔다. 내일까지 울릉영업소장으로 부임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전화로 하달된 이 달 신계약 목표는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작년에 개소하였으나 영업실적이 미미하여 곧 폐쇄한다고 알려진 울릉영업소. 그곳으로 나를 보내고 무리한 목표액을 하달한 것은 충분히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그건 사표를 내라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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