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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클럽을 떠나다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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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클럽을 떠나다

 

최용현(수필가)

 

   정식으로 발령이 난 곳은 교육부였다. 다른 동기생들은 대부분 수습 받던 부서에 재배치를 받았지만 나는 지난 주 인사과장 면접 때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며 다른 부서로 옮겨달라고 했었다. 수습기간 3개월 동안 정들었던 계약부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내가 계약부를 떠나고자 한 것은 한 마디로 술 때문이었다. 계약부 남자사원은 무조건 주주(酒酒) 클럽의 회원이 되어야 했다. 술을 즐기거나 잘 마셔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체질적으로 술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 술만 먹으면 금방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호흡도 가빠지고 머리도 아프고, 한 마디로 심신이 괴로웠다. 술이 싫었다.

   그렇다고 수습 딱지도 못 뗀 신참이 선배 사원들이 모두 가는 술자리에 빠질 수는 없었다. 수습기간 동안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술집에 따라다녔다. 가는 곳이래야 족발이나 삼겹살을 파는 소주집이 보통이고, 아니면 배갈을 파는 중국집이었다.

   그것이 통상 말하는 1차였고 거기까지는 버틸 만했다. 그런데 이 주당들이 1차로 끝내는 법은 없었다. 2, 3차가 또 기다리고 있었다. 3차가 끝난 뒤 지하철 막차라도 타고 가는 날은 그나마 재수가 좋은 날이고, 대부분 새벽 한 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집에 가곤 했다. 택시비 지출도 만만찮았다.

   몰래 화장실에 가서 토해버리면 좀 나았다. 그렇지 않은 날은 집에 오자마자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 억지로 토했다. 그러고도 혹시나 싶어 머리맡에 빈 세숫대야를 놓고 잠을 자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더욱 고역이었다. 아침밥은커녕 세수만 겨우 하고 출근하면 입에서 나는 술 냄새는 말할 것도 없고 속이 쓰려서 못 견딜 노릇이었다. 하루 종일 머리도 띵-하고. 지친 몸도 몸이지만 술값 지출도 문제였다. 술값은 철저히 n분의 1로 분할해서 월급날 갹출했다. 지난달 우리 주주클럽의 총무가 술값으로 거둬간 액수가 내 월급의 거의 4분의 1이었다.

   하루 세끼 중에 제대로 먹는 것은 점심뿐이었다. 우리 클럽의 총무는 점심때도 해장을 한다며 소주를 시켰다. 아침 내내 속이 쓰리다가도 뱃속에 소주 한 잔만 들어가면 위장이 방긋방긋 웃는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말이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직장생활에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회사업무 익히는 것보다 술자리 따라다니는 것이 더 힘들었다. 다른 부서로 배치된 입사동기들도 모두 이런 식으로 술에 절어서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난번 동기생들 모임에서 들은 바로는 술로 인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부서도 많았다.

   그런 곳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습기간이 끝날 무렵에 하는 인사과장 면접 때 다른 부서에 가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교육부로 온 그날부터 나는 잃어버렸던 퇴근시간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퇴근 때 술 마시러 가자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육부에 온 지 사흘째 되던 날, 바로 위 상사인 신 대리에게 혹시나 싶어 전입신고 하려면 술 한 잔 사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굳이 하려면 간단히 점심이나 한 끼 사면 된다고 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저녁에 술을 먹자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즉 민폐를 끼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 말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알고 보니 신 대리도 술을 거의 못하는, 나와 같은 비주류였다.

   어저께는 우리 회사의 대학동문회에 나갔다가 교육부장님이 나와 같은 대학을 나온 대 선배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어저께 알았지만 부장님은 내가 교육부로 올 때부터 알고 있었던 듯 했다. ‘모두들 지켜보고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특별히 애정 어린 격려까지 해주셨다.

   교육부에 온 후 두 번째 맞은 토요일, 모두들 한 시에 퇴근을 했다. 나는 하던 일을 마무리 짓느라 한 시 반쯤에 사무실을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가려고 뒷골목인 피맛골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신 대리가 어느 음식점 앞에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돌아서서 그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소주병과 맥주병, 빈대떡과 돼지족발을 시켜놓고, 우리 부장님과 과장님, 그리고 신 대리가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지나가는 나를 보고 부장님이 부르라고 했던 것이다. ‘어서 와!’ 하며 부장님이 내게 자리를 권했다.

   덜컹 겁이 났다. 나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저는 술을 못 하는데요.’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괜찮아, 자네 나이 때는 바위를 갈아 마셔도 소화가 돼.’ 하시며 부장님이 잔을 건넸다. 맥주잔이었다. 나는 맥주를 주시려나보다 생각하고 잔을 든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런데 부장님이 그 잔에 붓는 것은 소주였다. -- 하는 그 소리에 오싹하는 전율이 느껴졌다. 맥주잔에 소주가 가득 부어졌다. 감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마셔보자. 죽기야 하겠어?!”

   나는 잔을 입에 대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단숨에 벌컥벌컥 끝까지 마셨다. 빈 잔을 테이블 위에 탁 놓았다. 순간, 천장이 흔들거리고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이 내 눈 바로 앞까지 다가오다가 다시 멀어져가더니 이번에는 내 주위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그렇지, 그래야지. 그 정도는 돼야지. 아줌마, 소주 한 병 더!”

   부장님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또 소주를 주문했다.

   “, 부장님 더 이상은 도저히.”

   혀가 꼬부라져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소주 한 병이 더 나왔다. 부장이 이것만 마셔, 더 권하지 않을 테니까.’ 하며 다시 맥주잔에다 소주를 따랐다. 나는 그 잔을 받아들고 흐릿해지는 의식을 붙잡으며 마지막 기력을 다해 입을 열었다.

   “부장님 저는 요, 술 때문에 지긋지긋해서 억- 계약부를 떠나 교육부로 왔는데요, - 알고 보니 교육부가 한 수 위네요, - 계약부의 주주클럽에서도 맥주잔에 억- 소주를 따라 마시지는 않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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