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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입사시험에서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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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입사시험에서

 

최용현(수필가)

 

   4학년 2학기에 접어들자, 급우들은 대부분 학교 도서관으로 출근하여 취직시험 준비를 했다. 꼭 필요한 과목이 아니면 수업시간에도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복학생들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취업이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난 겨울방학 때 결혼을 했고, 아내가 벌써 임신 8개월에 접어들었지 않았는가.

   이제 좀 있으면 신입사원 채용공고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학교 도서관 입구와 학생회관 취업상담실 앞 게시판은 채용공고를 붙여놓는 곳이기 때문에 요즘은 학교에 갈 때마다 도서관이나 학생회관에 들러서 게시판을 확인하곤 한다.

   학교 앞 사진관에서는 취직시험을 앞둔 4학년생들에게 입사원서나 이력서용 증명사진 값을 할인해주는 행사를 한다. 사진도 아예 10장씩 빼준다. 나도 증명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받아 보니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입고 찍은 점퍼 색깔이 옅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흐릿해 보이는 데다 눈을 치켜떠서인지 인상도 좀 사나워 보였다.

   가뜩이나 험상궂은(?) 인상인데, 이러다가 잘못되면 필기시험을 잘 쳐도 면접에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고심하다가 다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이번엔 양복을 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찍었다. 좀 나아진 것 같았다. 전체적인 표정도 부드러워졌고, 인상도 덜 사나워 보였다.

   이제 증명사진이 20장이나 있으니 경험삼아 여러 곳에 응시를 해보기로 했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회사에 응시할 때는 먼저 찍은 사진을 붙이고, 꼭 가고 싶은 회사에 응시할 때는 나중에 찍은 사진을 붙이기로 했다.

   198010월이 되자, 드디어 신입사원 채용공고가 났다. 광화문에 22층 초현대식 건물을 지어 최근에 입주한 굴지의 생명보험회사였다. 군필자 중에서 상대 전 학과와 법대 법학과, 행정학과 졸업자나 졸업예정자가 응시할 수 있었다. 나의 전공인 행정학과도 포함되어 있어서 응시를 해보기로 했다. 생명보험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설사 합격하더라도 꼭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취업상담실에 가니 급우들이 여럿 와있었다. 나도 급우들처럼 입사원서를 받아서 작성을 했다. 별다른 고민 없이 먼저 찍은 사진을 붙였다. 시험 과목은 영어와 전공, 일반상식 세 가지였다. 경험삼아 보는 시험이니 특별히 시험공부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전공과목인 행정학 책만 대충 훑어보고 가기로 했다.

   경쟁률이 221이라고 신문에 났다. 100명을 선발하는데 응시자는 2,200명이 넘었다. 필기시험 전날, 고사장이 있는 용산 선린상고로 갔다. 고교야구 중계 때 이름을 많이 듣던 전통 있는 학교였다. 운동장에 운집한 응시생 인파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사장에 들어가 내일 필기시험을 치를 자리를 확인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일반상식 책 한 권을 샀다. 그날 밤, 벼락치기로 상식 책을 독파했다. 이왕 시험에 응시한다면 좋은 성적으로 합격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입사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고.

   다음날 선린상고 고사장에 갔다. 시험지를 받아보니 모두 객관식 5지선다형 문제였다. 특별히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아서 무난하게 시험을 본 것 같았다. 발표는 5일 후이고, 광화문 본사 건물 벽에 필기시험 합격자 수험번호를 써 붙여 놓는단다. 합격자는 다시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최종 합격이 된다.

   합격자 발표일, 합격을 해도 입사할 생각이 없는데 굳이 발표를 보러 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합격여부가 궁금해서 안 가볼 수가 없었다. 광화문 본사를 찾아갔다. 건물 한쪽 벽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 앞에 숫자들을 써놓은 커다란 종이가 붙어있었다. 내 수험번호도 있었다.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1층 바닥이 대리석 위에 유리를 얹어놓은 것처럼 투명하게 번쩍거렸는데 걸어 다니기가 아주 조심스럽고 자칫 삐끗하면 미끄러질 것 같았다. 문득, 이런 회사에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 일정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면접을 보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음날, 학생회관의 취업상담실을 찾아가 실장님에게 자문을 구했다. 앞으로 보험 산업이 아주 유망하다면서 그 회사는 최신식 새 건물이라서 근무환경도 좋고 사원복지도 잘 되어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대졸 초임이 보통 18~19만원인데, 그 회사는 225천원이라면서 스크랩 자료를 보여주었다.

   결국 나는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관으로부터 왜 우리 회사에 응시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보험 산업이 앞으로 유망하고, 이 회사는 사원복지제도가 잘 되어있다고 들었습니다.’ 하고 답변을 한 기억이 난다.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있었다. 우리 과 급우들 중에서 합격자는 나 혼자였다.

   인사부에서 나눠준 합격자 안내문을 보니, 합격자는 세면도구를 갖추고 111일 오전 830분까지 본사 5층 강당에 집결하라고 되어있었다. 3일 후였다. 5층 강당에 모이면 셔틀버스를 타고 경기도 일산에 있는 YMCA 청소년수련원에 입소하여 2주일 동안 신입사원 합숙교육을 받게 된단다. 만삭인 아내는 합숙교육이 끝나는 11월 중순이 출산예정일이다.

   거기에 들어가면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되어 격리되는 것이다. 다른 회사의 입사시험 응시를 아예 원천적으로 봉쇄하려고 발표 직후에 바로 2주간의 합숙교육을 하는 것 같았다. 어저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H그룹의 신입사원 채용공고를 보니 11월 첫 주말에 필기시험을 본다고 하던데.

   이제 입소를 하느냐 마느냐 결정을 해야만 했다. 아내는 말은 안 했지만 입소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학과장을 맡고 있는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우리 과에서 내가 제일 먼저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며 입소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아울러 학기 중에 회사로 출근을 해도 학점에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해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10월의 마지막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고 아침 일찍 일어나 옷가방을 챙겼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와 만삭의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탔다. 출산하러 친정으로 가는 아내를 서울역에서 배웅해주고,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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