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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해병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6. 1. 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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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해병

 

최용현(수필가)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은 거장 이만희 감독이 연출한 흑백영화로, 한국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전쟁영화의 걸작이다. 서울관객 22만 명을 기록하여 1963년 개봉영화 중에서 흥행 1위를 차지했는데, 당시 초중고생들의 단체관람이 크게 한몫을 했다. 이듬해 말레이시아와 대만, 미국 등에 수출하였다.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의 감독상, 부일영화상의 촬영상을 받았으며, ‘빨간 마후라’(1964년)와 함께 60년대 6․25전쟁영화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영화 제작비가 편당 200만~300만원이던 시절, 880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하여 2천1백만 원의수익을 올렸으나, 촬영 중 사고로 인한 피해보상을 하고 남은 돈은 천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국방부의 후원과 해병대 사령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가짜 총보다 진짜 총 구하기가 더 쉬워서 진짜 총과 실탄으로 영화를 찍었는데, 육군과 서울시경에서 특등사수들을 차출하여 배우들의 몸 근처로 실탄을 쏘게 했다. 그러다가 땅에 묻은 폭탄이 터져서 중공군 엑스트라 한 명의 다리가 절단되는 바람에 당시 강남의 논 열 마지기 값으로 변상하였다고 한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호랑이 분대장(장동휘 扮) 휘하의 분대원들은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여 서울 시가지까지 진격한다. 이들은 한 건물에서 어린 딸과 함께 뛰어나오던 엄마가 북한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자, 딸 영희(전영선 扮)를 구한다. 구 해병(이대엽 扮)은 시체더미에서 북한군에게 학살당한 여동생의 주검을 발견하고 절규한다.

   서울수복 후 북진을 시작한 분대원들은 영희를 마대에 담고 다니며 보살핀다. 그날 밤, 분대장은 중대장의 허락을 받아 영희를 현지 입대시키고 분대의 마스코트로 삼는다. 구 해병의 친구 최 해병(최무룡 扮)이 분대에 전입해오는데, 최 해병은 구 해병의 여동생을 죽인 사람의 동생이다. 구 해병은 최 해병과 주먹다짐을 벌이다가 분대장의 만류로 멈춘다.

   분대원들은 기마전에서 승리한 상금으로 내무반에서 막걸리 파티를 벌이는데. 거기서 조장 해병(구봉서 扮)의 트위스트를 따라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천막 바깥에서는 최 해병이 구 해병에게 형의 잘못을 사과한다. 구 해병은 영희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최 해병은 구 해병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다음 날, 행군도중 조장 해병이 용변을 보다가 무장간첩 2명을 발견하고 분대원들이 체포하는데, 그 공으로 분대원들은 특별외박을 하게 된다. 분대원들은 평소에 가고 싶어 하던 유흥업소를 찾아가는데, 유엔군을 상대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양공주들이 냉대한다. 이들이 업소의 기물을 때려 부수고 많은 돈을 내놓자, 그때서야 반갑게 맞아준다. 이들이 양공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전령이 찾아와서 긴급복귀명령을 전한다.

   전방으로 가게 된 분대원들은 영희를 대대 본부에 맡기고 북진을 하던 중 중공군을 만나게 된다. 분대원들은 사격과 백병전을 병행하면서 힘겹게 전선을 지켜나간다. 그러다가 중공군에게 포위당할 위기에 처하자, 중대에서 전술상 후퇴를 결정하고 분대원들에게는 중대에서 새 진지를 구축할 때까지 현재의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중공군과 일전을 앞둔 분대원들은 영희가 보낸 크리스마스 편지를 읽으며 반가움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마침내 중공군이 물밀듯이 몰려오기 시작하고 총에 맞은 조장 해병이 쓰러진다. 분대원들은 조장 해병의 마지막을 눈물로 지켜본다. 통신병인 김 해병(김운하 扮)이 적진을 뚫고 중대에 지원요청을 하러 간 사이, 분대원들은 참호에서 죽은 척 하고 엎드려 있다가 적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 처치하면서 가까스로 진지를 지켜낸다.

   지원군이 오지 않자, 분대원들은 몰려오는 중공군과 결사항전을 벌인다. 치열한 전투 끝에 분대원들이 하나둘 쓰러지더니 구 해병도 쓰러진다. 드디어 중공군이 물러나기 시작한다. 살아남은 분대원은 분대장과 최 해병뿐이다. 구 해병의 시신 앞에서 경례를 하고 진지를 떠나는 두 해병을 비추면서 영화가 끝난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한 분대의 인천상륙작전과 장단 사천강 전투에서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는데, 당시 조선일보의 보도(1963.4.9)로는 등장인원 1만 4,500명, 엑스트라 연 10만 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중공군과의 교전에는 3천 명의 해병이 투입되었으며, 시가전은 폐허된 건물이 남아있는 용산의 한전 터에서, 야외전투는 김포평야에서 촬영했다.

   이만희 감독은 고등학교 재학 중 6․25전쟁을 맞아 5년간 통신병으로 복무한 참전용사이다. 그는 종종 ‘내가 가진 기억은 군대와 영화밖에 없다.’라고 술회하곤 했다. 이 영화는 뚜렷한 주인공 없이 병사들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실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장면을 통해 전쟁의 참혹성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뜨거운 전우애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 외에 재미있는 장면도 있다. 조장 해병 구봉서가 60년대의 인기 춤인 트위스트를 선보이면서 분대원들과 함께 즐겁게 춤추는 장면이 나온다. 또 원로가수 나애심은 구봉서와 옥신각신하는 성깔 있는 양공주로 나온다. 영희로 나오는 꼬마소녀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년)에서 옥희로 나오는 전영선으로, 현재 LA에서 살고 있다. 나애심은 가수 김혜림의 어머니이고 전영선의 고모이다.

   이만희 감독(1931~1975)은 ‘만추’(1966년) ‘싸리골의 신화’(1967년) ‘삼포 가는 길’(1975년) 등을 남긴 60~70년대의 거장으로 44세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 같다. 영화배우 문숙은 그의 재혼한 부인이고, 영화배우 이혜영은 그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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