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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2. 2. 2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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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笑傲江湖)

 

최용현(수필가)

 

   경비가 삼엄한 명나라 황궁의 서고(書庫)에 도둑이 침입하여 당대 최고의 무공비법이 수록된 규화보전을 훔쳐간다. 관리책임자인 내시총관은 은밀한 수사 끝에 최근에 근위대장직을 사임하고 낙향한 임진남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심복 구양전(장학우 扮)를 앞세워 그의 집을 포위한다.

   이때 화산파의 수제자 영호충(허관걸 扮)이 사부 악불군의 명을 받고 그의 딸인 사매(엽동 扮)와 함께 포위망을 뚫고 임진남을 찾아온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임진남은 영호충에게 집 안 물레방아 밑에 규화보전을 숨겨놓았다면서 이 사실을 자신의 아들 임평지에게 꼭 전해달라고 당부를 한다. 내시총관은 무예고수 좌냉선을 초빙하여 규화보전을 찾게 하는데, 좌냉선은 임진남이 실토하지 않자 임진남과 그의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한족(漢族)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일월신교 교도들의 소행으로 꾸며놓는다.

   영호충과 사매는 강호를 은퇴하고 떠나는 순풍당 당주와 그의 친구인 일월신교 곡장로와 함께 배를 타게 되는데, 두 노인은 은퇴하면 함께 부르기로 한 소오강호(笑傲江湖)를 거문고로 연주하면서 합창한다.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가락이 웅장하고 가사에 낭만과 기개가 넘친다. 가사의 번역문을 옮겨보자.

 

   창해의 도도한 파도가 해안을 때리며 한바탕 웃는구나.

   물결 따라 떠올랐다가 잠기며 아침을 맞이한다네.

   푸른 하늘이 웃고 있네. 어지러운 세상을 보면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는 하늘만이 안다네.

   강과 산이 웃고 있네. 물안개가 노래하고 있네.

   풍랑이 다하고 늙어가니 세상사 알려고 하지 않네.

   맑은 바람이 웃고 있네. 적막하고 고요하다네.

   사나이 가슴에 다시 저무는 노을이 머물고 있네.

   세상 만물이 웃고 있네. 더 이상 적막함은 없다네.

   이 어리석은 사나이도 그렇게 껄껄껄 웃는다네.

 

   이때, 좌냉선이 탄 함선이 이들의 배를 들이받으면서 배위에서 격투가 벌어진다. 중상을 입은 당주와 곡장로는 소오강호의 악보와 거문고를 영호충에게 건네주고 배에 불을 질러 죽음을 택한다. 화산파 동지들이 있는 객잔으로 향하던 영호충은 풍청양이라는 괴노인을 우연히 만나 신기(神技)의 검술인 독고구검을 전수받고, 사부를 조심하라는 충고를 듣는다.

   한편, 구양전은 임평지를 찾아서 죽이고 자신이 임평지로 행세하며 객잔에서 화산파의 사부 악불군과 그의 제자들을 만난다. 날이 저물자, 한족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일월신교의 단주(장민 扮)와 피리로 뱀과 벌들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남봉황(원결영 扮)을 비롯한 교도들이 객잔으로 들어오고, 이어 영호충과 사매도 객잔에 들어온다.

   영호충은 임평지 행세를 하는 구양전에게 속아 규화보전의 위치를 알려주는데, 규화보전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악불군도 엿듣게 된다. 구양전이 준 독주를 마신 영호충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영호충과 곡장로 간의 친분관계를 알게 된 단주는 영호충을 해독하여 살려낸다. 이때 좌냉선이 기습해오지만 남봉황이 부리는 뱀과 벌떼 공격에 목숨을 잃는다.

   구양전은 딸을 주겠다며 한사코 따라오는 악불군을 대동(帶同)한 채 내시총관이 기다리는 임진남의 집에 도착한다. 그날 밤 구양전이 물레방아 밑에서 규화보전을 찾아내지만, 미행하던 악불군에게 빼앗긴다. 이때 영호충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 곧이어 단주와 남봉황도 영호충을 도와주러 찾아온다.

   악불군은 자신의 옷 속에 숨긴 규화보전이 떨어진 줄 모르고 말을 타고 달아난다. 내시총관이 영호충을 공격하자, 남봉황이 들고 온 화약총을 입수한 구양전은 늘 자신의 충성심을 의심하던 내시총관을 쏜다. 총에 맞은 내시총관이 비틀거리자, 영호충과 단주가 힘을 합쳐서 내시총관을 처치한다. 이때, 바닥에 떨어져있던 규화보전을 손에 넣은 구양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슬그머니 도망쳐버린다.

   달아났던 악불군이 다시 나타나 규화보전을 내놓으라며 영호충과 사제들을 공격한다. 계속 뒷걸음치던 영호충은 괴노인에게서 배운 독고구검을 구사하여 사부를 제압하지만, 사매의 간청으로 그의 목숨을 살려준다. 말에 오른 영호충이 사매를 태우고 단주, 남봉황과 함께 길을 떠나면서 영화가 끝난다.

   영화가 끝나도 ‘소오강호’ 주제곡의 가락이 계속 입에서 맴돈다. 이야기 구조가 톱니바퀴 물리듯 치밀하게 짜여있고 배우들의 검술액션도 과장이 심하지 않아서 무협영화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거장 호금전을 비롯하여 서극 정소동 이혜민 등 내로라하는 6명의 감독이 공동 연출한 영화답게 가히 무협영화의 최고봉으로 꼽을 만하다.

   소오(笑傲)는 거만하게 웃는다는 의미이고, 강호(江湖)는 강과 호수 즉 사람 사는 세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소오강호는 세상사에 그저 웃어버린다 혹은 세상을 비웃는다는 뜻이다. 영화 ‘소오강호’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천룡팔부’ ‘녹정기’ 등을 쓴 중국 무협소설의 거장 김용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임청하와 이연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빅히트한 ‘동방불패’(1992년)는 이 소설의 일부분을 영화로 만든 것으로, ‘소오강호’(1990)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소오강호에서 가공할 절대무공이 담겨있는 규화보전을 마지막에 손에 넣은 사람은 구양전이다. 그런데 ‘동방불패’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가 임청하로 바뀐 것은 내시인 구양전이 수련에 매진한 결과 중성화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영호충 역을 맡은 허관걸을 이연걸로 바꾼 것은 아마도 영화의 흥행을 고려한 조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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