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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0. 12. 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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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

 

최용현(수필가)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è bella)’는 이탈리아의 배우 겸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가 각본을 쓰고 주연과 감독을 맡아 1997년에 제작한 영화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나치의 유대인수용소에 끌려간 주인공이 함께 간 어린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눈물겨운 부성애를 발휘하는 모습을 코믹터치로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과 음악상을 받았고, 영어권이 아닌 배우로는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남우주연상도 함께 수상했다. 또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비롯하여 총 62개의 상을 받아 세계영화사에 빛나는 걸작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순진하면서도 좀 엉뚱한 유대인 청년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扮)는 시골에서 상경하다가 아름다운 처녀 도라(니콜레타 브라스키 扮)를 우연히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로마에서 숙부 밑에서 웨이터로 일하게 된 귀도는 도라와 마주칠 때마다 재치와 익살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초등학교 여교사인 도라는 읍사무소의 공무원과 이미 약혼한 사이였으나,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자신을 공주라고 부르며 만날 때마다 즐거움을 안겨주는 귀도의 밝고 순수한 모습에 더 마음이 끌린다. 결국 귀도와 도라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게 되고,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난다.

   5년이 지나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던 무렵, 아들 조슈아(조르지오 칸타리니 扮)가 다섯 번째 생일을 맞는다. 그런데 갑작스레 들이닥친 독일군이 귀도와 조슈아를 강제로 트럭에 싣고 가 유대인수용소행 기차에 태운다. 친정어머니를 모셔오느라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도라는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기차역으로 달려가 ‘제 남편과 아들이 저 기차에 탔어요. 저도 타겠어요,’ 하며 수용소행 기차에 오른다.

   도라는 여자수용소로 가고, 귀도와 조슈아는 남자수용소에서 생활한다. 수용소의 더러운 환경과 힘든 노동, 늘 배고픈 상황을 조슈아에게 이해시킬 수 없었던 귀도는 이곳을 여행자들이 단체게임을 하는 곳이라고 속이고, 1,000점을 먼저 따서 우승하면 진짜 탱크를 상으로 받는다고 말한다. 탱크를 좋아하는 조슈아는 솔깃해하며 참고 견딘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군이 분주히 철수준비를 하는 것을 본 귀도는 독일이 패전했음을 알게 된다. 조슈아를 담벼락 앞에 있는 조그만 장식장에 들어가게 한 귀도는 ‘밖이 조용해질 때까지 절대로 나오지 마라. 오늘까지 940점을 받았는데 내일 아침까지 들키지 않으면 60점을 더 받아 우승하게 된다.’고 말하는데, 조슈아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날 밤, 귀도는 조슈아의 스웨터로 얼굴을 감싸고 담요를 치마처럼 둘러 여자로 변장하고 아내 도라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여자수용소에 숨어들어가 보아도 그 안은 텅 비어 있고 도라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감시용 서치라이트를 피하기 위해 벽에 붙어 있다가 독일군에게 발각되고 만다.

   독일군에게 끌려가던 귀도는 조슈아가 숨어 있는 장식장 앞을 지나가게 되자, 아들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보이고는 마치 병정놀이를 하는 것처럼 병정걸음을 흉내 내며 사라진다. 잠시 후, 귀도가 끌려간 건물 기둥 뒤에서 타타타타 하는 기관총 소리가 들려온다.

   다음 날 아침, 독일군이 모두 퇴각하고 곳곳에 숨어있던 유대인들이 하나둘 밖으로 사라지자 조슈아도 장식장에서 나온다. 잠시 후 탱크 한 대가 나타나 조슈아 앞에 멈춰 서더니, 미군 장교가 내려와서 조슈아를 안고 탱크로 올라간다. 미군 장교와 함께 탱크 위에 서있던 조슈아는 유대인 행렬에서 엄마를 발견한다. 조슈아가 ‘내가 아빠와 함께 게임에서 우승하여 탱크를 탔어!’ 하고 엄마에게 자랑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에서, 귀도와 도라의 만남을 다루는 전반부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시작하여 둘이 한 가족이 될 때까지 마치 동화에 나오는 왕자와 공주처럼 밝고 유쾌한 스토리가 무지개 색깔로 그려진다. 귀도 역의 로베르토 베니니와 도라 역의 니콜레타 브라스키는 실제 부부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의 케미가 아주 잘 맞는 것 같다.

   그러나 가족들이 모두 유대인수용소로 이송된 이후를 다루는 후반부는 온통 잿빛이다. 20세기 최악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홀로코스트 상황에서도 귀도는 아들 앞에서는 유대인수용소를 마치 놀이터인 것처럼 말하며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독일군에게 잡혀서 처형당하러 가는 순간까지도 조슈아에게 아버지로서의 숭고한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가. 관객들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있다. 독일군의 파티가 열리던 밤, 식당으로 불려가 서빙을 하던 귀도는 옆의 빈방에 축음기가 있는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 여자수용소 쪽 창문을 활짝 열고 오펜바흐의 ‘뱃노래’를 축음기에 올린다. 이 곡은 전에 도라가 약혼자와 함께 오페라 공연장에 갔을 때 귀도도 따라 들어가 아래층 객석에서 내내 도라를 쳐다보며 들었던 곡이다. 자신과 조슈아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도라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잠자리에 들었던 도라는 일어나 창문을 열고 자욱한 안개를 타고 오는 오펜바흐의 ‘뱃노래’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불후의 명화이고, 제목도 ‘인생은 아름다워’가 아닌가.

   아내와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귀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도라는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자원해서 남편과 이들이 잡혀간 수용소로 따라가는데, 이것은 아무나하기 힘든 행동이다. 모름지기 여자는 귀도 같은 남편을 만나면 행복할 것 같고, 남자는 도라 같은 아내를 만나면 행복이 저절로 따라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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