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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결투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9. 5. 2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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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결투(金燕子)

최용현(수필가)

 

   ‘심야의 결투(金燕子)’는 홍콩무협영화의 서막을 연 호금전 감독의 ‘방랑의 결투(大醉俠)’의 속편으로, 호금전 감독이 홍콩 쇼브라더스사와의 의견 차이를 보여 장철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1968년에 국내에 개봉한 외국영화들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원제목인 ‘금연자’(1968년)는 ‘금 제비’라는 뜻으로 1편의 원제목인 ‘대취협’(1966)의 여주인공의 극중 이름이다. 장철 감독이 ‘금연자’라는 이름만 남겨두고 모두 바꾸라고 했기 때문에 ‘심야의 결투’는 시나리오가 완전히 장철 스타일로 바뀌었다. 전편에서 금연자 역을 맡은 정패패는 이번에도 자신이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양손에 든 쌍단검으로 악당들을 물리치던 금연자(정패패 扮)는 어느 날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주다가 독이 묻은 암기(暗器)에 찔려 치명상을 입게 되는데,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금편(金鞭, 쇠막대기) 무예고수 한도(나열 扮)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금연자는 한도와 함께 강호를 등지고 깊은 산골에 은둔한다.

   한편, 아홉 살 때 부모형제가 산적들에게 살해당해 고아가 된 은붕(왕우 扮)은 금연자와 함께 무술을 배웠는데, 세월이 흘러 무술고수가 되자 홀연히 사라진다. 원한에 사무친 은붕은 부모형제를 죽인 원수들을 찾아다니며 잔인하게 복수를 한다. 그 후에는 닥치는 대로 악당들을 살해하고 다니며 제비모양의 암기(暗器)를 남겨놓는다.

   혼자 악의 소굴인 금룡당에 들어간 은붕은 그곳에 있는 악당 수십 명을 모조리 죽이고 불까지 지르고 나서 제비 암기를 현장에 남긴다. 그렇게 하면 금연자가 자신을 찾아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금연자가 살인범으로 오해를 받아 공격을 받기도 한다. 은붕은 한 기녀촌의 기녀 미령에게 정을 주는데, 그 기녀촌의 벽에 이런 시를 남긴다.

 

      칼을 차고 서글픈 마음으로 세상의 끝으로 걸어간다네.

      세상 여러 곳을 배회하며 봉황은 높은 하늘을 품는다네.

      수만 리에 뻗어 있는 추운 산, 봉황은 어느 곳에 앉을까?

      고대 귀족인 그 제비는 어느 품에 자리를 잡고 있는가.

 

   갈 곳 없는 자신의 처지와 금연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신기(神技)의 검객이 악당들을 죽인 자리에 늘 제비 모양의 암기를 남겨놓는다는 말을 듣고, 금연자는 은붕이 자신을 만나려고 그렇게 하는 것임을 눈치 채고 설레는 마음으로 은붕을 찾아 나선다. 한도 역시 금연자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품은 채 따라나선다.

   드디어 강호 한복판에서 세 사람이 만난다. 금연자를 사이에 두고 두 무예고수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결국 은붕과 한도의 피할 수 없는 결투가 이어진다. 그러나 결투는 영화 제목처럼 한밤중이 아니고 동이 트는 새벽에 연산에서 벌어진다. 금연자와 미령이 연산으로 달려오고, 달아났던 금룡당의 두목도 은붕을 죽이려고 쫓아온다.

   팽팽하던 결투는 점차 은붕의 우세로 기울고 한도는 뒷걸음질을 친다. 그때 은붕은 숨어서 자신을 노리던 금룡당의 두목을 발견하고 비상(飛上)하는 필살검법을 쓰는데, 그 순간 한도는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고 금편으로 은붕의 배를 찔러 치명상을 입힌다. 한도의 사과를 받은 은붕은 자신이 승자임을 인정받은 후, 한도에게 금연자를 데리고 연산을 내려가라고 말한다. 자신이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은붕이 기녀 미령의 품에서 죽는 것으로 영화가 끝날 것 같았는데, 거기서 10분이나 더 이어진다. 은붕은 선혈이 낭자한 채로 일어나서 몰려오는 금룡당의 잔당들을 모조리 척살하고 서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에는 단두대 같은 형틀에서 허리를 끊거나, 산 채로 가슴을 열어 심장을 꺼내는 모습, 거위를 훔쳤다는 누명을 쓴 소년이 할복하는 모습 등 잔혹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원래 계획대로 호금전 감독이 이 영화를 연출했더라면 아마 이런 가학적인 장면은 많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주인공 왕우는 수십 명의 악당들을 순식간에 처참한 시체로 만들어 버리는 무협고수로 등장하는데, 홍콩 쇼브라더스의 빅 히트작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에 이어 ‘심야의 결투’에서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초절정의 무술을 선보인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에서는 부러진 칼로 한쪽 팔만 써도 그 정도(?) 실력인데, 이 영화에서는 온전한 몸으로 제대로 된 칼을 쓰니 당연히 천하무적이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다.

   여주인공 정패패는 ‘방랑의 결투’의 화려한 성공으로 홍콩 쇼브라더스의 간판 여배우로 부상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타이틀 롤인 금연자 역할을 맡고도 주도권을 왕우에게 뺏겨버리고 울적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 후 결혼으로 연예계를 은퇴했다가 ‘와호장룡’(2000년)에서 ‘푸른 여우’ 역으로 화려하게 컴백한다.

   금편 한도 역을 맡은 나열은 홍콩식 발음으로는 로례로 불리는데, 홍콩 쇼브라더스의 신인배우 선발 때 왕우와 함께 공채 1기로 뽑혔다. 그도 이 영화 이후 ‘철수무정’(1969년) ‘아랑곡의 혈투’(1970년) ‘철인’(1972년)등에서 주연을 맡았고, 나중에는 한국에도 진출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한 가지, 이 영화에서 은붕이 기녀촌의 벽에 붓으로 시를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시를 짓고 직접 벽에 쓴 사람은 장철 감독이라고 한다.

   금연자를 ‘방랑의 결투’ 때처럼 뛰어난 검객으로 부각시키고, 금편 한도를 무림의 은둔 최고수로 좀 더 업그레이드 시켰더라면 은붕과의 결투에 대한 기대감으로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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