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2018년 2월 23일, 홍콩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한 노파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오랫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아 주변사람들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아파트에 들어가 보니, 숨진 지 꽤 오래된 시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 노파는 영화 ‘스잔나’로 아시아를 울린 왕년의 홍콩스타 리칭이었다.
1967년, 하몽화 감독의 ‘스잔나’는 아시아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고, 우리나라에서 37만 8천명이라는 최다 관객동원의 금자탑과 함께 ‘리칭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에서 19살의 리칭은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주인공 역을 열연하여 단숨에 은막의 스타로 우뚝 서게 된다.
이후 여주인공의 불치병으로 인한 시한부 삶을 다룬 영화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 중에서 할리우드 영화인 ‘러브 스토리’(1970)와 ‘라스트 콘서트’(1976)는 논외로 치더라도, ‘One Summer Night’으로 유명한 ‘사랑의 스잔나’(1976)와 ‘추하 내사랑’(1977)은 ‘스잔나’의 인기에 편승한 아류작에 다름 아니다.
‘스잔나’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옛 연인이었던 샨샨(리칭 扮)의 어머니와 샤오팅(장연 扮)의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같은 학교 동급생인 샨샨과 샤오팅은 이복자매가 되었다. 질투심과 이기심이 강한 샨샨은 언니 샤오팅의 애인 치키엔에게 영화 보러가자고 유혹하여 마침내 자신의 애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어느 날, 치키엔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던 샨샨은 심한 현기증으로 쓰러진다. 마침 지나가던 의사가 샨샨을 자신의 집으로 옮겨 진찰을 해보니, 뇌종양으로 앞으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충격을 받은 샨샨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반성하기 시작한다. 먼저 언니 샤오팅에게 행한 잘못을 뉘우치면서, 치키엔을 다시 언니와 맺어주려고 애쓴다. 샨샨의 갑작스런 변화에 샤오팅과 치키엔은 어리둥절해하고….
남은 시간 동안 무언가 뜻깊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샨샨은 학교에서 공연하는 고전명작 연극 ‘홍루몽’의 비련의 여주인공 임대옥 역할을 자원한다. 연극 연습에 몰두하면서 자존심이 강하고 질투가 심하면서도 병약했던 임대옥의 캐릭터에서 강한 아이덴티티를 느끼기도 한다.
연극 발표회 날, 죽어가는 임대옥 역을 혼신을 다해 열연하던 샨샨은 연극이 끝남과 동시에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이송된다. 깨어난 샨샨은 어머니가 새로 낳은 여동생을 안아보고 가족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서 숨을 거둔다.
다시 영화를 보니 엉성한 미장센, 작위적인 스토리, 신파조의 대사 등이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임대옥의 죽음과 샨샨이 죽어가는 모습을 극중에 합치시킨 절묘한 연출은 높이 살만하다. 요즘은 이런 최루성 멜로물에 눈물을 쏟을 만큼 관객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그때는 왜 다들 눈물을 흘렸는지….
이 영화의 주제곡은 경쾌한 리듬의 ‘청춘무곡’과 애절한 리듬의 ‘만추의 노래’ 두 곡인데, 후자가 영화의 주제를 더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후자의 번안가사 앞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당시의 인기가수 정훈희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해는 서산에 지고 쌀쌀한 바람 부네
날리는 오동잎 가을은 깊었네.
꿈은 사라지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
내 생명 오동잎 닮았네 모진 바람을 어이 견디리.
지는 해 잡을 수 없으니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
봄이 오면 꽃 피는데 영원히 나는 가네.
리칭은 1948년 상해에서 출생하여 부모를 따라 홍콩으로 이주하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시아 최대의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사의 공개오디션에 응모하여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쇼브라더스 연극학교에 들어간다. 동양적인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리칭은 단숨에 간판배우로 부상한다.
1965년, 첫 주연을 맡은 뮤지컬 영화 ‘어미인(魚美人)’으로 아시아영화제 최우수여우상을 수상하였고 1967년 ‘스잔나’의 선풍적인 인기와 흥행에 힘입어 일약 아시아 최고의 여배우로 등극한다. 그 후 ‘철수무정’ ‘아랑곡의 혈투’ ‘14인의 여걸’ 등의 무협영화에 출연했고, 우리나라에서 만든 ‘리칭의 여선생’, ‘반혼녀’ ‘흑야광주’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다. 총 54편의 영화에 출연한 리칭은 70년대 중반에 3년 연속 중화권 10대 스타인 명성천자(明星天子)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리칭은 10년 동안 사귀었던 연인이 1979년에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큰 충격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4년 후에는 자신을 지탱하게 해준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다. 리칭은 삶의 의욕을 잃고 실의에 빠져 여배우로서는 한창 때인 30대 중반에 영화계 은퇴를 선언한다.
마카오의 카지노장에 드나들기 시작한 리칭은 도박중독에 빠져 자신이 벌었던 전 재산을 모두 날리고 가난뱅이로 전락한다. 그 후 홍콩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은둔하다시피 홀로 살아간다. 가끔 아파트 주변에서 뚱뚱해진 모습으로 혼자 걸어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는데, 결국 70세에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크고 선한 눈망울, 복스러운 두 볼 등 동양적인 미모로 한 때 아시아의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톱스타의 말로가 너무나 비참해서 가슴이 아프다. 흔히 보듯이, 초반에 성공하면 말년까지 부와 명성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철리(哲理)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 같다. ‘차라리 초반에 고전하다가 중반 이후나 말년에 성공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