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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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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鳴梁)

 

최용현(수필가)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7년 음력 7, 원균이 지휘하던 조선 수군은 거제도 인근 칠천량에서 왜군에 무참히 패하여 완전히 괴멸되고 말았다. 무고(誣告)로 파직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 )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칠천량에서 도망쳐 나온 패잔병들과 12척의 배 뿐이었다.

   두 달 뒤인 916,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순신을 잡기 위해 파견한 해적출신 장수 구루지마(류승룡 )가 선봉에 선 330척의 왜선이 명량(울돌목)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육군으로 합류하라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하여 싸운다면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는 장계를 올리고, 12척의 함선과 함께 명량으로 향한다. 그 전날의 난중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招集諸將 約束曰 (초집제장 약속왈)

    兵法云 必死則生 必生則死 (병법운 필사즉생 필생즉사)

    又曰 一夫當逕 足懼千夫 (우왈 일부당경 족구천부)

    今我 之謂矣 (금아 지위의)

    爾各諸將 勿以生爲心 (이각제장 물이생위심)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필히 죽고자하면 살고 필히 살고자하면 죽는다고 했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능히 천 명을 떨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너희 장수들은 살려는 생각을 하지 마라.

 

   처음에는 꽁무니를 빼던 아군 장수들도 이순신 장군이 명량의 길목에서 함포를 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속속 전투에 가담한다. 백병전(白兵戰)이 시작되어 이순신 장군을 잡으러 대장선으로 올라온 구루지마를 잡아 돛대에 효수(梟首)하니 왜군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해류가 바뀌면서, 조선의 판옥선(板屋船)들이 왜선들을 충파(衝破)하기 시작하자, 드디어 왜선들이 달아나기 시작한다. 결국 전투는 8시간 만에 막을 내린다.

   구루지마가 이끌던 왜선 133척 중에서 31척이 침몰했고 90여척이 크게 부서졌으나, 판옥선은 한 척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 기적 같은 승리로 서해로 북상, 한양을 기습 공격하여 조선왕을 잡으려던 왜군의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간다.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23전승 기록 중에서도 단연 백미(白眉)이고, 세계 해전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대승이다. 주유와 제갈량이 5만 연합군으로 조조의 100만 대군을 화공(火攻)으로 섬멸한 삼국지의 적벽대전보다도 더 짜릿하고 극적인 승리가 아닌가 싶다.

   2011최종병기 활을 통해 병자호란을 다루었던 김한민 감독, 이번에는 임진왜란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전투인 명량대첩의 재현을 시도했다. 그는 명량해전의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전남 광양과 완도 등지를 6개월간 오가며 철저한 준비를 했다.

   먼저, 대형화포를 장착한 30m 길이의 조선 판옥선과 왜군의 대형 안택선(安宅船), 조총수들이 타는 소형 관선(関船)을 실제 크기로 건조했다. , 광양에 해상 세트장과 함께, 육지에서도 배를 장착할 수 있는 초대형 매트가 설치된 육상 세트장을 건설했다. 아울러, 150명이 탄 함선을 들어 올리고도 360도 회전이 가능한 특수 짐벌(gimbal)을 제작했다.

   갑판 위에서 벌이는 백병전의 박진감과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무술요원 50명을 별도로 선발하여 강도 높은 훈련을 거친 후에 촬영에 임했다. 또 이순신 장군이 탄 함선을 향해 돌진하던, 폭약을 가득 실은 왜선이 폭발하는 장면은 물대포(water canon)를 활용했다. 이런 치밀한 준비 덕분에 스펙터클하면서도 리얼한 해상 전투 신이 나올 수 있었다.

   거북선 없이 12척의 판옥선만으로 출전한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330척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쇠줄로 왜선을 걸어 격침시켰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이 영화에서는 이순신이 명량해협의 거친 물살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일자진(一字陣)과 백병전, 충파 등의 전술을 시의 적절하게 구사하여 완승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러 가지 절망적인 상황에서, 왕에게조차 버림을 받고도 ()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며 핍박받는 민초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출전한 이순신, 마지막 희망으로 건조하던 거북선이 부하장수가 고의로 지른 불에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오열하던 이순신, 겁에 질린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자신이 먼저 목숨을 내놓고 앞장서던 이순신.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최민식은 20kg에 달하는 갑옷을 입고 6개월 동안 혹한과 폭염 속에서 여러 전투 신을 직접 소화하며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순신 사냥꾼으로 등장하는 구루지마, 한산도에서 이순신에게 참패했던 와키자카(조진웅 ), 칠천량 해전의 승장 도도(김명곤 ) 등 왜군 장수들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해보였다.

   이순신 장군은 탈영병을 단칼에 베고 병영을 불태움으로써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장병들로 하여금 물러날 곳이 없음을 체득하게 하여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초인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명량 인근에서 생때같은 아이들 수백 명을 어처구니없이 수장(水葬)시켜 나라전체가 온통 비감(悲感)에 빠져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절실한 리더십이 아닌가 싶다.

   적장까지도 존경해 마지않았던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다양한 평가와 찬사가 존재하지만, 무적으로 명성이 높던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대마도 앞바다에서 수장시켜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치가 남긴 말이 가장 눈에 띈다.

   “이순신 장군이 나의 함대를 갖고 있었다면 능히 세계 해상을 지배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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